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지난 7월 미국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대선후보로 확정된 힐러리 클린턴은 트위터에 ‘역사’라는 한 마디를 올렸다. 미국 민주·공화 양당을 통틀어 역사상 첫 여성후보가 된 것에 대한, 짧지만 강력한 논평이었다.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의 민주당 전당대회장 연단을 메운 화면은 유리천정이 깨져나가는 장면을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아마 클린턴이 대선에서 이겼다면, 뉴욕의 축하파티에서도 비슷한 장면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클린턴은 승리를 예상하면서 자축 무대로 유리로 된 건물을 택했으니까. 하지만 결과는 공화당 도널드 트럼프의 승리였다. 300만표 가까운 표를 더 얻었음에도 미국 대선의 구조적인 문제인 간접선거, 승자독식 제도 탓에 그는 패했다.
힐러리 클린턴 인스타그램(www.instagram.com/hillaryclinton)
그래도 역사가 지워지지는 않는다. 클린턴이 트위터에 ‘역사’라는 한마디를 올리기까지, 유독 여성정치의 불모지였던 미국에서 240년 동안 싸워온 여성들이 있었다. 여성들의 참정권이 이 나라 헌법에 명시된 것은 1920년이지만 이미 1872년에 빅토리아 우드헐이라는 여성이 여성평등당이라는 정당을 만들어 대선 후보로 나섰다. 1884년에는 여성으로서는 처음으로 대법원 법정에 선 기록을 세운 변호사 벨바 락우드가 역시 여성평등당 후보로 대선에 출마했다. 이들을 비롯해, 1972년 처음으로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 나섰던 셜리 치좀 같은 이들의 싸움이 클린턴의 역사를 만들어냈다.
클린턴의 ‘여성성’은 흔히 가려져 있었으나, 실상 그는 여성 투사였다. 어릴 적부터 퍼스트레이디, 상원의원, 국무장관을 거치기까지 여성의 권리를 옹호하고 여성들을 위해 목소리를 내려는 싸움을 멈추지 않았다. 결혼 뒤에도 클린턴이라는 남편 성 대신에 로드햄이라는 성을 고집했던 그는 ‘똑똑한 여자’에 대한 사회적 반감과 계속해서 싸워야 했고, 그 과정에서 정치인으로 가다듬어졌다. 그러나 그에게 덧씌워진 것은 마녀의 이미지였다. 2016년 대선에서, 때로는 노골적이고 때로는 은밀한 마녀사냥을 클린턴은 이겨내지 못했다. 인터넷에는 ‘그녀를 목매달라’는 미국판 ‘일베’들의 댓글이 줄줄이 달렸다.
클린턴을 ‘여성후보’가 아닌 ‘인사이더 후보’로 낙인찍은 가장 큰 요인은 역설적이지만 그가 여성이라는 점이었다. 워싱턴의 싱크탱크 브루킹스연구소 한국 석좌를 지낸 캐서린 문은 경향신문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한 적 있다. “트럼프는 클린턴을 인사이더라고 공격하는데, 넌센스다. 남성이고 엄청난 돈을 가진 그는 미국과 전세계의 권력구조 내부에 있었다. 워싱턴 제도 속에 얼마나 오래 있었느냐만 놓고 따진다면 버니 샌더스도 인사이더다. 클린턴은 남편의 지위, 자신의 워싱턴 네트워크 때문에 인사이더로 색칠되기는 했지만 그는 여성이다. 21세기 미국에서 여성은 인사이더가 될 수 없다.” 여성으로서 기성 정치나 제도와 싸워온 클린턴의 모습은 가려졌고, 결과적으로 그는 패했다. 클린턴‘조차도’ 벽을 넘어설 수 없었다는 사실은 세계의 여성들이 처한 현실을 그대로 보여준다.
독일 정부 인스타그램(www.instagram.com/bundeskanzlerin)
지금 세계를 움직이는 인물 중 하나는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다. ‘무터(엄마)’라는 별명으로 불린다는데 정작 메르켈은 아이 엄마가 아니다. 독일에서는 중도우파로 불리지만 난민정책 등에서 보여주는 포용성은 좌파에 가깝다. 일전에 독일에서 온 국제기구 대표를 만난 적 있다. 그는 “메르켈의 장점은 일을 잘 한다는 것”이라고 한 마디로 정리했다. 그가 말한 메르켈의 강점은 엔지니어에 가까운 합리성이었다.
안정성과 일관성도 거론된다. 2년 전 브라질 월드컵 결승전에서 독일이 브라질 팀을 7대 1로 꺾고 우승을 거머쥐었을 때, 관중석에서 환호하는 메르켈이 화면에 잡혔다. 매우 드물게 두 손을 들어올리긴 했지만 그런 자리에서조차 다른 지도자들에 비하면 감정표현을 자제하는 모습이었다. 메르켈은 난민 소녀 앞에서도 원리원칙을 강조해 소녀를 울림으로써 냉혹하다는 비판을 받은 적 있다. 그런가 하면 얼마 전 또 다른 행사에서는 “총리와 악수하고 싶다”는 팔레스타인 어린이의 손을 잡아주며 기쁨의 눈물을 흘리게 했다. 스포츠와 국가주의를 결부시키는 것에 반대하면서도 독일이 자랑하는 바그너의 음악축제에 드레스 차림으로 음악을 들으러 간다. 굳이 어머니에 비유하자면 그는 호들갑스럽지 않으며 극도로 이성적인 어머니다. ‘여성이어서’ 혹은 ‘여성임에도’라는 식의 표현으로 그를 재단하는 것은 쉽지 않고, 올바른 일도 아니다.
영국 총리실 플리커(www.flickr.com/number10gov)
우리도 표정 없는 여성 지도자를 몇년 째 봐왔다. 박근혜 대통령은 오래전부터 우상화돼온 자기 어머니를 벤치마킹하려 했다지만, 그에게서 자애로운 어머니의 면모를 상상하기는 힘들다. 그렇다고 그가 여성적이지 못하다며 탓할 것은 없다. 아웅산 수지, 베나지르 부토, 메가와티처럼 그는 아시아 가문정치의 유산이었지 여성으로서 싸워온 사람이 아니었다. 차라리 아시아의 여성 지도자들에게, 여성성보다는 메르켈 같은 이성과 효율성을 요구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비단 여성 지도자들만이 아니라 모든 정치인들에게 요구되는 미덕이다.
여성 투사도 아니고, 여성성을 감추지도 않으면서 각인되는 지도자는 없을까. 올해 세계에서 ‘뜬’ 인물 중 하나가 영국의 테레사 메이 총리다. 아직 취임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브렉시트라는 힘겨운 과제가 놓여 있기에 그를 평가하기는 이르다. 눈길을 끄는 것은 그의 패션이다. 여성 정치인과 패션을 연결짓는 것은 흔한 고정관념에 인상비평으로 끝나기 마련이어서 여성 지도자의 옷차림을 얘기하는 것 자체가 꺼려질 때가 종종 있다. 그런데 메이는 좀 다르다. 그는 여성성을 강조한다기보다, 여성성을 가리라고 요구하는 사회적 압력을 거부하는 인상을 준다. 내가 왜 여성임을, 패셔니스타임을 감춰야 하는가. 구두 마니아로 유명한 메이의 화려한 스타일은 강력한 자기표현이다. 자신을 숨기지 않고, 정치적 견해도 얼렁뚱땅 감추지 않는다. 브렉시트에 반대하지만 이제 브렉시트를 책임져야 하는 입장이 됐으니 책임지겠다고 한다. 그 당당함과 자의식 넘치는 패션이 묘하게 맞물린다.
민주주의민족동맹(NLD) 페이스북(www.facebook.com/NLDParty)
아시아의 대표적인 여성 정치인 아웅산 수지는 대리인을 대통령으로 내세우고 상왕 정치를 하고 있다. 소수민족을 나몰라라 내치는 그는 더이상 ‘독재정권에 갇힌 가련한 꽃’이 아니다. 2017년 프랑스 대선에서는 마린 르펜이 결선에 진출할 것이 확실해 보인다. 자기 아버지가 만든 극우정당 민족전선(FN)의 대표가 된 뒤, 너무 막 나가는 아버지마저 내쫓은 딸. 프랑스에서는 세골렌 루아얄이라는 걸출한, 지적이고 화려했던 사회당 여성 대권후보가 역사를 다시 쓰는 데에 실패한 적이 있다. 르펜에게서 여성적 리더십을 기대할 수 있을까? 내년 독일 총선에서 메르켈도 4연임에 도전한다. 이들이 써나갈 역사는 세계의 절반인 여성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까.
대통령에 대한 실망감과 환멸이 여성에 대한 혐오와 비하로 이어지기에 이른 한국 사회에서, 여성 정치인에게 기대할 덕목은 어떤 것일까. 아마도 정해진 답은 없을 것이다. 보편적 인권, 평등, 평화, 환경의 가치는 남성과 여성 모두를 위해 소중하다. 이것들을 거부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추구해가는 것이, 여성 대통령을 배출했음에도 유리천정이 여전한 한국에서 여성 정치인들이 해야 할 일이 아닐까.
'딸기가 보는 세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무슬림 입국금지? 트럼프가 며칠 새 저지른 짓들 (1) | 2017.01.30 |
---|---|
오바마가 못한 핵무기 감축, 트럼프가 한다? (0) | 2017.01.16 |
[정리뉴스]‘100만 촛불’...세계의 100만명 집회들 (0) | 2016.11.13 |
[구정은의 세계]세계가 눈 감았던 ‘트럼프 현상’ (1) | 2016.11.09 |
안토니우 구테흐스, 차기 유엔 사무총장으로 공식 선출 (0) | 2016.10.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