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스민, 인어공주, 벨, 포카혼타스, 뮬란. 모두 미국 디즈니사가 제작한 애니메이션의 여성 주인공들이다. 영화나 만화 속 등장인물들을 본떠 화장을 하거나 ‘코스프레’해서 사진을 올리는 이들은 많다. 그런데 최근 인스타그램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어느 메이크업 아티스트의 사진들은 좀 다르다.
‘사라스와티’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말레이시아 여성은 자신의 얼굴에 곱게 화장을 해서 디즈니 만화 속 등장인물로 꾸민 뒤 사진을 올리는데, 여기에 포인트가 하나 더 있다. 무슬림 여성들의 머리수건인 히잡을 도구로 변신을 한다는 것이다.
두 아이의 엄마인 사라스와티가 소셜미디어 스타로 뜨기 시작한 것은 2016년 무렵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24세이던 그는 패션 블로거로 출발해 팔로어들을 끌어모으기 시작했다. 이슬람의 여성억압을 상징하는 것으로 인식돼온 히잡이 그에게서는 색색깔 화려한 패션 소품으로 변신했고, 사라스와티에게는 ‘히잡 바비’라는 별명이 붙었다. 스스로를 ‘만화광’ ‘디즈너드(Disnerd)’, 디즈니 팬으로 소개한 그는 디즈니 영화 속 주인공들로 꾸민 모습들을 올리기 시작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주인공이 될 때에는 노란 히잡으로 금발머리를 표현했고, 선명한 빨간 빛깔 히잡을 두르고는 ‘인어공주’ 만화 속 에어리얼로 변신했다.
검은 히잡을 쓰고 이마에 장신구를 매단 사라스와티의 모습은 ‘알라딘’ 속 자스민 공주와 싱크로율이 너무 높아 분간이 안 될 정도다. ‘뮬란’으로 분장했을 때에는 검은 히잡을 틀어올리고 붉은 끈으로 묶어 중국 여성 스타일을 연출했다. ‘피터팬’의 요정 팅커벨, ‘앨리스’의 체셔 고양이가 되기도 한다. 악역도 서슴지 않는다. ‘알라딘’의 못된 재상 자파르, ‘인어공주’의 문어 마녀처럼 꾸미고 성난 표정을 짓는다. 일본 애니메이션의 주인공들도 등장한다. ‘마녀배달부 키키’의 키키, ‘드래곤볼’의 인조인간 18호, 심지어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 나오는 유령 같은 캐릭터 가오나시를 본뜨기도 한다. 가장 최근에 올린 것은 ‘겨울왕국’의 엘사다.
인스타그램 팔로어가 40만명이 넘는 사라스와티는 이런 화려한 모습들로 히잡에 대한 통념을 깨뜨린다. 히잡은 이슬람 문화의 오랜 논쟁거리다. 히잡을 강요하는 종교의 논리 속에서 여성들의 신체는 남성을 유혹하는 존재, 악한 것, 그러므로 가려야 할 것으로 정의된다. 여성과 남성의 분리를 규정하고 여성을 집안에 가두는 관습이 이슬람에만 있는 것은 아니지만, 20세기 후반 이후 히잡은 유독 세계의 이슈가 돼버렸다. 프랑스에서 나고 자란 여학생들이 ‘히잡을 쓸 권리’를 주장하면서 벌어진 재판, 히잡을 쓰지 않은 여성을 공격하는 종교 극단주의자, 히잡을 쓰지 않았다고 여론의 뭇매를 맞는 이란 여성들과 복장 단속에 나선 종교경찰 같은 것들이 논란에 불을 붙였다.
사라스와티는 히잡에 대한 견해를 딱히 밝히지는 않는다. 그러나 히잡을 예찬 혹은 강요하는 이슬람주의자들이 그를 칭찬할 것 같지는 않다. 그가 자신의 몸을 통해, 히잡을 통해 묘사하는 캐릭터들은 너무나도 상업적이고 미국적이다. 그래서 그의 예술은 더욱 전복적이면서 동시에 순응적이고, 유행을 따르면서도 보는 이들의 허를 찌른다. 하지만 최소한 2017년 미국 완구회사 마텔이 선보인 ‘히잡 쓴 바비인형’만큼 어색하고 부질없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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