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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정은의 '수상한 GPS']주권 무시한 '이스라엘식 공격', 미국의 솔레이마니 ‘표적 살해’

딸기21 2020. 1. 5. 16:03

이라크 중부 시아파 성지 카르발라에서 4일(현지시간) 친이란 시위대가 미군 공격에 숨진 이란 장성 가셈 솔레이마니를 추모하며 국기로 덮은 모형 관과 사진 등을 들고 행진하고 있다.  카르발라 로이터연합뉴스

 

이란 정예부대인 혁명수비대 내에서 대외작전을 전담해온 고드스 특수부대의 가셈 솔레이마니 사령관이 지난 3일(현지시간) 이라크 바그다드에서 미군 공습에 사망했다. 미군이 리퍼 드론을 이용해, 미사일로 솔레이마니를 살해한 것이다. 중동의 불안감은 극도로 고조됐으며, 국제법을 위반하고 이라크의 주권을 무시한 미국의 ‘표적살해’에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3일 언론 자료에서 솔레이마니 사령관이 이라크 방문 중에 중동의 미국 관련 시설을 겨냥한 공격을 모의할 것이라는 정보가 있었다면서 “미국인 수십명이 위험해질 뻔했다, 다른 나라 사람들도 살해될 수 있었다”며 제거작전의 ‘정당성’을 홍보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솔레이마니가 사망한 뒤 트위터에 성조기 이미지를 올렸다. 트럼프 대통령은 공습이 진행되는 동안 지인들과 만찬을 한 뒤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었다고 미국 언론들은 전했다.

 

이스라엘식 ‘표적살해’

 

미국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 등에 따르면 이번 공격은 트럼프 대통령이 전격 결정한 것이었다. 이라크 내 미군기지를 겨냥한 친이란계 민병대 등의 로켓공격이 이어지자 트럼프 대통령이 솔레이마니를 제거하기로 마음먹었고, 국방부에 ‘비상재량권’을 부여했다는 것이다. 뉴욕타임스는 조지 W 부시, 버락 오바마 행정부 때에도 솔레이마니 제거를 검토했으나 이란과의 전쟁 우려 때문에 선택지에서 제외했었다고 전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에서 4일 시민들이 ‘이란과의 전쟁 반대’ 같은 구호가 적힌 손팻말들을 들고 반전 시위를 하고 있다.  로스앤젤레스 EPA연합뉴스

 

미군은 솔레이마니의 동선을 확인하고 곧바로 작전을 실행했다. 트럼프 정부는 성공적이었다고 자평하지만 솔레이마니 살해 사실과 공격 방식에 세계는 경악했다. 이번 공격은 ‘공습’이라고는 하지만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무장조직 지도자들을 제거할 때에 사용해온 표적살해를 미군이 그대로 재연한 것이었다.

 

CNN은 사전에 찍어둔 곳을 공격하는 대신에 목표물의 동선을 따라가며 공격한 ‘임기 표적(Target Of Opportunity)’이었다고 보도했다. 솔레이마니의 움직임을 추적하면서 기회를 봐 MQ-9 리퍼 드론을 투입해 살해한 것이다. 20여년 간 이란의 ‘그림자 사령관’ 역할을 해온 솔레이마니가 최근 몇년 새 이란 보수파의 아이콘으로 부상하면서 공개행보를 해왔고, 특히 이라크·시리아 등을 수시로 오가며 동선을 노출해왔기 때문에 가능했던 작전이기도 했다.

 

트럼프는 이번 공격작전 전에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여러 차례 긴밀히 통화했다고 미국 언론들은 전했다. 이스라엘식 표적살해는 주권을 무시하고 자국 영토가 아닌 곳에 군사력을 투입해, 자신들이 ‘테러범’이라 지목한 사람을 임의로 살해하는 것이어서 국제법 위반이라는 지적이 늘 나왔다. 이번 사건을 조사하는 유엔의 아그네스 칼라마르드 조사관은 트위터에 “국제 인권법에 따르면 어느 국가든 공격이 임박해 있고 선제공격만이 유일한 방법일 때에 자위 목적으로만 (적을) 살해할 수 있다”는 글을 올리고 미국을 비판했다. 미군의 폭격으로 차량 운전사와 경호원 등이 숨지게 만든 것도 불법 행위라고 지적했다.

 

미 의회에선 ‘반전 결의안’

 

미국 내에서도 의회의 반발과 반전 시위가 일어났다. 트럼프 정부는 공화당의 린지 그레이엄 상원의원, 미치 매코널 상원 원내대표 등에게는 공습 계획을 미리 알렸지만 하원 민주당 지도부에게는 통보하지 않았다. 공습 결정은 ‘자위권’ 차원에서 대통령이 내린 것이므로 의회 승인을 받을 필요가 없다는 것이 백악관의 입장이다. 하지만 민주당은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상원 외교위원회의 민주당 팀 케인 의원은 3일 이란을 상대로 적대적인 행위를 할 때에 대통령이 반드시 의회의 승인을 받도록 요구하는 결의안을 발의했다. 워싱턴, 뉴욕, 시카고, 필라델피아 등 미국 70여개 도시에서는 반전 시위가 일어났다.

 

이란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가 3일(현지시간) 가셈 솔레이마니 사령관의 사진을 곁에 두고 사무실에 앉아 있는 모습.  이란 최고지도자 사무실·AFP연합뉴스

 

이라크도 반발하고 있다.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공격 과정에서 “중동 국가들과 환상적인 협의를 해왔다”고 주장했으나 아델 압둘-마흐디 이라크 총리는 “이라크 주권에 대한 침해”라며 강하게 비난했다. 이라크에서는 자국 정치에 개입하는 이란에 대한 반감이 커지고 있었으나, 지난해 12월 29일 미군이 이라크 내 친이란 민병대 시설들을 폭격하자 반미 정서가 급격히 고조됐다. 이라크의 하시드 알사비(PMF)와 레바논의 헤즈볼라,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의 하마스 등 중동 각국의 친이란 무장조직들은 일제히 미국을 규탄했으며 시리아 외교부도 ‘미국의 범죄적인 공격’을 비판했다고 SANA통신 등이 보도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세계는 걸프에서 또다른 전쟁이 일어나는 걸 감당할 수 없다”며 “지금은 지도자들이 자제력을 최고로 발휘해야 할 순간”이라는 성명을 냈다. 호세프 보렐 유럽연합(EU) 외교·안보대표도 성명을 내고 “모든 관련자들과 동맹국들에 최대한의 자제와 책임감을 촉구한다”고 했다. 러시아와 중국도 미국을 비판했다. 러시아 외교부는 3일 성명에서 “솔레이마니를 미사일로 살해한 것은 중동 전체의 긴장을 높일 모험주의적인 행동”이라고 했다. 중국 외교부 겅솽(耿爽) 대변인은 정례브리핑에서 “국제관계에서 무력을 사용하는 것에 일관되게 반대한다”며 “관련국들, 특히 미국이 냉정을 유지하고 자제하길 촉구한다”고 말했다.

 

러·중 비판, 긴박한 외교전

 

각국의 외교적 움직임도 긴박하게 돌아가고 있다. 왕이(王毅) 중국 외교부장은 4일 이란의 모하마드 자바드 자리프 외교장관과 통화하면서 “미군의 위험한 작전은 국제관계의 기본 규범을 위반한 것”이라 말했다. 왕이 부장은 이어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교장관과 통화하면서 유엔 안보리에서의 대응방안을 논의했다. 라브로프 장관은 이 통화에서 미국이 유엔 규범을 위반했고 이라크의 주권을 침해했음을 강조했다. 라브로프 장관은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 자리프 이란 외교장관, 메블뤼트 차우쇼을루 터키 외교장관 등과도 잇달아 통화했다고 러시아 외교부가 밝혔다.

 

레바논 베이루트 시내에 4일(현지시간) 가셈 솔레이마니 이란 고드스 사령관의 사진이 걸려 있다.  베이루트 AFP연합뉴스

 

독일, 프랑스, 영국 등 유럽국들은 “더 이상 긴장 고조는 안 된다”면서 이란에 핵협정을 지키라고 촉구했다. 하지만 미국의 행태에 동조하지는 않았고, 폼페이오 장관은 미 언론 인터뷰에서 유럽국들의 반응이 “실망스럽다”며 불만을 드러냈다. 이란이 보복을 예고하는 등 충돌 위험이 높아지자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는 4일 이라크에서의 훈련임무를 중단했다.

 

이란과 대척점에 서 있는 사우디아라비아도 미국이 드리운 전운을 반기지 않았다. 사우디는 외교부 성명에서 “감당 못할 정도로 사태를 악화시킬 수 있는 모든 행동을 피해야 한다”고 했다. 오직 이스라엘의 네타냐후 총리만이 “트럼프 대통령의 단호하면서도 강력하고 신속한 행동”을 칭찬하면서 “이스라엘과 미국엔 자신을 방어할 권리가 있다”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