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네 책방

앨프리드 러셀 월리스, '말레이 제도'

딸기21 2017. 5. 14. 15:42

다윈이 맬서스의 논문을 읽고 종분화의 개념을 구체화한 지 15년 남짓 지난 1855년 여름, 앨프리드 러셀 월리스라는 젊은 자연사학자가 '자연사연보'에 다윈의 미발표 이론에 위험하리만큼 가까이 다가선 논문을 발표했다. 월리스와 다윈은 사회적 및 이념적 배경이 전혀 달랐다. 지주이자 성직자이며, 신사 생물학자에다가 곧 영국에서 가장 찬사를 받는 자연사학자가 될 다윈과 달리, 월리스는 먼마우스셔의 중산층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도 맬서스의 인구 논문을 읽었다. 다윈처럼 월리스도 표본과 화석을 채집하기 위해서 먼 해외로-브라질로-여행에 나섰고, 여행을 통해서 새롭게 변모했다.

아마존에서 돌아올 때 배에 불이 나는 바람에 수중에 있던 얼마 안 되던 돈도 다 잃고 채집한 표본도 다 잃어 더욱더 가난해진 월리스는 1854년에는 동남아시아의 끝인 말레이 반도의 화산섬들로 향했다. 다윈처럼 그도 그곳에서 서로 유연관계가 가까운 종들이 좁은 해협을 두고 서로 거리가 떨어져 있음에도 놀라울 만큼 차이를 보인다는 것을 관찰했다. "답은 명확했다. 가장 적합한 (변이체)가 살아남는다. 이런 방식으로 동물의 모든 부위는 요구받는 그대로 변형될 수 있다." 그가 생각을 표현하는 데에 쓴 용어들-변이, 돌연변이, 생존, 선택-조차도 다윈의 것과 놀라울 만큼 비슷했다.

-싯다르타 무케르지, <유전자의 내밀한 역사> (58쪽)


인용한 것은 요즘 읽고 있는 무케르지의 책이다. 다윈과 월리스, 월리스와 다윈. 저 구절에 나와 있는 월리스의 말레이 탐사를 담은 것이 <말레이 제도>(앨프리드 러셀 월리스. 노승영 옮김. 지오북)라는 책이다. 저 인용구에는 '말레이 반도'로 나와 있는데, 실제로 월리스가 탐사를 해서 책에 담은 것은 지금의 인도네시아와 파푸아뉴기니가 포함되는 '말레이 제도'라고 쓰는 게 맞다.



<말레이 제도>는 국내에 처음 번역된 월리스의 책이라고 한다. 이 책의 의미, 월리스가 포착한 진화의 현상과 진화에 대한 통찰력 등은 옮긴이 후기에 잘 정리돼 있다. 


각주 빼고도 800쪽 가까이 된다. 처음에는 160여년 전의 기록을 이렇게 두꺼운 분량으로 읽어야 하나 하는 생각도 잠깐 했다. 읽고 나니, <아마존>을 독파했을 때처럼 뿌듯하다! 1840년대의 영국 자연사학자가 자바, 수마트라, 보르네오, 술라웨시, 뉴기니 등을 훑으며 남긴 기록이니 자연 못잖게 당대의 사회상에 대해서도 풍성하게 기록돼 있다. 간혹 오래된 책을 읽을 때면 느끼는 것이지만, 100년 넘은 책들은 참 재미있다. 


자연사뿐 아니라 민족지학적인 면에서도 책은 무지 재미있다. 당시 뉴기니 작은 섬의 항구에서까지 "술라웨시 섬의 전통 옷감, 영국의 흰색 캘리코 면직물, 아메리카의 표백하지 않은 무명천"(601쪽)이 거래되고 있었다는 것도 흥미롭다. 네덜란드의 식민통치 체제를 예찬하고 '야만인'들을 때론 존중하거나 때론 경멸하고 품평하는 것은 그 시대의 시각을 보여준다. 공정무역의 효시로 알려진 막스 하벌라르 커피 회사의 이름이 된 당대의 책 <막스 하벨라르>에 대한 비판도 눈에 들어온다. 인종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한 월리스로서는 네덜란드가 원주민들을 '착취'하고 있다는 주장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것이다. 


하지만 이런 제국주의 열강의 시각보다는 1세기 반도 더 지난 과거의 글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지금 우리에게도 와닿는 통찰이 스며들어 있다는 게 더 눈에 띄었다. 지구상의 생명체들이 '인간을 위해' 진화해온 것이 아니라는 발견은 자칫 인간의 지적 발전이 그들을 멸종으로 몰고갈 수 있다는 생각으로 이어진다. 더불어, 영국의 발전과 '미개 사회'를 비교하면서 월리스는 단순한 우열감에 젖기보다는 폭력적인 자본주의의 순환이 사람들에게 미칠 파괴적인 영향에 대한 통찰로 나아간다.


발리 섬과 롬복 섬 사이에 있는 좁지만 깊은 해협이 생태학적 구분선이 된다는 것은 다른 책에서 읽었는데 그 '월리스 선'을 발견한 게 월리스라는 건 처음 알았다. 오랑우탄을 마구 사냥하고 표본을 채집하는 건 지금은 상상도 못할 일이지만, 탐험하고 관찰하고 표본을 모으고 분류하고 분석하는 오래 전 과학자의 노고에는 치하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과일의 여왕'이라는 두리안에 대한 상세한 소개, 바비루사(멧돼지)와 오랑우탄에 대한 묘사, 사고야자의 쓰임새에 대한 생생한 기록, 포르투갈 세력이 물러난 지 한참 지났는데도 오히려 토착화돼 현지에 남아 있는 포르투갈계의 크리스마스 문화 등등은 진짜 재미있다. 


월리스는 극락조 두 마리를 산 채로 영국에 데려갔다. 그 녀석들을 먹이기 위해 증기선에는 '드물었던' 바퀴벌레를 덫을 놓아 밤마다 한 시간씩 사냥했다는 일화도 나온다. 진화론이 이런 사람들의 노력에 의해 어떻게 틀을 갖춰갔는지를 살피는 건 이 책에선 오히려 '덤'이다.



늙은 다야크족 촌장들이 내 정보통인데, 그들에게 들은 이야기가 하도 신기해서 그대로 옮긴다. "미아스(오랑우탄)를 다치게 할 만큼 힘센 동물은 하나도 없습니다. 유일하게 싸우는 동물은 악어입니다. 밀림에 열매가 하나도 없으면 미아스는 먹이를 찾아 강기슭에 가는데 이따금 악어가 미아스를 잡으려 들지만 오히려 미아스가 녀석을 올라타 손과 발로 때리고 찢어발겨 죽입니다." 

시문잔 강에 사는 발로다야크족 촌장 오랑카야도 이렇게 말했다. "미아스는 천적이 없습니다. 악어와 비단뱀 말고는 어떤 동물도 미아스를 감히 공격하지 못합니다. 미아스는 언제나 있는 힘을 다해 악어를 죽입니다. 위에 올라타서 주둥이를 벌려 찢고 멱을 뜯어냅니다. 비단뱀이 공격하면 손으로 붙잡고 물어서 금방 죽입니다. 미아스는 힘이 엄청나게 셉니다. 밀림에서 그만큼 힘센 동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96쪽)


멧돼지는 술라웨시 섬 고유종인 듯하지만 이 중에서 훨씬 신기한 동물은 바비루사다. 말레이어로 '돼지사슴'이라는 뜻인데, 다리가 길고 가늘며 구부러진 엄니가 뿔을 닮아서 붙은 이름이다. 이 별난 동물은 전체적 생김새는 돼지를 닮았지만 낙과를 먹을 때 주둥이로 땅을 파지 않는다. 아래턱 엄니는 매우 길고 뾰족하지만 위턱 엄니는 여느 동물처럼 아래로 자라는 것이 아니라완전히 뒤집어져 위로 자라 주둥이 살을 뚫고는 눈 근처에서 뒤로 구부러지는데, 늙은 개체의 경우 길이가 20~25센티미터에 이르기도 한다. 뿔처럼 생긴 이 기묘한 이빨은 쓰임새가 아리송하다.

(352쪽)


내가 동쪽 끝에 온 목적 중 하나가 달성되었다. 왕극락조의 표본을 손에 넣은 것이다. 내가 지금 바라보고 있는 이 작고 완벽한 생물을 본 유럽인은 거의 없었으며, 유럽에서는 이 새가 아직도 매우 불완전하게만 알려져 있다. 상선과 해군의 항로에서 훌쩍 떨어져 발길이 거의 닿지 않는 바다 위 외딴 섬, 사방으로 멀리 뻗은 무성한 야생의 열대 숲, 주위에 몰려든 거칠고 미개한 야만인, 이 모든 조건이 '아름다운 것'을 응시하는 나의 감정에 영향을 미쳤다. 이 작은 피조물이 세대를 거듭하며 거쳤을 누대의 과거를 생각했다. 이들의 사랑스러움을 보아줄 지적 존재의 눈에 띄지 않은 채 해마다 태어나고 이 캄캄하고 어두침침한 숲에서 살다가 죽었다니, 아무리 생각해도 아름다움이 헤프게 낭비된 것만 같았다.

다른 한편으로는 문명인이 이 오지를 찾아와 이 원시림 귀퉁이에 도덕적, 지적, 물질적 빛을 가져다주면 유기적 자연과 무기적 자연의 조화로운 관계가 교찬되어 그만이 즐기고 감상할 수 있는 놀라운 구조와 아름다움을 지닌 바로 이 존재가 사라지고 결국 멸종할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서글프다. 이렇게 생각해 보면 모든 생물이 인간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님을 분명히 알 수 있다. 많은 생물은 인간과 아무런 관게가 없다. 이들의 생명 순환은 인간과 별개로 흘러왔으며 인간의 지적 발달이 진행될 때마다 교란되거나 파괴된다. 이들의 행복과 기쁨, 사랑과 미움, 생존투쟁, 격렬한 삶과 이른 죽음은 자신의 안녕과 영속과만 직접적 관계를 맺으며, 서로 밀접하게 연관된 수많은 생물의 동등한 안녕과 영속에 의해서만 제약될 것이다.

(559쪽)


우리의 거대한 제조 시스템, 막대한 자본, 치열한 경쟁 때문에 우리의 직기와 작업장에서 생산한 물건을 이 수많은 미개인들에게 떠안겨야 하는 상황에서 우리가 공급 가격을 현재의 두 배, 아니 세 배로 올리면 적어도 이들 중 절반은 물질적으로 조금도 열악해지지 않을 것이며 정신적으로는 틀림없이 개선될 것이다. 이와 동시에 가격 이상의 차액이 또는 그 상당 부분이 제조업 노동자들의 호주머니에 들어갈 수 있다면 수천 명이 결핍에서 안락으로, 굶주림에서 건강으로 올라설 것이며 범죄의 주요한 동기 중 하나로부터 벗어날 것이다. 

...해악이 이 정도로 크다면 우리의 제조업과 상업을 열렬히 숭배하는 사람들은 앞으로의 발전이 바람직한지 의문을 품어야 마땅하다. ...우리는 이런 결과를 낳은 체제를 무작정 우러러보기 전에 다시 생각해보아야 하며 이 체제를 더 확장해야 하는가에 대해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야 한다. 우리 상업의 성장이 순전히 자연적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님도 잊으면 안 된다. 입법자들은 줄곧 상업을 진흥했으며, 영국의 선단과 군대는 상업을 보호하여 부자연스러운 풍요를 억지로 이뤄냈다. 이러한 정책이 지혜롭고 정의로운가에 대해서는 이미 의문이 제기되었다. 

(595쪽)


매우 낮은 문명 단계에 있는 사람들에게서 이런 완벽한 사회 상태에 접근하는 방법을 찾을 수 있다니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나는 남아메리카와 동양에서 야만인 집단과 함께 지냈는데, 이들은 법도 없고 법정도 없으나 마을 사람들이 자신의 의견을 자유롭게 표현한다. 각 사람은 이웃의 권리를 사려 깊게 존중하며 그러한 권리를 침해하는 일은 거의 또는 결코 없다. 이런 집단에서는 모든 사람이 거의 평등하다. 이곳에는 문명의 보편적 산물인 교육과 무지의 구분, 부와 가난의 구분, 주인과 노예의 구분이 전혀 없다. 부를 늘리지만 다른 한편으로 이해관계의 충돌을 일으키는 노동 분업도 찾아볼 수 없다. 인구가 밀집한 문명국가에서 반드시 생겨나는, 생존이나 부를 위한 치열한 경쟁과 투쟁도 없다.

우리는 지적 성취의 측면에서 야만적 단계를 훌쩍 뛰어넘어 진보했음에도 그에 부합하는 도덕적 진보는 이루지 못했다. 18세기, 특히 지난 30년 동안 우리의 지적, 물질적 성취가 너무 급속히 이루어진 탓에 우리는 그 결실을 온전히 거뒤 못했다. 우리는 자연의 힘을 장악하여 급속한 인구 증가와 거대한 부의 축적을 이루었으나, 그와 함께 막대한 빈곤과 범죄가 생기고 추악한 감정과 사나운 정념이 자라나 영국인의 정신적, 도덕적 상태가 평균적으로 낮아진 것이 아닌지, 악이 선을 능가한 것이 아닌지 묻지 않을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자연과학과 그 현실적 응용에서 우리가 거둔 놀라운 진보와 비교하면 우리의 통체 체제, 사법 체제, 국가 교육 체제, 전반적인 사회적 도덕적 조직 체제는 여전히 야만 상태에 머물러 있다. 우리가 자연의 법칙에 대한 지식을 상업과 부의 확장에 활용하는 데에만 정력을 쏟는다면, 이를 지나치게 추구했을 때 필연적으로 따르는 악덕이 어마어마한 규모로 증가하여 걷잡을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

이제 우리는 문명이 소수의 부와 지식과 문화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으며 소수의 힘만으로 우리를 '완벽한 사회 상태'로 이끌 수 없음을 분명히 깨달아야 한다. 우리의 거대한 제조업 체계, 우리의 대규모 상업, 우리의 북적거리는 도시는 과거 모든 시기를 절대적으로 능가하는 참상과 범죄를 부추기고 끊임없이 일으킨다. 

우리 문명의 이러한 실패를 더 많은 사람들이 인식할 때까지는 문명인 전체의 관점에서 우리는 고귀한 야만인 계층에 비해 결코 실질적이거나 중대한 우위를 유지할 수 없을 것이다. 이것이 내가 미개인들을 관찰하면서 배운 교훈이다.

(743-744쪽)

'딸기네 책방' 카테고리의 다른 글

면역에 관하여  (0) 2017.05.28
로지스틱스  (0) 2017.05.22
앨프리드 러셀 월리스, '말레이 제도'  (0) 2017.05.14
10년 후 세계사  (0) 2017.05.08
세계사를 바꾼 화산 탐보라  (0) 2017.05.08
식물도시 에도의 탄생  (0) 2017.05.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