재러드 다이아몬드는 '총, 균, 쇠'를 통해 세계적인 스타가 된 학자이자 저술가다. 조류학과 인류학, 생태학 등 여러 분야에 걸쳐 박학한 지식을 가지고 있고, 이를 바탕으로 여러 권의 책을 썼다. '총, 균, 쇠'를 비롯해 거기서부터 나아간 윌리엄 맥닐, 카발리-스포르차 등의 책들 등등에 대한 애정은 이미 여러 차례 글로 쓴 적 있으니 생략.
다이아몬드의 책들을 훑다 보면, 과학/생물학과 관련된 것에서 차츰차츰 '사람과 사회'로 나아가는 게 보인다. 거기에다가 역사적 지식들을 결합하는 식인데, 이번 책이 확실히 그렇다. 그게 이 책의 장점이기도 하고, 단점이기도 하다.
이번 책에서 그는 '위기와 극복'이라는 틀을 가지고 핀란드, 일본, 칠레, 인도네시아, 독일, 호주의 사례를 분석한다. 사실 이번 책이 마음에 쏙 들지는 않았다. '리스크 관리'라는 틀을 도식적으로 고집하다 보니, 모든 사례를 거기에 끼워맞춘 느낌이 좀 많이 들었음. 이렇게 프레임을 고집하다보면 사실 세상 어떤 일이든, 어떤 프레임에든 다 끼워넣을 수가 있다.
그럼에도 책은 사례연구라는 점에서 여러 모로 읽을만한 가치가 있다. 첫째, 인도네시아와 칠레와 핀란드에 대해 이 정도라도 소개해놓은 책들이 국내에 많지 않다. 이 나라들의 현대사를 대략적으로 정리하면서 핵심을 짚어준다는 점만으로도 읽을만 하다.
둘째, 미국의 유력 학자가 '미래의 위험요인'으로 꼽으면서 극복할 과제와 방향성으로 제시한 것들이라는 점에서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분명 그만큼의 통찰력이 있거든. 예를 들어, 다이아몬드가 이 책을 쓰면서 한-일 징용문제와 무역갈등을 염두에 뒀거나 사전 지식으로 삼은 것은 당연히 아니다. 그럼에도 그는 일본을 향해 '과거사를 반성하지 않으면 미래로 갈 수 없다'고 매우 강력하게 촉구한다. '위기 관리' 측면에서도 일본이 이 문제를 정직하게 대면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충고인 셈이다.
스크랩을 해둬야 하지만.... 게으름이... 게으름이..
(얼마 전 리처드 도킨스 자서전을 보는데, 도킨스가 다이아몬드를 만나 점심을 먹고 우정을 쌓는 장면을 특유의 유머로 재미나게 묘사해놨다. 차를 타고 데리러 온다고 해서 기다렸는데 덜덜거리는 후진 차, 점심 사준다더니 강변에서 샌드위치 꺼내더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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