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가 보는 세상/칼럼

[아침을 열며] 홈리스들에게 집을 준 핀란드  

딸기21 2016. 9. 18. 16:28

베네수엘라 카라카스 도심에 있는 콘피난사스 금융센터는 주요 투자자 다비드 브릴렘버그의 이름을 딴 ‘토레 데 다비드(다비드의 탑)’라는 별명으로 더 유명하다. 1990년대 초반 건설이 시작됐을 당시만 해도 계획은 화려했다. 1층부터 16층까지는 호텔, 18층에서 45층까지는 금융회사들이 입주할 계획이었고 옥상에는 헬리콥터 이착륙장까지 만들기로 돼 있었다. 하지만 1993년 브릴렘버그가 죽고 1994년 금융위기가 닥쳤다. 건물은 골조 공사만 마무리한 채 돈이 모자라 건설이 중단됐고, 정부 소유로 넘어갔다. 한때 석유로 쌓은 부의 상징이 될 뻔했던 마천루는 실패한 자본주의의 증거로 남았다.

 

2007년쯤 도시 빈민들이 방치된 건물에 들어가 살기 시작했고, 이 빌딩은 세상에서 가장 높은 빈민촌이 됐다. ‘버티컬(수직형) 슬럼’이라는 별명도 생겼다. 한때 이곳의 무허가 입주자들은 5000여명에 이르렀다. 주민들은 수도와 전기를 끌어왔고 하수시설과 쓰레기장을 만들었다. 지하에는 교회가, 주차장 옆에는 농구코트가 생겼다. 발코니에는 공사부품으로 만든 운동기구가 등장했고 계단은 주민들이 수다를 떠는 공간이 됐다. 미용실, 세탁소, 가게와 병원도 들어왔다. ‘어번 싱크탱크’라는 건축가 그룹은 이 공간을 하나의 작품으로 만들어 2012년 베네치아 건축비엔날레에 출품해 황금사자상을 수상했다.


베네수엘라 카라카스의 콘피난사스 금융센터. 짓다 만 건물에 무허가 거주자들이 들어가 살면서 ‘세계에서 가장 높은 슬럼’이 됐다. 지금은 당국이 주민들을 도시 외곽으로 이주시켰다. venezuelainfos.wordpress.com


허가 없이 빈집을 점유하는 사람들을 ‘스쿼터’라 부른다. 지난해 겨울 영국 축구스타 개리 네빌과 라이언 긱스가 짓고 있던 맨체스터의 호텔에 스쿼터 30여명이 들어갔다. 대부분의 건물주들은 곧바로 법원의 퇴거명령을 받아내 쫓아내지만 네빌과 긱스는 홈리스 단체와 협상을 해서 노숙인들이 겨울을 날 수 있게 해줬다. 빈집이 넘쳐나는데 치솟는 집값 때문에 거리에 나앉거나 <해리 포터>에 나오는 계단 밑 벽장 같은 방들에 사는 이들이 많아 사회적 이슈가 되던 때였다. 부의 격차가 극에 달한 세계에서 스쿼터는 쉽게 찾아볼 수 있지만 재산권이 생존권보다 우선시되고 용산참사 희생자들을 테러범 운운하는 나라에서는 생각하지 못할 일이다.

 

가난하면 뭐가 불편할까. 우문이지만 그래도 던져봐야 한다. 아주 구체적인 상상이 필요한 질문이기도 하다. 집이 없다면? 학비가 없다면? 밥값이 없다면? 학교에 가야 하는데 생리대가 없다면? 꼭 필요한 무언가가 없을 때에 그 사람의 삶의 연쇄고리들은 어떻게 뒤틀릴까. 미국의 ‘워킹푸어’를 조사한 저널리스트들에 따르면 빈곤의 악순환은 작은 결핍에서 시작되곤 한다. 집에 먼지가 많아 아이가 천식에 걸린다. 미혼모인 엄마한테는 승용차가 없다. 병원에 아이를 데려가려고 한나절 일을 빼먹었다가 파트타임 일자리에서 잘린다. 여러 작은 고리들 중 한 고리라도 끊을 수 있다면 다행인데, 그러지 못하면 나락으로 떨어진다. 안전망 없는 사회에서는 한 가지의 결핍이 악마의 밧줄처럼 진창에 사람을 붙들어 매어놓는다.

 

구조적 모순에 대한 반성도 필요하지만 사람들 하나하나의 삶은 구조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 이들 하나하나가 모인 것이 구조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고장난 삶이 제대로 돌아가도록 하려면 마중물을 붓는 것이 우선이다. 무언가가 없어서 악순환에 빠진 사람에게는 결핍된 바로 그것을 채워줘야 한다. 그것이 복지다. 북유럽의 핀란드는 지난해 말 기준으로 홈리스 수가 7000명이었다. 지난 몇년 새 1200명 넘게 줄었다. 핀란드는 근래 유럽에서 유일하게 노숙인이 줄어든 나라다. 

 

이 나라에서는 홈리스에게 집을 주는 계획이 몇년 동안 시행됐다. 2008년부터 2014년까지 6년에 걸쳐 이뤄진 이 정책에 참여한 시민활동가가 지난 14일 영국 가디언에 기고를 했다. ‘하우징 퍼스트’로 불리는 이 정책의 발상은 단순했다. 집이 없는 사람들에게 집을 주자는 것이었다. 정부와 지자체와 민간기구가 돈을 모아 집을 사들이고, 빌리고, 새로 지었다. 단순히 지붕과 벽이 있다고 ‘집’이 되지는 않는다. 기숙사 형식의 기존 수용시설들은 안정되게 살 수 있는 아파트 형태로 바꿨다. 구세군이 운영하던 침상 250개의 수용시설은 80가구가 들어가 살 수 있는 아파트로 2~3년에 걸쳐 리노베이션을 했다. 

 

홈리스들에게 약물·알코올중독을 치료하라, 일자리를 구하라고 요구하지 않았다. 집이 생기면 보건이나 범죄 같은 사회적 문제들을 풀기가 훨씬 쉬워질 것이라 봤다. 고민의 앞뒤를 바꿔서 필요한 것을 내준 것이다. 홈리스들을 그대로 두는 것보다는 비용 대비 효과가 컸다고 한다. 

 

토레 데 다비드의 실험은 ‘점령’ 8년 만에 끝났다. 베네수엘라 정부는 이 건물을 문화센터로 바꾸기로 결정했고 2014년부터 지난해 말까지 주민들은 대부분 도시 외곽의 주택단지로 ‘재배치’됐다. 공동체는 해체됐으나 그 과정에서 여러 창의적인 도시의 실험들이 이뤄졌다. 퇴거당한 주민들이 외곽 아파트로 이주해가보니 이미 또 다른 스쿼터들이 들어가 있더라는 것은 기막힌 역설이다. 핀란드의 실험은 어떻게 될까. 그들을 사회 속으로 되돌려 보내는 장기적이고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올까. 단언하기는 힘들지만, 빚내서 집사라 하는 경제모델과 달라도 참 많이 다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