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남은 왜 이 시점에, 말레이시아의 사람 많은 국제공항에서, ‘조직적으로’ 범행을 계획한 것으로 보이는 사람들에게 살해된 것일까. 말레이시아 경찰이 19일 지금까지의 수사 결과를 발표하고 용의자들의 신원도 대부분 공개했으나 여전히 많은 것이 의문투성이다. ‘완전범죄’를 노렸다고 보기엔 허점 투성이이고, 오히려 미스터리가 가중되고 있다.
김정남 피살 사건의 용의자로 체포된 북한 국적의 리정철이 18일 오후 조사를 받기 위해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세팡경찰서로 연행되고 있다. 리정철은 17일 밤 잘란쿠차이라마의 한 아파트에서 체포됐다. _ 연합뉴스
왜 지금, 말레이시아에서?
경찰이 ‘주요 용의자’로 지목한 북한 국적자 4명은 앞서 체포된 리정철처럼 현지에 거주하고 있었던 사람들이 아니라, 지난달 말부터 이달 초 사이에 입국한 사람들이다. 김정남은 지난 6일 마카오에서 쿠알라룸푸르로 이동했고, 13일 다시 마카오로 갈 예정이었다. 북한이 개입돼 있었다면 사전에 김정남의 이동 경로를 파악하는 것은 힘든 일이 아니다.
북한에서 김정남을 ‘언제든 가능한 때에’ 살해하라는 이른바 스탠딩 오더가 내려져 있었다는 보도도 나왔다. 하지만 포섭돼 직접 범행을 한 여성 2명 외에 6~8명의 북한 국적자들이 움직였을만큼 대규모로, 조직적으로 저지른 짓이라면 왜 이 시점이었는지에 대한 답이 나와야 한다.
‘진짜 여권’의 수수께끼
말레이시아 당국은 수사결과를 발표하면서 위조여권이라는 증거는 없다고 했다. 실제로 경찰이 공개한 용의자들의 여권 사진은 범행 장소인 쿠알라룸푸르 제2국제공항의 폐쇄회로(CC)TV에 찍힌 얼굴과 일치한다. 주요 용의자 4명은 자신들의 여권을 가지고 범행 뒤 공항에서 출국했다. 몇몇 언론들은 이들이 이미 평양으로 돌아갔다면서 ‘귀국 경로’까지 보도했다.
진위는 확인되지 않았으나, 위조여권이 아닌 진짜 여권을 가지고 이동했다면 경로가 확인되는 것은 시간문제다. 뉴스트레이츠타임스는 “CCTV들이 없었다면 완전범죄가 될 뻔했다”고 썼으나, 공항에 CCTV가 많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도주하기 쉽게 공항을 범행장소로 택했다 하더라도, 이들이 세간의 추측대로 북한 공작원들이라면 이렇게 신원을 줄줄이 노출시킬 수 있는 위험을 감수한 이유를 이해하기 어렵다.
리정철은 왜 도주하지 않았나
17일 체포된 리정철은 가족과 함께 자기 아파트에 있다가 잡혔다. 당국은 김정남이 숨진 뒤 얼마 지나지 않아 리정철 신원을 확인하고, 감시를 하다가 급습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북한에서 노동자파견 프로그램에 따라 말레이시아에 왔다고 했고, 이는 이주노동자 거주증을 통해 확인됐다. 말레이시아와 북한 정부간에 합의된 노동자 파견 프로그램으로 와 있는 북한인들은 현지 당국이 모두 신원을 확인해놓고 있는 게 당연하다. 그런 사람을 굳이 범행에 동원한 이유는 무엇일까.
더군다나 그는 가족과 함께 살고 있었고, 가족과 함께 있다가 체포됐다. 북측의 ‘꼬리자르기’였을 것이라는 얘기도 있으나, ‘꼬리남기기’라 봐도 무방할 정도다.
여성 용의자들의 어설픈 변명
범행 이틀, 사흘만에 붙잡힌 여성 용의자들은 “영화를 찍자는 제의를 받았을 뿐”이라고 했다. 사전에 입을 맞춰놓고 있었던 것일 수도 있지만, 변명치고는 어설프다. 범행 직후 독극물이 묻은 것으로 추정되는 장갑을 벗고 버젓이 공항 화장실에서 손을 씻은 점도 의문이다. 만일 이들이 북한이 관련된 세력에게 단순히 고용된 것이었다면, 붙잡혀서 줄줄이 진술을 하게끔 놓아두었다는 점도 이상하다.
범행 만 48시간쯤 뒤인 지난 15일 베트남 여권을 지닌 여성이 붙잡혔을 때에는 주범들의 도주를 위해 시간을 벌어주는 ‘미끼’가 아니냐는 추측이 나왔다. 그런데 주범들은 범행 직후 이미 출국을 한 것으로 확인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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