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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지스틱스

딸기21 2017. 5. 22.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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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지스틱스 The Deadly Life of Logistics : Mapping Violence in Global Trade

데보라 코웬. 권범철 옮김. 갈무리


갈무리 책답게 -_- 번역은 목에 탁탁 걸린다. 내용은 중언부언 반복이 많고, 밀도가 낮다. 사례로 든 것도 너무 적고, 한마디로 세포 없이 뼈대만 있는 느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미있게 읽은 건 저자의 문제의식, 그리고 ‘로지스틱스’를 가운데에 놓고 본 세계 경제질서라는 프레임이 눈에 띄어서다. 


정확히 말하면 ‘눈에 띄어서’라기보다는, 이렇게 한번 봐야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웃소싱, 오프쇼어링, 외주화, 글로벌화 등등 지난 수십년 동안 세계에서 벌어진 일들 그리고 지금도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모두 이 틀로 해석할 수 있으며, 이 틀로 바라보면 많은 걸 포괄하면서 또한 새롭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저자의 말을 빌면 “운동화는 여전히 스마트폭탄보다 온라인 주문이 더 쉬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두 가지를 우리에게 가져다주는 산업은 경영학과 전쟁술의 구별을 점점 더 어렵게 만들고 있다. 오늘날 전쟁과 무역은 공급 사슬에 의해 조직되고, 그것의 형태를 취한다.”(12쪽)



전쟁의 민영화, 경제의 글로벌화. 그 두 가지는 서로 다른 것의 결합일 수도 있고, 혹은 같은 것의 두 얼굴일 수도 있다. 이제 ‘보급(로지스틱스)’은 그 자체로 전쟁이 되었고, 생산과 유통은 하나의 흐름으로 합쳐졌다. 공장은 생산하고 상인들은 유통하고 소비자는 돈 주고 사서 쓰는 게 아니다. 방글라데시에 물건을 만들고 홍콩의 지사에서 유통망을 관리하며 미국 시장의 상점에 내놓는 식의 총체적인 흐름이 이제는 ‘경영’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이 사슬의 고리들을 세계의 어디에 얼마만큼 배분하느냐가 곧 경제가 된 시대다.


유류가 전쟁의 본성을 개조하기 시작했던 것은 1차 세계대전이지만 그럼에도 가축은 여전히 결정적인 영향을 수행했고 사료는 막대한 로지스틱스상의 문제로 남았다. 1차 대전 동안 영국에서 프랑스로 수송된 물자 중 가장 많은 양을 차지한 것은 탄약이 아니라 말에게 먹일 귀리와 건초였다. 2차 대전에서는 산업전의 로지스틱스가 무대의 중심을 차지했다. 처칠은 연합 작전에 대해 논평하면서 이렇게 외쳤다. “결국 휘발유가 모든 이동을 지배했다.” 이 모든 것에서 결정적인 것은 변화하는 폭력의 기술이 수단과 목적의 관계를 재조직했던 방식이다. 군사 로지스틱스는 산업전의 부상과 더불어 전략과 전술을 이끌게 되었고, 점점 본질을 구현하는 방법이 되었다. (53-54쪽) 


로지스틱스에 대한 기업의 관심은 2차 대전 동안 시작되었다. 2차 대전 동안 그리고 그 이후 미국의 전장을 지원하기 위해 설계된 사회적·산업적 기술이 결정적이었다. 처음에는 점령지 일본에서의 노동자 훈련을 통해서, 이후에는 한국전쟁 물자 도급을 통해 이 기법을 확산함으로써 미군의 또 다른 혁신인 표준 수송 컨테이너는 무역 지구화를 뒷받침하는 가장 중요한 기술적 혁신이 됐다. 로지스틱스의 금전적·전략적 가치에 대한 기업가의 관심은 1950년대 말과 1960년대 초 사이에 급격하게 늘었다. 1965년 4월 6일 피터 드러커는 “물적 유통은 ‘전체 비즈니스 과정’을 말하는 또 다른 방식이다”라고 단언했다. 드러커는 새로 꾸려진 물적유통관리전국협회 강연에서 유통은 “오늘날 비즈니스의 최전선”이라고 주장했다. (55-56쪽)


전후 로지스틱스를 경영 관리의 중심으로 만든 다른 현실적인 요인들이 있었다. 컴퓨터가 핵심이었다. 1950년대의 이윤 감소는 1958년의 경기 후퇴로 이어졌고 미국 대기업이 운영비용 절감을 추구하게 만들었다. 로지스틱스가 문제 해결책으로 간주됐다. (59쪽)


전쟁의 기술이 경제에, 경제의 흐름이 전쟁에 물려들어간다. 민영화된 전쟁의 맨 얼굴을 보여준 아프가니스탄 전쟁과 이라크전쟁에서 미 국방부와 미군과 용병들은 ‘로지스틱스’라는 이름으로 통합됐다. 더 중요한 건 글로벌 경제가 전쟁에 미치는 영향이 아니라 경제의 글로벌화 자체가 전쟁의 양상을 띠고 있다는 것이다. 국가의 힘을 빌린 자본 혹은 자본을 위해 일하는 국가에게, 이 ‘흐름’에 장애가 되는 모든 것은 ‘공공의 적’이다. 항만 노동자들의 시위, 파이프라인을 끊는 원주민들의 사보타주, 노조의 파업, 극단세력의 공격과 지역 분쟁, 심지어 종교 갈등과 소말리아 해적까지도. 


미국에서는 1980년 ‘스태거스 철도법’이 제정돼 “극적인 고용 감소와 점진적인 임금 하락 그리고 노조의 협상력 위축”을 낳았다. 철도 부문의 규제가 남아 있었음에도 그랬다. 트럭운송산업은 1978년부터 1996년까지 탈규제 시기 동안 노조 가입률이 46%에서 23%로 떨어졌다. 1980년의 자동차운송법은 차량 소유주가 아닌 운전기사들에 위험을 전가하게끔 조장했고 노조 없는 ‘개인 트럭사업자’가 널리 퍼지게 만들었다. 배들은 편의치적 즉 규제 없는 남의 나라에 선적을 두는 방식으로 규제에서 벗어났다. 해운의 국제 시장이 만들어지면서 이미 1950년대부터 배 주인들은 전투적인 선원노조를 무너뜨릴 수 있었다. 미국 해운 노동자들은 수세에 빠졌다. 물류 노동자들이 무너지는 사이에 미국과 글로벌 자본은 자유무역이라는 이름으로 장벽들을 무너뜨렸다. 신자유주의는 로지스틱스 시스템을 위한 이데올로기도 했던 것이다. 


흐름을 막는 국가 단위의 조치들은 ‘규제완화’라는 이름으로 제거됐다. 위험 요소들을 관리하고 차단하기 위한 모든 조치들이 ‘안보’라는 이름으로 통합됐다. ‘공급 사슬의 관리’라고 부르는 것의 다른 이름은 바로 안보다. 지구를 잇는 흐름은 한번 끊기면 파장이 너무 크다. ‘적시 Just-in-time 운송 체계’는 공장 하나의 파업조차, 항만 노동자들의 며칠짜리 방해공작조차 용인하지 않는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위험한 것들을 걸러내고 ‘예방’하는 것이다. 그것이 전쟁이라면 예방적 공격 혹은 선제 타격 같은 이름이 붙을 것이며, 통상적인 보안관리라면 검문검색과 격리와 노조파괴가 되는 것이다. 가끔씩 이 두 가지는 합쳐져서, 군사작전 수준의 보안관리와 로지스틱스의 탈을 쓴 군사작전(예를 들면 소말리아 해적 퇴치작전)이 되곤 한다. 이 모든 것을 통틀어 저자는 공급 사슬 보안 SCS이라 부른다. 


공급 사슬 보안의 핵심은 상품 흐름과 그것을 뒷받침하는 교통·통신 인프라를 보호하는 것이다. 무역흐름을 교란할 잠재력이 있는 사건과 세력을 통치하고자 하는 국가적, 초국가적 프로그램들을 통해 형성된다. 공급 사슬 보안은 화산 폭발이나 테러 공격처럼 예측 불가능한 위협으로부터 취약성을 줄이기 위해 선제 기법을 동원하며, 교란 이후의 순환을 회복시킬 대비 조치를 동원한다. 공급 사슬 보안은 교란을 일으키는 사람들과 위험물을 식별하고 이들을 순환 시스템에서 떼어 놓는 위험 관리에 의지한다. (123쪽)


글로벌 공급 사슬의 관리는 그 이전 시대의 ‘글로벌 분업체계’와는 의미도 맥락도 다르다. 한국은 섬유제품을 생산하고 미국은 사가는 식의 분업이 아니다. 이 공급 사슬은 자원과 노동력과 인프라와 세금 등의 여러 요소를 놓고 움직이며, 진화한다. 동시에 이 사슬은 세계의 지도를 바꾼다. 로지스틱스가 창출하는 새로운 세계지도 mapping는 공급 사슬의 교란을 막는 것을 우선 과제로 한다. 해적을 막을 유럽의 군대를 배치하고 이라크에 미군 토마호크 미사일을 퍼붓고 남중국해에서 미군 항모가 중국 함정과 대치하게 만드는 것은 국가 단위의 지정학인 동시에 ‘물류’ 그 자체다. 


9·11의 직접적인 여파로 미국 관리들은 항구에 대한 새로운 보안 계획을 조용하고 신속하게 설계하기 시작했다. 이는 국내 공간뿐 아니라 전지구적 보안을 개조할 것이었다. 미 당국이 규정하고 관리하는 컨테이너보안협정 CSI은 미국행 화물을 검사하기 위해 수십 개의 외국항에 관세국경보호청 직원들을 파견한다. 더불어 세관원들은 ‘테러리스트나 테러 무기가 미국으로 오기 전에 고위험 화물 컨테이너를 식별하고 미리 걸러낸다. 현재 전 세계 대부분의 관세청이 고위험 컨테이너가 입국 항구에 있는 동안 표적으로 삼고 검사한다. (131쪽)


방글라데시에서 1500명의 부두 노동자들이 2010년 10월 치타공 항만국의 컨테이너와 화물운영 민영화에 저항하기 위해 파업에 들어갔을 때 정부는 군대를 동원했다. 정확히 1년 뒤 미국은 워싱턴 주의 노동분쟁에 개입했다. 곡물 기업 EGT는 롱뷰항에 새 가공시설을 만든 뒤 국제항운노조가 아닌 노동자와 불법으로 계약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EGT의 배를 경호하기 위한 연안경비대 동원을 승인했다. 로지스틱스에 관련된 노동 행위를 국가안보 문제로 취급하는 일이 점점 보편화되고 있는 것이다. (177쪽)


소말리아 해적은 로지스틱스의 세계에서 삐져나온 송곳이고, 뚫린 구멍이다. ‘공해 상’ 혹은 ‘통제 밖’의 해적들이 물류를 끊는다. 그래서 국제사회는 안보리 결의와 ‘지부티 강령’ 등의 이름으로 군사행동에 나서 해적 퇴치작전을 벌이고 있다. “소말리아에서 영국은 1960년에 포스트식민적 영토분할을 했다. 1990년대 초 미국 최초의 아프리카 지상전과 유엔이 개입된 폭력이 소말리아에서 일어났다. 20세기 말과 21세기 초에 해적 행위가 늘어난 주된 요인이 된 사건은 불법 남획과 유독성 폐기물의 불법 투기였다. 이 두 가지가 결합하여 소말리아 어업을 완전히 파괴해버렸고 해안 공동체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중요한 생게 원천을 제거해버렸다. 유독성 핵폐기물이 그 바다에 불법 투기되고 있다. 소말리아 해역은 유럽 산업폐기물의 무료 쓰레기 하치장이 됐다. 유럽 기업이 아프리카의 뿔에 우라늄을 버리는 데에는 톤당 2.5달러가 든다. 유럽에서 처리하는 비용의 100분의 1이다.”(219-220쪽) 


이런 사실은 가려지고, 해적은 세계의 공적이자 안보 위협이 된다. 선박에 무장 경비원을 태우거나 무장 호위선이 따라붙게 함으로써 수에즈에서 인도양으로 이어지는 물길은 ‘안보 민영화’의 실험장이 된다. 붙잡힌 해적들은 지구상 어느 나라의 보호도 받지 못하는 사람들, ‘카리브 해적’의 낭만 따위는 찾아볼 수 없는 지구의 사생아들이다. 


“해적 사건을 기소할 시스템은 개발되지 않았다. 어떤 국가들은 미심쩍은 해적들을 풀어주지만 어떤 국가들은 그들을 구금하고 국내 법정에 세운다. 또 다른 국가들은 마주친 장소에서 그냥 살해한다는 소문도 있다. 점점 흔해지는 것은 소말리아에 이웃한 가난한 국가들이 돈벌이를 위한 감금 공간으로 전환되는 것이다. 미국과 영국 그리고 유럽연합은 모두 케냐와 협정을 맺어 해적을 기소하게 했다. 2006년과 2011년 사이 20개 국가가 1063명의 소말리아 해적을 기소했다. 그중 5개 국가는 유엔의 재정지원을 받으며 해적을 기소하고 있었다.”(238쪽)


이 지구에서 사람들은? 노동자는 탄압받을 수도 있고, 노동자의 또 다른 이름인 소비자는 편할 수도 있다. 소비자의 다른 얼굴인 시민은 감시를 받을 수 있고, 세계화라는 이름의 물류가 저지르는 폭력에 맞서 싸울 수도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이미지와 달리 이제 지구상 수많은 노동자들은 총체적인 의미에서 ‘물류 노동자들’이라는 것이다. 동시에 노동자들 자체가 물류의 대상이다. 생산은 어느 지역 어느 한 공장에서 수십년간 이뤄지는 게 아니며, 그 공장의 노동자들은 그 지역에 수십년 간 머무는 이들이 아니다. 생산과 수송은 모두 섞여 지구를 가로지른다. 


로지스틱스 혁명 와중에 지구적으로 심화된 경향성들은 모두 이 현실과 맞닿아 있다. 저자는 그 세 가지로 1)우발성의 증가(임시직과 계약직 등 불안정한 노동형태가 늘어난다), 2)노조의 약화 3)인종화를 든다(151쪽). 경제적으로 취약한 (인종) 커뮤니티에 속한 사람들은 그 취약성 때문에 글로벌 물류 속에서 약한 곳에 자리하게 되고, 그래서 더 취약해지는 악순환이 일어난다. 항구 트럭 운전사들의 30~50퍼센트는 불법 이민자들이며, 그들에게는 ‘인증증명서’가 있을 뿐 노동 보호는 없다. 책에는 구체적으로 나오지 않지만 아프리카의 트럭 운전사들 상당수는 마사이족등 취약한 유목민이고, 어디에서나 국경을 오가는 트럭 운전사들은 불법 이주와 합법 노동의 경계 사이를 넘나든다. 두바이 주민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이주노동자들에게 파업과 노조는 불법이며, 이들의 ‘임시노동허가’는 언제라도 끝날 수 있다. 


두바이 물류그룹이 미국 항만을 인수할 거라 해서 조지 W 부시 때 의회가 난리를 치며 막아섰지만 아랍에 테러리스트의 이미지를 덧씌운 ‘이미지 안보 장사’가 낳은 헤프닝이었을 뿐이다. 두바이 물류그룹이 아니라 두바이라는 물류 모델 자체가 로지스틱스의 중심을 지향하는 세계의 거대도시들로 퍼져나가고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미국 회사가 이라크 남부에 만든다는 ‘바스라 로지스틱스 도시’, 필리핀의 ‘국제관문 로지스틱스 도시’ 등의 프로젝트들을 저자는 사례로 들고 있지만 솔직히 말하면 이 부분은 업체 보도자료를 너무 확대해석한 것같은 느낌.)


저자가 중요하게 본 포인트 중 또 하나는 로지스틱스의 지도 속에선 인간의 '몸’에도 이전과 다른 정치학이 적용된다는 것이다. 행위가 일어난 뒤에 대처하면 늦다. 예방적 안전 관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노동자/소비자/시민의 몸을 장악하는 것이다. 테러용의자나 파괴분자 혹은 과격파를 미리 구분해 격리하고 차단하기 위해. 자연의 순환도, 노동력과 물자의 이동도, 우리의 몸 자체도 이 지도 위에 표기돼야 할 생산과 공급의 관리 요소가 되는 것이다. 노동자의 몸은 자원이자 비용이다. 가져다 쓰고 다른 곳에 버리는 노동력들에게, 이제는 20세기에 필요했던 훈육(트레이닝)조차 필요가 없다. “공급 사슬 관리자들이 자동화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많다. 인간은 신뢰할 수 없는 자원이다. 관리자는 자동화를 통해 노동력을 ‘안정시킬’ 수 있다.”(171쪽) 노동자들은 그저 코드로, 데이터로 존재할 뿐이다. 


헤쳐나갈 방법은? 보이지 않는다. 공동체와 내 몸을 저항하는 것밖에.


“2011년 항만 용접공이자 활동가인 김진숙은 한국 부산항의 갠트리 크레인을 점거했다. 노동자를 해고하고 임금을 삭감하려는 한진의 계획에 맞선 그녀의 점거는 땅에서 벌어지는 노동자들의 살쾡이 파업과 연계하여 2011년 6월에 시작했다. 파업 중인 노동자들이 결국 계약에 대한 양보안을 받아들였지만 김진숙은 자리를 지켰다. 수천 명이 땅 위에서 그녀를 중심으로 대열을 만들었다. ‘희망버스’라고 불린 이것은 그녀에게 로지스틱스적·정치적 지지를 보내는 것이었다. 309일이 지난 뒤 진숙의 점거는 성과를 거두었다. 노동자들은 재고용됐고 체불임금을 받았다. 한국에서 15년만에 처음 있는 노동의 승리였다.”(17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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