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가 보는 세상/해외문화 산책

'조커'가 문제일까 총기가 문제일까...영화가 되살린 미국의 악몽

딸기21 2019. 10. 2. 07:59

토드 필립스 감독의 영화 ‘조커’가 지난 7일(현지시간) 제76회 베니스 국제영화제에서 대상인 황금사자상을 받았다. 미국 만화출판사 DC코믹스 작품을 바탕으로 한 이번 영화의 주인공은 배트맨이 아닌 ‘반(反)영웅’ 조커다. 영화는 절대악의 현신인 이 캐릭터의 내면을 파고들어간다. 주연 호아킨 피닉스는 실패한 개그맨이 악당으로 변하는 모습을 실감나게 그렸으며 잭 니콜슨과 히스 레저에 이어 새로운 조커를 탄생시켰다는 평을 받았다.  

 

영화 '조커'의 포스터. 사진 워너브라더스

 

그런데 영화가 스크린에 오르기도 전에 표현의 자유와 ‘카피캣 킬러(모방범죄)’를 둘러싼 해묵은 논란이 불거졌다. 문제가 된 것은 2012년 7월 20일 미국 플로리다주 오로라에서 일어난 총기난사 사건이었다. 제임스 이건 홈스라는 남성이 영화관에 들어가 최루탄을 터뜨리며 총을 난사해 12명이 숨졌고 70명이 다쳤다. 당시 영화관에서는 조커가 등장하는 영화 ‘다크 나이트 라이즈’가 상영되고 있었다. 콜롬비아는 1999년 컬럼바인 학교 총기난사라는 비극을 겪은 적 있었다.
 

영화 ‘조커’가 개봉되면서 오로라의 희생자 가족들과 생존자들이 예전의 공포를 떠올리며 괴로워하고 있다고 미국 언론들이 보도했다. 오로라 사건 뒤 생존자 모임을 만들어 총기규제 캠페인을 벌여온 샌디 필립스 등은 제작사인 워너브라더스에 편지를 보내 “예고편을 보면서 뼛속 깊이 공포를 느꼈다”며 “영화에 폭력 장면이 불필요하게 많이 들어가 있다”고 지적했다. 필립스는 오로라 사건으로 12살 딸을 잃은 엄마다. 

 

서한을 보낸 이들은 대형 영화사가 사회적 책임을 방기했다는 사실에 분노했다고 썼다. “표현의 자유는 지지하지만, 사회에 영향력이 큰 존재일수록 책임도 크다”면서 “총기를 줄이고 더 안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우리의 싸움을 돕는 데에 영화사의 영향력을 써야 한다”고 이들은 주장했다.

 

영화 '조커'의 한 장면. 사진 워너브라더스


논란이 커지자 워너브라더스가 성명을 냈다. 모기업인 AT&T와 함께 총기 폭력을 줄이기 위한 의회 입법활동을 지원하고 있으며, 오로라 피해자들을 비롯한 총기 폭력 희생자들을 돕기 위해 기부도 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픽션은 현실이 아니다’라는 시각은 굽히지 않았다. 워너브라더스는 “스토리텔링의 기능 중 하나는 어렵더라도 복잡한 이슈를 둘러싼 대화를 이끌어내는 것”이라며 “영화도, 제작자도, 영화사도 조커를 영웅으로 떠받들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영화를 편드는 이들은 ‘극장 공격’이 극히 예외적인 사건이었을 뿐이라고 지적한다. 영화관련 데이터베이스 ‘박스오피스 모조’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의 극장 입장객은 연인원 13억명에 이르렀지만 극장 내 폭력은 거의 없었다. 영화의 폭력적인 장면과 실제 폭력사태가 연관돼 있었던 사건도 연간 한두 건에 불과했다.
 

하지만 잇달아 총기난사 사건이 발생한 미국에서 ‘조커’ 논란이 앞으로 제작될 영화나 대중문화 작품들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적지 않다. 소매체인 CVS와 월마트는 거센 여론에 밀려 매장 내 총기판매를 중단한다고 최근 발표했다. 영화사들도 비슷한 압박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전미총기협회(NRA)의 의회 로비는 미국에서 총기 규제가 번번이 무산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다. 오로라 피해자들은 워너브라더스에 “NRA 돈을 받는 정치인들에 대한 후원도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호아킨 피닉스가 연기한 영화 '조커'의 주연 조커. 사진 워너브라더스

 

워너브라더스의 ‘폭력적인 영화’가 문제가 된 것은 193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회사가 만든 갱스터 영화 ‘리틀 시저’와 ‘공공의 적’(1931년)이 폭력을 미화했다는 비판에 휩싸였다. 가장 큰 논란을 부른 것은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1971년작 ‘시계태엽 오렌지’였다. 모방범죄를 부른다는 지적에 따라 영국에서는 상영이 중단되기까지 했다. ‘내추럴 본 킬러스’(1994년)는 모방범죄를 일으켰다는 이유로 소송까지 걸렸다. 컬럼바인 고교 사건 때에도 워너브라더스의 영화 ‘매트릭스’를 흉내낸 범죄라는 지적이 나왔다.
 

총기난사나 폭력범죄의 책임을 영화사에 묻는 것은 무리한 주장일 수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폭력을 담은 영화들로 그들이 돈을 번다는 사실이다. ‘조커’가 다음달 초 개봉되면 북미 시장에서만 첫 주말 8000만달러의 티켓 수익을 거둬들일 것으로 예상된다. 총기 반대 단체 ‘건스 다운 아메리카’의 이고르 볼스키는 뉴욕타임스에 “영화와 현실을 곧바로 연결할 수 없다는 데에는 동의하며, 다만 더 나은 공동체를 만드는 데에 기업들도 함께 해달라고 요구하는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