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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깊이보기] "터키 미군 기지에 핵무기 있다" 트럼프 발언 또 논란

딸기21 2019. 10. 17.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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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이 16일 워싱턴의 백악관에서 세르조 마타렐라 이탈리아 대통령과 회담한 뒤 공동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워싱턴 AP연합뉴스

 

시리아와 인접한 터키 남부 도시 아다나 옆에 인지를리크 공군기지가 있다. 지중해에서 32km 떨어진 이 기지는 중동에서 벌어지는 군사작전들과 뗄래야 뗄 수 없는 곳이다. 터키 공군 기지이지만 미군이 함께 쓴다. 영국군, 사우디아라비아군도 이 기지를 때때로 사용한다. 3048m 길이의 활주로를 갖췄고 전투기 57대를 둘 수 있다.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의 일원으로 스페인군 제74 대공포여대가 상주하는 곳이기도 하다.

 

기지 설립 자체가 미국과 연결돼 있었다. 2차 세계대전 중이던 1943년 기지를 만들기로 결정했고 미군 공병대가 1951년 완공했다. 3년 뒤 터키군과 미군이 공동사용할 수 있도록 협정을 맺었다. 냉전시기에는 소련을 정찰하는 데에 쓰였다. 1991년 걸프전, 2001년 아프가니스탄 전쟁, 2003년 이라크전 때에 미군 전투기들이 이곳에서 날아갔다. 2005년 카슈미르 대지진이 일어나자 구호품을 실은 수송기들이 여기서 떠나 파키스탄으로 향했다. 2006년 레바논에서 무장조직 헤즈볼라가 이스라엘과 전쟁을 벌였을 때에는 지중해에 있던 미군 전함의 군인들이 인지를리크로 소개됐다. 이슬람권 국가들 중 유일한 나토 회원국인 터키는 이 기지를 미국 등 서방 국가들과 아랍국들이 쓸 수 있게 해주면서 군사적, 정치적 지렛대로 삼아왔다.

 

인지를리크가 다시 이슈가 됐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또 ‘사고’를 친 탓이다. 이 기지에 미군이 전술핵무기 50기를 배치하고 있다는 사실을 트럼프 대통령이 본인 입으로 ‘확인’해줬다.

 

2015년 미국과학자연맹이 공개한 터키 인지를리크 공군기지 배치도. 이 단체는 미국이 핵탄두를 이 기지에 배치해놓고 있다고 주장했다. 자료 미국과학자연맹

 

트럼프 대통령은 16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세르조 마타렐라 이탈리아 대통령과 회담하면서 공동기자회견을 했다. 이 자리에서 트럼프는 “우리에겐 훌륭한, 아주 훌륭하고 강력한 공군기지가 있다. 그 기지만으로도 뭐든 할 수 있다. 아주 크고 강력한 공군기지다”라고 했다. 인지를리크를 가리켜 한 얘기였다.

 

문제는 이것이, 터키가 시리아 북부를 침공한 상황에서 ‘터키에 배치한 핵무기 50기의 안전성을 보장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나왔다는 것이었다. 터키에 미군이 핵무기를 들여놓고 있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었지만 미군은 그동안 확인하지 않고 있었다. 뉴욕타임스 등 미국 언론들은 트럼프가 또다시 외교안보의 원칙을 깼다며 일제히 보도했고 민주·공화 양당으로부터도 비판이 잇따랐다.

 

전문가들은 미군이 냉전 시기 만들어진 B-61 그래비티 핵탄두 90기를 인지를리크에 보관해놨던 것으로 추정한다. 2000년 40기를 미국으로 가져왔으나 50기는 남겨뒀다. 당초 배치할 때에는 나토 28개 회원국이 유럽에서 핵 억지력을 유지하기 위해 만장일치로 표결해 결정했지만 숫자와 장소가 명확히 드러난 적은 없었다. 2015년 미국과학자연맹(FAS)이 관련 정보를 공개했으나 미국 정부는 확인도 부인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트럼프는 핵탄두 배치를 인정하면서 “알다시피 터키는 나토 회원국이며 우리는 나토 회원국과는 잘 지낸다”고 했다. 그는 터키가 나토 회원국임을 몇 차례나 강조했다. 터키가 시리아 북부 쿠르드 지역을 공격하도록 허용한 데 대해 비난이 빗발치자 이를 모면하는 데에 급급한 나머지 핵무기 정보의 중요성은 간과한 것이었다.

 

2016년 에르도안 정권을 무너뜨리려는 터키 군부 쿠데타가 일어났을 때 인지를리크 핵무기가 불안해지는 것 아니냐는 얘기가 이미 나왔었다. 미국 무기통제협회(ACA)의 킹스턴 레이프는 CNN방송에 “터키가 점점 믿을 수 없는 동맹이 돼가고 있는데 왜 아직도 미국은 그곳에 핵무기를 계속 두고 있는 것인지 트럼프와 국방부에 물어야 한다”고 말했다.

 

 

게다가 트럼프는 인지를리크를 ‘미군 기지’라고 말했다. 미군은 중동의 긴장이 고조될 때면 이곳에 패트리어트 미사일을 배치한다. 이 때문에 터키 내 반미여론의 원인이 되곤 한다. 그래서 터키 정부도 이 기지를 중동 전쟁에 동원할 때에는 여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IS 격퇴전에서는 인지를리크의 용도를 놓고 미국과 터키 간 갈등이 불거졌다. 2015년 터키는 미군이 이 기지에서 시리아로 전투기를 띄울 수 있게 허용했다. 그러나 “미군 전투기들이 쿠르드민병대를 지원하고 있다”며 곧 반발했고, 미국 버락 오바마 정부가 패트리어트 시스템을 철수시키는 상황으로 이어졌다. 지난해 에르도안 정부는 이를 빌미로 미국제가 아닌 러시아제 무기를 구입해 트럼프 정부와도 마찰을 빚었다. 2017년에는 IS 격퇴전을 돕기 위해 독일이 인지를리크의 군사설비 예산을 지원하기로 했으나 역시 에르도안 정부와의 마찰로 무산됐다.

 

트럼프는 곡절많은 이 기지를 둘러싼 논란에 기름을 부었다. 터키에서 핵무기에 대한 반발이 일어나면 미군이 다른 배치장소를 찾아야 할 수도 있다. 지난 7월 벨기에 신문 드모르겐은 나토 자료를 입수, 유럽에 있는 미군 핵무기 현황을 폭로했다. 벨기에의 클라이네 브로겔 기지, 독일 부헬 기지, 이탈리아의 아비아노 기지와 게디-토레 기지, 네덜란드 폴겔 기지, 터키 인지를리크 기지 등 6곳에 미군 핵폭탄 총 150기가 있다는 것이었다. 냉전의 유물인 유럽 내 미군 핵무기는 이미 곳곳에서 반대에 부딪치고 있으며 다음달 열릴 나토 회의의 이슈가 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