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가 보는 세상/유럽이라는 곳

장관도, 대사도 10년은 기본...키슬랴크 교체 계기로 본 러시아의 외교 파워

딸기21 2017. 6. 27. 1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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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주재 러시아 대사인 세르게이 키슬랴크(66)가 교체돼 러시아로 돌아갈 것이라는 사실이 알려지자 CNN방송은 26일(현지시간) “논란 많았던 러시아 대사가 본국으로 귀환한다”고 썼다. 러시아 외교부 대변인은 “주요국 대사가 갑자기 교체되는 일은 없으며, 이미 지난해부터 예정돼 있던 일”이라고 밝혔다. 러시아 언론들은 이미 지난 2월 키슬랴크의 후임으로 아나톨리 안토노프 전 외교차관(62)이 지명됐다고 보도했다.

 

미국 언론들은 키슬랴크를 ‘논란 많은 대사’ 또는 ‘외교관을 가장한 스파이’라고 부르지만, 미국 대사로 10년을 보낸 키슬랴크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러시아 스캔들 이전까지는 워싱턴 외교가에서 엄청난 인맥을 자랑하던 인물이었다. 수십년 동안 뉴욕과 워싱턴, 브뤼셀을 오가며 서방과 외교전을 펼쳐온 키슬랴크같은 이들은 소련에서 러시아로 체제가 바뀌는 혼란 속에서도 이어져온 러시아의 외교 파워를 떠받치는 자산이기도 하다.

 

세르게이 키슬랴크 미국 주재 러시아 대사, 아나톨리 안토노프 후임 대사, 세르게이 라브로프 외교장관(왼쪽부터).


키슬랴크는 모스크바에서 공학을 전공하고 통상아카데미에서 공부한 뒤 1977년 외교부에 들어갔다. 1981~1985년 뉴욕 유엔본부 소련대표부에서 일했고, 이어 1989년까지는 워싱턴의 소련대사관에 근무했다. 1998년부터는 벨기에 브뤼셀에서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를 상대했다. 2003년부터 5년간 외교부 차관을 지냈고,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대통령 때인 2008년 미국 대사가 됐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 시절부터 러시아와 관련된 미국 관리들과 광범위하게 접촉한 것으로 유명하다. 영어가 유창한 그는 미국 관리들과 친교를 유지하면서도, 우크라이나 문제에선 한치의 굽힘 없이 강경한 입장을 고수했다. 공개석상에서 미국의 위선을 비판하는 것도 서슴지않았다. 니컬러스 번스 전 국무차관보는 그를 “아주 똑똑하고 경험 많고 늘 준비돼 있는 사람”이라고 평했다. 

 

문제가 불거진 것은 트럼프 정부 출범 뒤였다.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에서 쫓겨난 마이클 플린, 트럼프의 사위 재러드 쿠슈너, 제프 세션스 법무장관 등이 키슬랴크와 몰래 만났거나 접촉 사실을 숨겼다가 들통났다. 러시아 게이트에 기름을 부은 것은 트럼프 본인이었다. 트럼프는 지난달 백악관에서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교장관(67)을 만나 이슬람국가(IS)와 관련된 기밀정보를 유출했다. 이 자리에는 키슬랴크도 있었다. 외교 문외한인 트럼프가 산전수전 다 겪은 두 사람에게 기밀정보까지 자랑하듯 털어놨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비난이 들끓었다.

 

라브로프 장관 역시 미국과 서방을 상대하는 데에 이골이 난 외교관이다. 영어는 물론이고 프랑스어, 싱할라(스리랑카어), 디베히(몰디브어)까지 구사하는 라브로프는 냉전 말기인 1981~1988년 유엔 대표부에서 일했고, 이후 모스크바로 돌아가서 소련 해체기에 외교부를 추스르는 작업에 관여했다. 1991년 새로 출범한 러시아 외교부의 차관이 돼 옛소련권 국가들과의 관계를 조율했다. 1994년 다시 뉴욕으로 가 유엔 대사로 10년을 일했다. 2004년 외교장관이 됐으며 이후 13년 동안 콜린 파월부터 렉스 틸러슨까지 5명의 미국 국무장관을 상대하고 있다. 지난 2월 65세 생일을 하루 앞두고 세상을 떠난 비탈리 추르킨 유엔주재 대사도 10년 넘게 뉴욕을 지킨 안보리의 터줏대감이었다.

 

러시아의 새 주미 대사 안토노프 역시 30년 경력의 외교관이다. 유서깊은 국립모스크바국제관계대학교(MGIMO)를 나와 국방부·외교부 차관을 지내며 군축협상 등에 깊숙이 관여했다. 지난해 12월 유엔 대표부로 자리를 옮겨 대사 부임을 준비해왔다. 코메르산트 등 러시아 언론들은 그를 ‘대서방 강경파’라고 소개했다. 


당초 크렘린은 미국 힐러리 클린턴 정부가 들어설 것에 대비해, 클린턴이 국무장관 시절 상대해본 적 있는 안토노프를 내정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비록 예측이 빗나가 트럼프 정부가 들어서긴 했지만 능숙한 협상가인 안토노프는 주미 대사로는 ‘최고의 선택’이라고 모스크바타임스는 보도했다. 정확한 부임 시기는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