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하메드 알하지알리는 시리아에서 내전을 피해 영국으로 건너간 23세 대학생이었다. 그는 지난 14일 새벽(현지시간) 런던의 아파트에서 고향의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모하메드가 있던 곳은 런던 서부 켄싱턴의 그렌펠타워 14층. 불길이 낡은 공공아파트를 집어삼키고 있었다. 함께 살던 형 오마르(25)와 함께 대피하려 했지만 연기 속에 길을 잃었다.
형은 간신히 탈출해 병원으로 실려갔으나 동생은 빠져나오지 못했다. 모하메드는 방으로 돌아가 시리아의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어 작별 인사를 했다. 그가 남긴 마지막 말은 “불길이 다가왔다, 안녕”이라는 것이었다.
영국 런던 그레펠타워 화재로 희생된 시리아 난민 청년 모하메드 알하잘리(왼쪽)와 형 오마르. _페이스북
BBC방송 등 영국 언론들은 16일 그렌펠타워 화재 사망자들 중 가장 먼저 신원이 확인된 사람이 시리아 난민 청년 모하메드라고 보도했다. 그의 고향인 시리아 남서부 다라는 바샤르 알아사드 독재정권에 맞선 ‘혁명의 본산’으로 불리던 곳이고 교전도 치열했다. 그는 정부군의 공격을 피해 가족과 함께 3년 전 영국으로 왔다. 모하메드는 런던에 정착한 뒤 인프라 건설 등 공공기술공학을 공부했고 형은 경영학을 전공했다. 난민지원단체 ‘시리아연대캠페인’은 “모하메드 형제는 라마단을 맞아 난민들을 위한 축제행사를 우리와 함께 준비하고 있었다”며 “안전을 찾아 고향을 떠나 왔지만 영국은 그를 지켜주지 못했다”고 했다.
16일까지 확인된 사망자는 30명이지만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스튜어트 쿤디 런던경찰청장은 “세 자릿수가 아니길 바란다”며 “사망자들 신원을 모두 확인하기는 어려울 수도 있다”고 말했다. 여론은 ‘비통’에서 ‘분노’로 옮겨갔다. 이날 일간 더선의 커버스토리 제목은 “이제는 분노”였다. 텔레그래프도 “슬픔이 분노가 되고 있다”는 1면 기사를 실었다. 대중지 미러는 1면 톱기사에 “범죄자”라는 제목을 달았다.
늑장 대응 비난을 받고 있는 테레사 메이 총리의 정치 생명은 그야말로 벼랑 끝에 와 있다. 메이는 사건 뒤 만 하루가 지난 15일에야 현장을 찾았으나 피해 주민들과는 만나지 않았다. 16일 91세의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현장에 가서 주민들과 자원봉사자들, 소방관들을 만났다. 비난이 일자 메이는 이날 오후 뒤늦게 부상자들이 입원한 병원을 찾았다.
메이는 그렌펠타워 화재에 대한 ‘공개조사(Public inquiry)’를 지시했다. 공개조사는 대형 교통사고나 다중살인 등 대규모 인명피해가 발생한 사건이나 대중적 관심이 큰 사안에 대해 독립된 위원회를 두고 조사하는 제도다. 총리실은 이른 시일 내 법관 중에서 조사위원장을 지명할 것이라고 밝혔다. 곧 조사위가 꾸려지고 청문회가 열릴 것으로 보인다. 메이 정부도 이번 사안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동시에, 보수당 정부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크다는 것을 의식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과거 토니 블레어 노동당 정부가 이라크전 참전 결정을 한 과정도 공개조사 대상이 된 바 있다.
사디크 칸 런던시장은 불길이 급속히 번진 것과 관련해, 2015년 완료된 그렌펠타워 보강공사가 안전규정에 맞게 이뤄졌는지도 조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제러미 코빈 노동당 대표도 현장을 방문한 뒤 “진실이 드러났다”며 정부의 무능을 질타했다. 노동당 소속 해리어트 하먼 의원은 트위터에 “총리는 주민들에게 귀를 기울일 준비가 돼 있었어야 했다”고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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