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가 보는 세상/칼럼

[구정은의 세계] 이재용이 달나라에 가는 날

딸기21 2017. 2. 21. 21:42
728x90

미얀마 난민을 돕는 일을 하는 방글라데시 여성을 며칠 전 만나 현지 소식을 들었다. 시리아 난민은 세계의 눈길이라도 끌지만, 방글라데시 국경지대에 방치된 소수민족 로힝자 난민 상황은 정말 심각하다면서 세상의 무관심과 서방의 위선을 개탄했다. 긴급 구호식량을 배급받기 위해 아이 손에 화상을 입히는 엄마들 사연은 충격이었다. 


그것과 별개로, 빌 게이츠의 재단이 그곳 난민들을 지원하고 있다는 얘기가 귀에 들어왔다. 이 재단을 놓고 ‘너무 덩치가 크다, 세계 구호원조를 좌지우지한다’ 비난하는 이들이 적잖은 것을 알고 있다. 마크 저커버그가 재산을 기부한다 했을 때에도 ‘착한 자본주의를 주장하는 자들의 위선’이라 하는 시각이 있었다. 얼마 전 옥스팜은 세계 10위 갑부들이 세계 하위층 절반이 가진 재산과 같은 양을 갖고 있다는 보고서를 내놨다. 그 부자들 중의 상당수는 자선가들이다. 돈을 ‘정승처럼 쓴다’ 할 수도 있고 ‘그렇다고 세상이 바뀌지는 않는다’고 냉소적으로 반응할 수도 있다. 어쨌든 세계의 부자들이 돈 쓰는 법은 속물적인 관심을 끌면서 동시에 가끔은 찬탄을 자아낸다.


_일론 머스크 트위터


일론 머스크와 리처드 브랜슨은 재미난 부자들이다. 머스크가 “사람을 화성에 보내겠다”고 말한 지는 오래됐지만 정말로 화성 탐사를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걸 모두가 알게 된 것은 막대한 돈을 우주선 개발에 쏟아부으면서부터였다. 머스크의 화성 꿈은 대단하다. 그의 인스타그램과 트위터 계정에는 늘 화성이나 로켓 발사 사진이 올라온다. 브랜슨은 머스크보다도 앞서 우주를 향한 꿈을 갖고 민간우주여행 개척에 나선 사람이다. 얼마 전에는 오바마와 카이트서핑을 하는 사진을 올려 화제가 됐다. 기업가인 동시에 자선사업가이고, 국제 무대에서 디엘더스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선량한 원로들’ 중의 한 명이다.


데니스 티토는 돈을 많이 모아 우주여행에 썼다. 2001년 4월 러시아 소유스 우주선을 타고 당시 갓 출범한 국제우주정거장(ISS)을 방문했는데, 일주일 남짓한 여행에 쓴 돈이 2000만달러로 알려졌다. 열심히 돈을 벌어 어릴 적부터의 꿈을 이룬 사람이라고 세계 언론들이 보도했지만 그런 식으로 돈 쓰는 부자를 본 적 없던 내게는 어색하고 그저 신기했다. 뭘 그런 일에 큰돈을 퍼붓나 싶기도 했다. 꿈을 위해 돈을 벌고, 그 꿈에 돈을 쓰고, 그것으로 사람들에게 다시 꿈을 심어준다는 것에 익숙하지 않았기 때문이었을 게다. 머스크 같은 사람들을 보며 지금도 마음 한구석에는 ‘꿈 한번 크네’ ‘그 꿈 위해 돈 많이 쓰네’ 하는 생각이 남아 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알왈리드 왕자는 ‘사우디 왕자’여서 돈이 많은 게 아니라 사업 감각으로 성공한 사람이다. 그의 아버지는 정치개혁을 외치다 왕실과 척을 지고 한때 망명까지 했던 ‘붉은 왕자’ 빈 탈랄이다. 아들 알왈리드는 집안 도움 없이 본인 수완으로 재산을 모았고, 빚이 없는 만큼 왕실을 향해 쓴소리도 많이 한다. 여성들이 자동차 운전조차 할 수 없는 사우디에서, 차별을 깨뜨리려는 상징적인 조치로 여성 항공기 조종사 양성 프로그램에 돈을 대고 있다. 2014년 그의 돈을 받아 훈련한 하나디 자카리아라는 여성이 파일럿 자격증을 따냈다.


한국의 부자는 말을 사는 데에 돈을 대다가 구치소로 갔다. “머스크가 전기차에 투자할 때 삼성은 말에 투자했다”는 우스개가 나왔을 정도이니 더 볼 것 없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20일 “이재용의 체포는 한국에 기회”라는 사설까지 썼다. 그를 솜방망이 처벌하는 대신 제대로 대가를 치르게 하면 삼성이나 현대가 ‘영감을 주는’ 기업으로 다시 태어날 기회를 가질 것이라고 했다. 한국 최고 부잣집 아들 이재용은 어떤 꿈을 꾸었을까? 세금도 피해가며 물려받은 재산을 더 불린 뒤에 그걸로 무엇을 하고 싶었을까? 게이츠처럼 남을 돕는 것은 고사하고, 차라리 달나라에 가고 싶어 돈을 썼다고 했으면 이렇게 허무하진 않았겠다. 


따지고 보면 그에게 꿈을 기대하는 것조차 헛다리 짚는 일이다. 꿈을 이루기 위해 돈을 번 사람이 아니니까.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그 아버지는 또 자신의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돈으로 세계적인 갑부가 된 사람에게 왜 화성 탐사를 꿈꾸지 않느냐고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 구글의 세르게이 브린은 잘 알려진 대로 부모가 러시아에서 미국으로 이주해온 이들이었다. 아버지는 수학교수였고 어머니는 미 항공우주국(NASA) 고다드 우주발사센터 연구원이었다. 아버지로부터 소련이 무너져가면서 천문학자의 꿈을 포기해야 했던 사연을 귀에 못박히도록 들었다고 한다. 


브린은 구글의 미래산업들에 관여하는 동시에 머스크의 테슬라에도 투자하고, 공장식 축산 대신 실험실에서 만드는 합성 쇠고기의 가능성을 주시하고, 연 에너지 개발에 돈을 쓴다. 하늘을 나는 연, 바로 그 연 말이다. 몽상에 헛돈 쓰는 게 될지 몰라도, 그런 게 ‘꿈’이다. 한국의 부자들에게서도 ‘영감’ 한번 받아보고 싶다.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