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여기가 아닌 학교에 있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당신들이 내 어린 시절과 꿈을 앗아갔습니다. 당신들은 우리를 실망시켰습니다. 미래 세대의 눈이 당신들을 향하고 있습니다. 우리를 실망시킨다면 결코 용서하지 않을 것입니다.”
23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의 유엔본부에서 열린 기후행동 정상회의의 주인공은 단연 스웨덴 소녀 그레타 툰베리였다. 세계에 기후변화 대응을 촉구하며 ‘미래 세대 시위’의 불을 붙인 16살 툰베리는 이날 유엔 연단에 올라 각국 정상들을 향해 “당신들이 이야기하는 것은 돈과 경제성장이라는 동화 뿐”이라고 일갈했다.
이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당초 계획과 달리 회의장에 잠시 모습을 나타냈지만 14분만에 아무 말 없이 자리를 떠났다. 그 뒤 트럼프가 기자들과 유엔본부에서 만나 얘기하는 모습을 툰베리가 지켜보는 모습을 담은 사진이 세계로 전송됐고, 툰베리의 ‘레이저 눈길’이 화제가 됐다.
이에 대한 73세 트럼프의 반응은 툰베리를 조롱하는 것이었다. 툰베리는 연설에서 “우리는 대규모 멸종이 시작되는 시점에 와 있고, 사람들은 고통 받으며 죽어가고 있다. 생태계가 붕괴하고 있다”고 했다.
트럼프는 트위터에 올린 글에서 이 연설 일부분을 인용한 뒤 툰베리가 “밝고 멋진 미래를 기대하는 아주 행복한 어린 소녀로 보였다”고 적었다. 기후변화의 암울한 전망을 경고한 환경운동가가 아닌 ‘꿈 많은 어린 소녀’로 묘사하며 비꼰 것이다.
미국의 ‘기후변화 부인론자’들도 비난 대열에 가세했다. 우익 정치평론가 마이클 놀즈는 이날 폭스뉴스에 출연해 “자기 부모와 국제 좌파들에게 이용당하고 있는” “정신적으로 병든 스웨덴 아이(a mentally ill Swedish child)”라고 비난했다. 폭스뉴스는 이 코멘트에 거센 비난이 쏟아지자 결국 사과했다.
툰베리는 지난해 8월 스웨덴 스톡홀름의 의사당 앞에서 기후변화 대책을 촉구하며 1인 시위를 해 세계의 화제가 됐고 올해 노벨평화상 후보에도 올랐다. 이번 유엔 총회에 참석하기 위해 이산화탄소를 많이 뿜어내는 비행기 대신 태양광 요트를 타고 대서양을 횡단하기도 했다. 툰베리에 이어 세계의 미래 세대들이 캠페인을 이어갔고, 이번 유엔 총회를 앞두고 기후변화 대응이 글로벌 이슈로 부상했다.
기후변화 대응 따위는 나 몰라라 하던 트럼프가 예상을 깨고 기후회의에 깜짝 참석한 것도, 세계의 여론을 의식했기 때문으로 풀이됐다. 이날 회의는 각국 정상들과 정부 대표, 기업과 시민사회 대표단, 국제기구 관계자들이 참석해 2021년 파리 기후변화협정 시행을 앞두고 행동계획을 공유하는 자리였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해수면 상승과 기상이변들을 쭉 거론하면서 “전 세계에서 분노한 자연이 반격을 하고 있다”고 했고, 프란치스코 교황도 “지구가 고통받고 있지만 기회의 창은 여전히 열려 있다”며 적극적인 대응을 촉구하는 영상메시지를 보냈다.
인도의 나렌드라 모디 총리는 2022년까지 재생에너지 비중을 높이겠다고 약속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이산화탄소 배출을 2030년까지 1990년 대비 55% 줄이고, 2038년까지는 석탄 발전을 중단한다는 계획을 내놨다. 하지만 여론에 밀려 행사장에 나온 트럼프는 방청석에 머물렀다 말없이 떠났으며, 각국 정상들이 내놓은 계획도 미래 세대의 요구에는 못 미쳤다는 평가가 나왔다.
중국의 왕이 외교부장은 “몇몇 나라들이 탈퇴한다 해도 세계 공동체의 의지를 흔들거나 국제협력의 역사적인 흐름을 되돌리지는 못할 것”이라며 파리협정에서 탈퇴한 트럼프 정부를 공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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