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맘대로 세계사/해외문화 산책

농가 부엌에서 발견된 치마부에의 작품

딸기21 2020. 1. 1. 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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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파리 북쪽에 있는 소도시 콩피에뉴의 한 농가에서 2019년 9월 그림 한 점이 발견됐다. 이곳에 살던 90세 할머니는 집안에 전해오던 ‘오래된 러시아 성화(聖畵)’ 정도로만 알고 있었다. 할머니는 이사를 하기 전 집안 물건들 값이 얼마나 나가는지 알아보려고 경매사에게 감정을 부탁했다. 할머니 집을 찾아간 경매사 필로메네 볼프는 다행히도 예술품 보는 안목이 있었고, 화로 위에 걸려 있던 그림의 진가를 알아봤다.
 

이탈리아 초기 르네상스 화가 치마부에의 ‘조롱당하는 예수’

 

자칫 쓰레기로 버려졌을 수도 있었던 이탈리아 초기 르네상스 화가 치마부에의 ‘조롱당하는 예수’가 세상에 다시 나타나게 된 경위다. 13세기 피렌체에서 활동한 치마부에는 비잔틴과 르네상스를 잇는 가교 역할을 했던 화가다. 그의 작품들은 정교하고 도식적인 비잔틴 양식의 흔적이 남아 있으면서도 현실적인 인간을 묘사하는 방향으로 한 걸음 나아가고 있어, 르네상스의 인문주의를 예고했다는 평을 듣는다. 치마부에의 뒤를 이은 ‘피렌체파’ 화가들은 훗날 메디치 가문의 지원 속에 르네상스 미술을 꽃피웠다. 
 

‘조롱당하는 예수’는 가로 20cm에 세로 28cm의 목판에 그려져 있다.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히는 과정을 묘사한 목판 성상화 8점 중 하나로 판명됐고, 10월 열린 경매에서 2400만유로(약 313억원)에 팔렸다. 구매자는 공개되지 않았으나 프랑스 언론들은 ‘미국에 살고 있는 칠레의 이탈리아 르네상스 미술 전문가 2명’이 낙찰을 받았다고 보도했다. 프랑스 문화부는 12월 24일 이 작품의 ‘해외 수출’을 30개월 동안 금지시켰다. 이 기간 동안 모금을 해서 재구입을 하겠다는 뜻이다. 

 

‘조롱당하는 예수’의 한 부분

 

‘부엌의 명품’이 뒤늦게 세상에 알려진 사례는 전에도 있었다. 이탈리아 토리노의 한 노동자 집 부엌에 걸려 있던 작품들이 2014년 발견된 게 그런 사례다. 이 노동자는 1970년에 철도회사 직원들에게서 그림 2점을 샀다. 누군가가 프랑스 파리와 토리노 간 철도 안에 ‘놓고 내린’ 작품을 승무원들이 주워서 그에게 팔았던 것이다. 그는 어느 날 폴 고갱의 그림을 본 아들이 “비슷하다”고 말하는 걸 듣고는 미술전문가에게 문의했고, 경찰에도 알렸다. 감정 결과 영국 런던에서 도난당했던 폴 고갱의 ‘테이블 위의 과일들 혹은 작은 개가 있는 정물화’과 피에르 보나르의 ‘두 개의 의자와 여인’이었다. 
 

두 작품의 감정가는 총 1060만 유로였지만 토리노의 노동자가 받은 보상금은 그보다는 훨씬 적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미술품·문화재 도난사건을 전문적으로 수사하는 이탈리아 유물경찰이 회수해갔기 때문이다.

 

이탈리아 유물경찰이 2014년 4월 로마에서 폴 고갱과 피에르 보나르의 작품들을 공개하고 있다. AFP

 

2013년에는 파블로 피카소, 앙리 마티스, 마르크 샤갈, 파울 클레 같은 대가들의 작품 1500점이 ‘회수’됐다. 1930~40년대 독일 뮌헨의 유대인 수집가에게서 나치가 빼앗아간 작품들이다. 이 작품들은 나치 시절 독일 미술품 수집상 힐데브란트 구를리트에게 넘어갔고, 그의 손자인 코르넬리우스가 물려받았다. 코르넬리우스는 나치 강탈품임을 알면서도 당국에 알리지 않은 채 스위스 등지에 숨겨놓고 하나씩 암시장에 내다팔았다. 하지만 2010년 열차를 이용해 스위스에서 뮌헨으로 미술품을 옮기다 세관 검사에 걸려 꼬리를 밟혔다. 경찰은 이듬해부터 그의 집을 몇 차례 수색해 비밀창고에 감춰뒀던 미술품들을 찾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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