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레바논 베이루트의 시민들이 거리로 나왔다. 휘발유와 담배는 물론이고 메신저 프로그램인 ‘왓츠앱’을 쓸 때에도 세금을 물리겠다는 정부 방침이 젊은이들을 거리로 불러냈다. 레바논은 1970년대 격렬한 내전을 거치고 시리아의 점령통치를 받다가 2004년 ‘백향목 혁명’으로 힘들게 민주화를 이뤘다. 하지만 종교·종파별 정치세력 간 권력 나눠먹기와 이란의 개입이 심했다. ‘민간개발’이라는 이름으로 베이루트 곳곳에 부자들을 위한 쇼핑몰과 사설경호원을 둔 고급 주택단지들이 들어서는 동안 서민들에게 돌아간 혜택은 적었다.
레바논의 시위대가 국토를 가로지르는 170㎞의 인간띠를 만들면서 연대의 구호를 외치고 있을 때, 칠레에서는 지하철요금이 인상된 것이 거센 반정부 시위를 불렀다. 칠레는 1970년대 이래로 미국 시카고학파가 주도하는 신자유주의의 실험장이자 다국적 자본의 투기장이었다. 민주화를 이룬 이후에도 공공서비스는 계속 민영화되고 빈부격차는 갈수록 커졌다. 2011년 산티아고의 학교들을 점거한 청년층 시위가 무너진 공교육을 다시 세우라는 요구에 집중돼 있었다면, 이번 시위는 경제 실패와 부의 편중에 대한 총체적인 반발 양상을 띄었다.
이라크에서는 격렬한 반이란 시위가 이란 총영사관을 공격하는 상황으로 이어졌으며 지난 1일(현지시간) 친이란계 총리가 쫓겨났다. 이란에선 보조금 폐지로 휘발유값이 올라가자 지난달 중순 전국에서 격렬한 시위가 벌어졌고 300명 이상이 숨졌다. 이란은 자국 내 민주주의의 목소리를 억압하고 보수적인 신정통치를 계속해왔다. 군을 중심으로 외부 팽창을 시도하는 사이에 미국 제재로 경제는 무너졌고, 시민들의 불만이 쌓였다.
볼리비아에서는 대정 부정선거 항의 시위와 그 틈을 탄 군부 쿠데타로 ‘원주민 대통령’ 에보 모랄레스가 축출됐다. 2006년 집권한 모랄레스는 환경친화적이고 공동체적인 원주민들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새로운 실험들을 선보였다. 하지만 장기집권을 꿈꾸며 대통령 연임제한을 없애더니, 대선에서 개표 부정으로 의심되는 행위를 저질렀고 결국 지난달 10일 사임하고 아르헨티나로 망명했다.
올들어 세계 곳곳에서 시위대가 거리를 메웠다. 시위를 촉발시킨 계기는 다양하다. 하지만 시민들이 목소리를 내기 힘든 정치 구조에, 경제상황에 대한 반발이 쌓이고 쌓이다가 거리에서 폭발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청년층이 앞장서고 서민들은 물론 중산층도 가세하는 양상이라는 점도 비슷하다. 작은 도화선이 구조적인 문제에 대한 비판으로 나아갔다는 점에서 일관된 흐름을 읽을 수 있다.
구호기구 옥스팜은 1월 발표한 보고서에서 “세계 26명의 부자들이 가진 재산이 하위 50%, 즉 33억명의 재산을 합친 규모”라고 밝혔다. ‘부의 편중’은 곧 ‘빈곤의 일반화’다. 더 많은 사람이 가난해지고, 가난한 사람은 더 심하게 가난해지는 구조다. 버스요금 50원을 올리고 휘발유값 몇 백원을 올리는 것이 대규모 시위의 방아쇠가 되는 이유다.
정치가 시민들의 불만을 전달하고 해결할 통로가 되지 못할 때에 시민들은 거리로 나선다. 정부들은 시민들의 요구에 응답하지 못하고 있고, 거리의 목소리는 왜곡되거나 탄압과 총탄에 짓밟히고 있다.
'딸기가 보는 세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20년의 세계]라이베리아 ‘나무 안 베기’ 도전…수명 다한 보이저 1·2호 ‘우주 영면’ (0) | 2020.01.05 |
---|---|
[사진으로 본 세계]수상스키 타고, 노숙인 돕고…산타의 24시간 (0) | 2019.12.25 |
타임스스퀘어의 노숙인 된 배우 윌 스미스 (0) | 2019.12.08 |
크림반도 놓고 ‘지도 갈등’...구글·애플의 지도 표기는 ‘사용자 맞춤형’ (0) | 2019.11.28 |
트럼프 "철군" 두 달 만에…미군 사령관 "시리아 북부에서 IS 격퇴전 재개" (0) | 2019.11.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