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가 보는 세상

김정남 피살 계기로 본 ‘영화 같은’ 암살들

딸기21 2017. 2. 14. 2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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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형인 김정남(45)이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피살된 것으로 알려졌다. 비밀스런 암살작전은 구시대의 유물같지만, 러시아 첩보원 출신 망명자에서부터 동아프리카의 고릴라를 연구하던 여성 학자까지 여전히 세계 곳곳에서 정치적 반대파나 이익에 걸림돌이 되는 상대를 살해하는 일들이 반복되고 있다. 


크렘린 옆에서 피살된 반푸틴 정치인 넴초프

 

2015년 2월, 제1부총리까지 지냈으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에게 맞서며 야권 지도자로 변신했던 보리스 넴초프가 피살됐다. 크렘린 바로 옆에서 벌어진 사건이었다. 넴초프는 애인과 함께 차를 타고 가다가 무장 괴한들에게 총격을 받아 숨졌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내무부와 연방치안국(FSB)에 이 사건을 조사할 위원회를 만들라고 지시했지만 제대로 수사가 이뤄질 것이라는 기대는 애초부터 별로 없었다. 


보리스 넴초프. Getty Images


옛소련 시절 막강한 정보력을 자랑했던 KGB의 후신인 FSB가 나섰고, 며칠 지나지 않아 ‘체첸 출신’ 용의자들이 체포됐다. 하지만 범행을 인정했던 핵심 피의자는 “고문을 당했다”며 진술을 번복했다. ‘꼬리 자르기’ 논란에 이어 고문 의혹까지 제기됐다. 

 

소련 시절에는 대규모 정치적 숙청이 반복되면서 정적 암살은 거의 사라졌다. 1948년 스탈린의 지시를 받은 것으로 추정되는 경찰관이 유대계 지도자를 살해한 적 있고 1969년 브레즈네프 암살 기도가 적발된 것이 거의 전부다. 하지만 소련이 무너진 뒤 암살을 이용한 공포정치가 오히려 부활했다. 차르 시절의 암살이 권력의 핵심부를 겨냥한 것이었던 반면, 1990년대 이후의 암살은 반체제 인사들이나 비판자들에게 재갈을 물리기 위한 행위라는 게 큰 차이다. 


‘방사능 독극물 찻잔’과 첩보원의 죽음

 

러시아의 암살 공작이 국제적인 이슈가 되기도 했다. 아나톨리 트로피모프 FSB 부국장은 2005년 모스크바 시내에서 부인과 함께 총에 맞아 숨졌다. 그런데 그 파장은 10년이 지나도록 계속되고 있다. 발단은 트로피모프의 암살이었다. 영국으로 망명한 전직 FSB 요원 알렉산드르 리트비넨코가, 트로피모프가 푸틴의 체첸 공격에 반대했다가 살해된 것이라 주장했던 것이다. 그런데 리트비넨코 역시 이듬해 독살당했다. 영국 국적을 취득한 리트비넨코는 당시 푸틴 정권을 공개적으로 비판하는 활동을 하고 있었다. 


알렉산드르 리트비넨코. Getty Images



리트비넨코가 독살당한 것은 2006년 11월이었다. 그는 런던의 한 호텔에서 FSB 요원들과 만났고, 차를 마셨다. 그러고는 집으로 돌아와 쓰러졌고 3주 만에 숨졌다. 그의 몸 안에서는 폴로늄210이라는 방사성 독극물이 검출됐다. 영국 정부는 10년에 걸쳐 조사해 2015년 진상조사 보고서를 내놨다. 보고서는 “모든 증거를 고려할 때 FSB가 살해했고, 그 계획은 푸틴 대통령이 최종 승인한 것으로 보인다”고 결론지었다. 

 

리트비넨코와 런던의 호텔에서 만난 FSB요원 안드레이 루고보이와 드미트리 코프툰이 살해범으로 지목됐다. 폴로늄210이라는 물질은 원자로에서만 만들 수 있기 때문에 국가가 개입한 것이 분명하다고 조사팀은 밝혔다. 영국 정부는 이미 루고보이와 코프툰에게 국제 지명수배를 내렸다. 반면 러시아 측은 “터무니 없다”고 주장한다. 


‘다국적 암살공격단’ 배후엔 이스라엘 모사드?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무장조직 하마스 지도부를 ‘표적살해’하는 것으로 악명 높다. 2010년 하마스 지도자 마흐무드 알 마부흐가 아랍에미리트연합(UAE) 두바이의 고급 호텔에서 피살됐다. 두바이 경찰 조사결과 유럽 국적을 가진 11명의 ‘다국적 암살공격단’의 범행으로 밝혀졌다. 당시 알 마부흐는 두바이공항 부근 알 부스탄 로타나 호텔에 묵고 있었다. 영국인 6명, 아일랜드인 3명, 프랑스·독일인 1명씩으로 구성된 암살단은 각기 다른 비행편으로 두바이에 들어와 호텔 주변을 염탐했다. 여성도 1명 포함된 암살단은 가발과 큰 모자, 선글라스 등으로 위장하거나 테니스 복장에 라켓을 들고 관광객인 척 했다. 모두 현금만 썼고 각기 다른 호텔에 묵었으며 추적을 피하기 위해 요금카드를 집어넣는 휴대전화를 사용했다.

 

알 마부흐 암살범들로 보이는 용의자들이 찍힌 두바이 호텔의 CCTV.


염탐조가 알 마부흐의 외출을 확인하자, 살해조 4명이 전자장치로 문을 열고 들어가 숨었다. 알 마부흐는 몇시간 뒤 아무것도 모른 채 객실 문을 잠그고 방 안으로 들어왔다. 살해에는 10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암살단은 모두 공항으로 가 아시아와 유럽으로 도주했다. 두바이 체류기간은 기껏 20시간 안팎이었다. 이스라엘 첩보기관 모사드가 범행 배후에 있을 것이라는 추측이 나왔다. 암살단이 유럽 여러 나라 여권을 썼다는 것 때문에 유럽국들과 이스라엘 간 외교 마찰까지 일었다.

 

이스라엘의 암살작전은 1972년 뮌헨올림픽 테러공격 주범인 ‘검은 9월단’ 멤버들을 살해하기 위한 ‘신의 분노 작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스라엘은 이듬해 레바논 베이루트에서 ‘젊음의 봄 작전’이라는 이름으로 무하마드 나자르 등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 지도부를 암살했다. 

 

2002년 하마스 지도자 살라흐 셰하데 살해사건은 이스라엘의 표적살해 만행을 세상에 알린 계기가 됐다. 이스라엘의 F16 전투기들이 가자 지구의 아드-다라지 주거구역에 있는 살라흐 셰하데의 2층집에 미사일을 폭격, 셰하데와 함께 갓난 아기와 어린이 7명 등 14명이 숨졌다. 2004년 이스라엘은 시각장애인이자 지체장애인이었던 하마스 창설자 셰이크 아흐메드 야신과 후계자인 압델 아지즈 란티시를 잇달아 미사일 공격으로 살해했다.


언론인도 변호사도 ‘희생양’

 

암살자에게 숨지는 것은 정치인들만이 아니다. 2009년 러시아의 유명 인권변호사 스타니슬라프 마르켈로프가 모스크바에서 괴한의 총에 맞아 숨졌다. 마르켈로프는 체첸 자치공화국에서 러시아군에 살해된 이들을 위한 법정 싸움을 벌여왔다. 마르켈로프는 러시아군 용의자들을 법원이 풀어준 것에 항의하는 기자회견을 마치고 나오는 길에 목숨을 잃었다. 기자회견을 취재한 뒤 함께 거리로 나섰던 20대 여기자 아나스타시아 바부로바도 총에 맞아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곧 사망했다. 

 

체첸 인권탄압을 비판했다가 2006년 피살된 여성 언론인 안나 폴리트코프스카야 사건은 아직까지 미궁에 빠져 있다. 2008년에는 다게스탄·압하지야 분리독립운동을 취재했던 러시아 국영TV 기자 야스 슈르파예프가 자택에서 살해됐다. 이어 9월에는 잉구셰티야 자치공화국의 반크렘린 성향 언론인 마고메드 예브로예프가 경찰의 총에 숨졌다. 


환경지킴이들의 죽음

 

환경을 지키는 이들도 희생양이 되곤 한다. 다이앤 포시는 르완다에서 마운틴고릴라를 연구하던 미국의 생물학자였다. 포시는 1985년 르완다의 비룽가 산악지대에 있는 오두막에서 살해된 채로 발견됐다. 자연보호구역 지킴이로 나선 그를 미워한 밀렵꾼들이 살해한 것으로 추정된다. 


2016년 3월 8일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온두라스의 테구치갈파에서 여성들이 온두라스 환경운동가 베르타 카세레스 피살에 항의하는 행진을 하고 있다. Getty Images



지난해 3월에는 온두라스를 대표하는 생태주의자이자 지역 원주민의 인권을 위해 평생 헌신했던 활동가 베르타 카세레스가 괴한들의 총격에 숨졌다. 카세레스는 원주민 지역의 댐 건설을 막은 공로로 2015년 세계 최고 권위의 환경상인 골드만 환경상을 받은 사람이었다. 그는 늘 협박에 시달렸으며, 가족들은 채굴업자들과 수력발전회사들의 환경파괴 행위에 맞서 싸웠기 때문에 암살된 것으로 보고 있다. 

 

‘세계의 허파’ 아마존 숲을 보호하려던 브라질의 환경운동가 치코 멘데스는 1988년 축산업자들에게 살해됐다. 멘데스는 고무나무 수액 채취 노동자 출신으로, 정부의 아마존 개발정책으로 삶의 터전을 잃은 주민들의 권리 보호에 앞장섰다. 멘데스는 그가 고소하려고 했던 축산업자인 달리 아우베스 다 시우바와 그의 아들, 직원에 의해 집 앞에서 살해됐다. 멘데스처럼 아마존 보호 활동을 하던 미국인 도로시 스탱 수녀는 2005년 브라질 파라 주에서 불법 벌목꾼들과 농장주들이 고용한 살인 청부업자들의 총탄에 목숨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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