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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서니 기든스. 유럽의 미래를 말하다

딸기21 2016. 9. 11. 15:22

유럽의 미래를 말하다

앤서니 기든스. 이종인 옮김. 책과함께 


밑줄은 많이 그었지만 기든스의 책은 '두고 두고 볼' 혹은 '간직하고픈' 책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집에 <제3의 길>이 있더라;;) 
이 책은 유럽연합에 대한 것, 정확히 말하면 '유럽 통합론자' 기든스가 유럽을 걱정해서 유럽/유럽연합을 향해 내놓는 제언이다. 읽을만 한데, 시기적으로 좀 지나가서... 2014년 유럽의회 선거 전에 쓰인 것이라. 이미 선거는 지나갔고(극우파가 이겼고) 브렉시트 국민투표에서 영국인들은 탈퇴를 택했으며... 
번역은 좀 아쉽다. 군데군데 거슬리는 것, 적절치 않은 표현들이 보여서.




유럽의 이중구조와 '종이 유럽'

유럽공동체를 설계한 사람 중 한 명인 장 모네는 유럽 통합이라는 건물은 벽돌을 한 장 한 장 쌓아올려 구축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런 조치를 주도한 대화와 의논은 소수의 사람들 사이에서만 벌어졌고, 여러 국가들의 의회나 시민들은 배제되었다. 이렇게 하여 유럽연합은 상당 부분 ‘눈에 보이지 않는 상태로’ 창설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주요 회원국을 대표하는 소수의 인사들이 사태를 장악하여 결정을 내리고 또 그것을 밀어붙였다. 예를 들어 독일의 재통일이나 유로화의 도입은 바로 이런 방식으로 결실을 맺었다. 그렇게 하여 유럽연합 내의 리더십 부재가 일시적으로 해결되었다. 프랑스와 독일이 핵심 회원국이었고, 때에 따라 다른 소수의 회원국들과 때때로 국제기관들의 수뇌가 의사결정에 참여했다. 

유럽연합의 행정은 2개의 조직을 통하여 이루어지는데 적당한 용어가 없어서 두 조직을 EUl과 EU2로 부르겠다.
EUl은 모네 방식의 유럽으로서 이사회, 집행위원회, 나중에 유럽의회가 가세하여 운전석을 담당했다. EU2는 막강한 실권이 있는 곳으로, 선별적이고 비공식적인 방식으로 그 권력을 행사한다. 지금 이 순간 ‘사실상’ 유럽연합의 운영자인 EU2는 독일 총리 앙겔라 메르켈, 프랑스 대통령 프랑수아 올랑드, 그 외 한두 명의 회원국 지도자, 그리고 유럽중앙은행(ECB)과 국제통화기금 총재 등으로 구성된다. 메르켈 총리가 사실상 오늘날 유럽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이기 때문에 무엇을 합의했던 간에 메르켈총리의 비준을 받아야 한다. EUl과 EU2의 개념, 그리고 내가 앞으로 ‘종이 유럽(paper Europe)‘ 이라고 부를 개념은 이 책에서 아주 중요하다. 유럽연합의 진화는 이 세 가지 개념의 관점에서 해석할 수 있고, 또 현재의 갈등도 이 관점에서 해석할 수 있다고 나는 주장한다. 민주적 리더십이 없기 때문에 유럽연합은 이 세 개념이 교차하는 공간을 차지한다. 

(15쪽)


종이 유럽은 다수의 미래 계획, 로드맵, 기타 계획 동으로 구성되는데, 집행위원회와 다른 유럽연합 기관들이 작성한 것이다. 많은 계획들이 종이 위의 글자로만 남았다. 그것들을 실행할 수 있는 효과적 수단이 없기 때문에 살을 붙이거나 현실화할 수 없는 종이 위의 계획에 지나지 않은 것이다. 종이 유럽은 관료제와 겹치는 부분이 있기는 하지만 관료제는 아니다. 요점은 그 절차적 성격이 아니라, 야심찬 계획과 제안들이 작성되었으나 그 후 공수표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16쪽) 


겉으로만 볼 때, 독일은 군사적 정복으로는 얻을 수 없었던 것(유럽 지배)을 평화적 수단으로 성취한 듯하다. 그러나 항구적 조건의 관점에서 볼 때, ‘독일이 지배하는 유럽’은 성공할 가망이 없는 카드다. 유럽을 분열시킨 적개심의 원천에는 바로 이 독일이 지배하는 유럽이라는 생각이 놓여 있다. 본질적으로 유럽은 새로운 미래를 선택해야 하고, 이번에는 시민들이 직접 참여해야 한다. 

(18쪽)

 

좀 더 구체적인 관점에서 말해보자면, 그 단일 화폐(유로화)를 방어한다는 것은, 금융 통합 기구를 설치하고 유로존 국가들의 금융주권 중 일부를 경제적 지배 기구에 이양하는 것을 뜻한다. 그리고 이런 이양은 ‘상호성’을 받아들인다는 것을 의미한다. 부자 나라와 가난한 나라들이 경제적 책임을 공유하는 것이다. 이런 규모의 경제적 상호의존을 추구하려면 추가적으로 정치적 통합 조치도 있어야 한다. 좀 더 노골적으로 말해서, 최소한의 형식을 갖춘 것일지라도 어느 정도의 연방주의는 실천 항목일 뿐만 아니라 시급한 항목이기도하다. 그것도 가까운 장래에 실천해야한다. 

(19쪽)


2013년 6월, EU 경제·재무장관 각료이사회 회의는 ‘유럽 안정 체제’에 합의를 했다. 따라서 이 체제를 통원하여 은행의 자본 재편성을 지휘하고 또 허덕이는 은행들에게 ‘흡수’ 규칙을 적용할 수 있게 되었다. 키프로스 위기 이래, 퇴출보다는 흡수를 해야 한다는 의견이 널리 받아들여졌다. 그러니까 은행과 투자자들에게 책임을 떠넘겨 그 손실을 흡수하게 하는 것이다. 발의 당시에는 괴상하고 위험한 전략으로 보였으나, 이제는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지금까지 나온 조치들은 ‘식스 팩(six pack)’, ‘투 팩(two pack)’, ‘안정, 조정, 행정에 관한 협약’ 등인데 모두 유럽연합의 정책 입안 캘린더인 ‘유러피언 시메스터’에 바탕을 둔 것이다. 이 협약을 줄여서 ‘재정 협약’이라고 한다. 

이것은 의도는 좋지만, 결정적으로 상호주의가 빠져 있다. 즉 유로존 국가들이 서로 재정적 의무를 공유한다는 구체적 인식이 결핍되어 있다. 유럽의 재정 상황을 안정시킨 가장 중요한 힘은 이런 조치들이 아니라, EU2의 재빠른 움직임이었다. 

(42쪽) 



영국

영국은 유럽연합에서 철수하면 안전보장이사회의 이사국 자리와 관련하여 엄청난 압력을 받을 것이고 동맹국들은 그 지위를 계속 누리도록 지지하지 않으려 할 것이다. 만약 좀 더 통합된 유럽연합이 탄생한다면 프랑스의 지위는 유럽연합 전체를 대표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사태 변화는 안전보장이사회에 인도와 브라질을 끌어들이는 길을 열어줄 것이고, 이는 절실히 요구되어온 변화이기도 하다. 

미국은 중요한 문제들에 대해서는 유럽연합과 직접 협상에 나설 것이다. 영국이 유럽연합을 떠난다면 현 수준의 영향력을 유지할 수 없다. 하지만 경제의 균형이라는 관점에서 보자면 그리 나쁘지 않을지도 모른다. 영국은 지금보다 더 크게 군비를 절감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캐나다의 경우처럼 직접적인 적국이 별로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77쪽) 



복지국가 모델에서 '사회적 투자국가'로

조세 회피가 개발도상국에 미치는 해악은 선진국의 경우보다 더 막심하다. 조세 피난처에서,‘합법적’ 거래는 마약거래, 내부자거래, 돈세탁, 기타 불법 행위 등과 뒤섞인다. 

성장으로의 회귀라는 관점에서 볼 때, 왜 조세도피처 철폐가 그토록 중요한가? 

첫째, 그 돈이 정부나 납세자의 손에 들어가 좀 더 생산적인목적에 활용되어야하기 때문이다. 둘째, 현재 사회의 조직을 위협하는 엄청난 불평등을 줄이는 데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셋째, 가장 높은 수준의 정치와 사업에 나쁜 영향을 주는 현지의 부정부패 형태를 폭로하여 앞으로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방지하기 때문이다. 넷째, 돈을 그처럼 불법적으로 은닉해두는 것은 일부 국가들이 경제적으로 허덕이게 되는 직접적인 원인이기 때문이다. 

(117쪽)


영국의 경제학자 윌리엄 베버리지 등 종전 이후 복지국가의 창설자들은 복지제도와 부의 창조사이의 연결 관계에 대해서는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오늘날 이 연결 관계는 핵심 사항으로 간주된다. 복지국가는 사회적 투자 국가로 변모해야 한다. 

오늘날의 복지제도는 권리뿐만 아니라 의무도 강조한다. 인센티브가 되었든 징벌조치가 되었든 그런 의무를 어느 정도까지는 제재를 통해 강요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예를 들어 실업수당은 예전에는 권리라고 정의되었으나, 그 결과는 상당히 비생산적이었다. ‘복지 의존증’은 아주 심각한 현상이다. 복지 수혜자가 일정 기간 후에 일자리를 찾아 나서거나 직업훈련을 받는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은 실업률을 낮추는 데 효과를 냈다. 

적극적인 생활 기회를 감안한다면, 위험은 훨씬 더 복잡하고 미묘한 개념이다. 우리는 기회와 위험 사이의 복잡한 관계를 살펴보아야 한다. 위험을 피하거나 줄이기보다는 위험을 적극 감수할 때 더 큰 안전을 얻을 수 있다. 이 말은 기업가는 물론이고 노동력의 상당 부분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유연 안전성’이라는 말은 이런 상호작용을 반영하는 개념이다. 오늘날의 상황에서 복지제도의 수혜자는 세금 이외에 직접적인 기여를 할 필요가 있다. 

(133쪽)


복지국가의 개혁, 혹은 사회적 투자국가로의 변모는 국가부분을 더 주목해야 한다. 사용자의 기여와 의사결정의 탈중심화가 의제 필수 항목으로 자리 잡아야한다. 이런 과정들은 민영화와 뚜렷하게 구분되어야 한다. 인간적, 사회적 자본의 육성이 복지제도의 핵심이 되어야 한다. 인간적, 사회적 자본은 능동적인 시민 생활뿐만 아니라 노동시장의 성공에도 필수적인 것이다. 따라서 사회적 투자 국가는 고전적 복지국가보다 훨씬 더 많이 개입해야 한다. 

(136쪽) 


민주제로 전환한 이래 전 국민의 보건은 스페인의 가장 중대한 문제였다. 2000년 스페인의 보건제도는 세계보건기구에 의해 세계 7위에 올랐다. 1차 진료소들이 많이 설립되었고 심지어 아주 작은 마을에도 진료소가 있다. 그러나 2000년 이래 긴축 정책의 일환으로 보건 예산이 크게 삭감되었다. 이것은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 사이에 빈번한 갈등을 일으켰다. 

스페인의 세입자는 권리가 별로 없다. 만약 세입자가 월세를 한 달 이상 밀리면 은행은 대출금을 강제 회수할 권리가 있다. 시민들은 주택 강제퇴거에 대하여 자체 조직을 만들어 당국의 정책에 대항하고 있다. 예를 들어 ‘코랄라스(corralas)’라는 조직을 만들어서 비어 있는 아파트를 접수하는 것이다. 

인디그나도스 운동의 일부 세력은 아직도 남아 있고 위에서 말한 코랄라스 같은 시민들의 주도적 활동을 지원하고 있다. 그들은 지역에서만 통용되는 화폐, 물물교환제도, 협동조합의 연락망 등을 구축하는 데 착수했다. 

(139쪽) 


근본적인 질문은 이런 것이다. 깊은 위기의 상황에서, 유럽의 사회적 모델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변화를 도입할 수 있는가. 이 사회적 모델은 구제될 수 있는가. 

많은 유럽연합 국가들에서 사회적 모델은 현실이라기보다 꿈이었다. 그 꿈은 오늘날에도 유럽인의 삶에서 지도원칙이 되어야한다. 그것은 언제나 진화하는 이상, 전략, 실천의 한 세트였다. 

일단 확립되면 복지제도는 타성으로 흐르는 강력한 경향이 있다. 복지 의존 현상은 실제적인 것이고, 우파 정치 평론가들의 상상의 소치가 아니다. 무상 보건제도도 의도하지 않은 부정적 효과를 가져 올 수 있다. 이런 문제들은 위기 시에는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하고 결단력 있게 공격해야 한다. 

여기서 긴축 대 투자의 문제가 전면적으로 부상한다. 비용 삭감은 경제적으로 어려운 나라들에서 반드시 이루어져야 하며, 모든 나라에서 어느 정도 수행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런 노력은 복지개혁과 성장 회귀를 서로 연결시키는, 장단기 투자의 바탕이 되어야한다. 가장 큰 피해를 입은 나라들에는 특별지원이 있어야 한다. 

(147쪽)


비용 효과는 이제 매우 중요해졌다. 많은 나라들이 겪고 있는 어려움은 가장 낮은 곳에 있는 과일을 따려는 경향이다. 이를테면 대중의 저항이 가장 약한 부문에서 삭감을 하려고 하는 것이다. 하지만 삭감의 결과가 선행(先行) 저축에 피해를 주는 것이라면 진정한 삭감이 아니다. 비용 삭감은 해당 분야의 더 큰 비전과 통합된 것이라야 한다. 절약을 하면서도 서비스의 품질이 개선되는 곳, 그곳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다. 

(149쪽) 


진정한 청년실업률을 계산하기 위해서는 실업률 이외에 경제학자들이 말하는 실업인구 비율을 사용하는 것이 가장 좋다. 특정 국가 혹은 지역의 전체 청년 인구 중에서 실업자의 비율을 측정하는 것이다. 그 결과는 통상적으로 인용되는 실업률과는 아주 다르다. 2012년 유럽연합에서 청년실업률은 22.8퍼센트였다. 그러나 실업인구 비율은 겨우 9.7퍼센트였다. 같은 해 그리스의 청년실업률은 55.3퍼센트로 굉장히 충격적이었다. 그러나 실업인구 비율은 16.1퍼센트였다. 스페인의 경우에는 각각 53.2퍼센트와 20.6퍼센트였다. 

비교를 위한 가장 효과적인 수치는 고용, 교육, 훈련과 무관한 청년들(NEETs)의 비율이다. 이 수치는 2012년 미국이 14.8퍼센트로 13.2퍼센트인 유럽을 앞질렀다. 미국이든 유럽이든 이 수치는 계속 올라가고 있다. 현재 유럽의 상황에서 정책을 NEETs에 맞추는 것이 합리적이며, 특히 남부의 허덕이는 국가들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164쪽) 



다문화주의에서 상호문화주의로

나는 세계주의의 필요를 이렇게 정의한다. 세상은 다양한 믿음과 생활방식의 교차가 날마다 벌어지는 글로벌 세계이므로 우리는 그 세상에서 살아가는 방식을 하루빨리 배워야 한다. 

(170쪽) 


현대 세계에서 이민은 더 이상 지방적 혹은 지역적 문제가 아니며, 세계화의 결과이자 세계화를 촉진하는 매개다. 20세기 초반 유럽에서 미국으로 건너간 대규모 이민에 적용되던 수용과 동화의 모델은 더는 통하지 않는다. 

세계화는 거의 모든 사람들의 뿌리를 뽑아놓는 효과를 가져왔는데, 이것은 긍정과 부정의 양면을 가진 현상이다. 어디에서나 향수(즉 이상화된 과거에 대한 향수)에 의해 촉발된, ‘백 투 더 퓨처(back to the future: 과거를 미래로 가져가기)’ 심리가 만연한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종교적 근본주의는 이상적 과거와 관련된 백 투 더 퓨처 현상이다. 현재 소생하고 있는 다양한 형태의 민족주의도 마찬가지 현상이다. 따라서 온갖 종류의 애매모호함과 모순을 제거할 필요가 있다. 

(178쪽) 


전통은 언제나 발명되고 또 재발명된다. 아주 오래된 것으로 여겨지는 많은 관습과 실천이 역사적 관점에서 보면 최근의 것이다 오늘날 전통은 단기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전보다 더 융통성 있고 변경 가능하다. 서로 다른 가치와 영향들이 끊임없이 상호작용하는 까닭이다. 

그래서 이슬람 공동체에서 베일로 온몸을 가리는 것은 전통으로 되돌아가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것은 재구축된 전통이다. 그 관습을 실천하는 많은 여성들이 실제로는 그들의 가정에서 첫 번째로 그렇게 하는 세대다. 오늘날 이슬람의 ‘보수주의’는 새롭게 발견된 것으로서, 현대적인 것을 수용할 뿐만 아니라 때때로 그것을 강조한다.

유럽에서는 이슬람을 둘러싸고 치열한 논쟁과 대립이 벌어지고 있는데 많은 사람들이 이슬람은 ‘서구적’ 가치들과 양립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슬람은 기독교 못지않게 ‘서구적’이다. 두 종교는 이 세상의 동일한 지역에서 생겼고 그 역사는 서로 얽혀 있다. 서유럽 국가의 이민 2세 혹은 3세이면서, 세속적 배경 때문에 이슬람으로 개종하여 지하드(성전)에 관심을 갖게 된 지하드주의자는, 지금 세계 도처에서 진행되는 과정의 가장 두드러진 측면이다. 

(180쪽) 


이민에 대한 네덜란드와 프랑스의 정책은 아주 반대되는 것처럼 보인다. 말하자면 2개의 대조적인 실험이다. 네덜란드는 ‘소수자정책’을 실시한다. ‘독립적이고 평행한 노선’에 바탕을 둔 제도다. 이 정책은 이민자들이 그들만의 라디오, 텔레비전, 신문이 있는 그들만의 지역에 모여 사는 것을 권장한다. “비소속을 적극적으로 권장하는“ 이 정책은 다문화주의와 정반대되고 여러 가지 난감한 부작용을 낳았다.

1990년대 후반에 도입된 새로운 ‘통합 정책’은 다문화주의에 대한 반동으로 널리 인식되었으나, 실제로는 다문화정책과 보조를 맞춘 것이었다. 네덜란드어의 필수 학습과 함께 시민권 강좌들이 개설되었다. 그러나 가난, 무슬림 동네의 소외, 인종차별주의를 시정하는 효과적인 프로그램은 거의 도입되지 않았다. 

프랑스는 소수 인종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으며 ‘모든 사람을 위한 시민권’ 정책을 추구한다. 소수 인종의 본국에 대한 통계 수치를 집계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적극적인 다문화 정책을 추진하지도 않는다. 그 결과 소수 인종-특히 북아프리카 출신의 소수 인종-과 나머지 인구사이의 분리정도는 그 어떤 유럽연합 국가보다도 심각하다. 네덜란드와 프랑스의 두 정책은 이민자 관리 스펙트럼의 정반대쪽에 위치해 있으나, 서로 비슷한 기능을 한다. 

(186쪽) 


프랑스의 ‘히잡 논쟁’은 좋은 사례다. 학교에 히잡을 쓰고 둥교한 세 여학생은 가정이나 동네의 종교적 지도자의 압력 때문에 그렇게 한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부모가 반대하는데도 자발적으로 그렇게 했다. 사건은 흥미롭게 진행되어, 무슬림 공동체의 지도자들이 모로코 왕에게  히잡을 안 쓰는 쪽으로 중재해달라고 요청한 후, 두 여학생은 교실에서 히잡을 쓰지 않는 데 동의했다. 프랑스의 다른 여학생들은 프랑스 국기가 장식되고‘자유, 평등, 박애’의 문구가 새겨진 히잡을 썼다.

우리는 기독교든 유대교든 각 종교마다 일정한 비율의 초(超)정통파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유념해야 한다. 우리는 이런 종교들을 극단적 집단의 사상으로 판단하지 않는다. 이슬람의 경우에도 같은 판단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

(189쪽) 


나는 이 시정에서 ‘다문화주의’라는 용어를 내다버릴 것을 제안한다. 여기에는 세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그 용어는 너무 오랜 세월 동안 오용되어 그 뜻이 훼손되었다. 둘째, 이게 더 중요한데, 다문화주의라는 개념은 세계화가 현재의 수준에 도달하기 전에 나온 것이다. 오늘날 세계화라고 하면 전 지구적 현상을 말하며, 아주 작은 행위(예를 들어 휴대전화의 사용)에도 세계화 특성이 깃들어 있다. 그러면서도 세계화는 동시에 아주 지역적인 것이기도 한데, 그 사이에는 수천 가지의 복잡한 수준이 있는 것이다. 

셋째, 다문화주의라는 용어에 들어 있는 ‘문화’는 30년 전의 것일 뿐 현재의 것이 아니다. 이 용어를 제창한 사람들은 인종적 문화를 포함하여 문화는 분명한 경계를 갖고 있고,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으며, 내부적으로 분열되어 있지 않고 본질적으로 의문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보았다. 이는 과거에는 진실이었을지 몰라도 지금은 아니다. 

상호문화주의(Interculturalism)는 우리 인류가 다양성과 사회적 일체감의 새로운 시대에 들어섰다는 사실을 더 잘 표현하는 용어다. 이 시대는 끈덕질 정도로 지역적(local)이지만 동시에 근본적으로 세계적(global)이다. 상호문화주의는 한 사회 내에서 낯선’ 문화 집단에 자리를 찾아주는 것, 소수 인종과 주빈 공동체와 국가 사이의 상호작용을 촉진하는 것, 불평등을 줄이는 것 등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물론 이런 일도 중요하다). 

상호문화주의는 공적 공간을 적극적으로 재구축하는 협상과 대화의 과정에 더 집중한다. 세련된 형태의 다문화주의는 주로 ‘소수 인종’의 지위를 향상시키는 데 신경 썼을 뿐, 문화적 다수 인종을 포함하여 공통적인 정체성들을 재협상하는 방식에는 무심했다. 

(193쪽) 


유럽으로의 대규모 이민은, 중공업이 사라지거나 해외로 이전하면서 생겨난 오래된 노동자 계급 공동체들의 공동화와 시기적으로 일치한다. 이런 공동체들은 값이 싸고 주택이 남아돌기 때문에 이민자들은 주로 그 지역으로 들어간다. 그리하여 이민자들은 서로 다른 이유에서 생겨난 정체성 실종과 공동체 상실에 대한 책임을 뒤집어쓰는 희생양이 된다. 

인터넷은 맥락의 제약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대화를 촉진하지만, 동시에 증오와 분노 등 다양한 범위의 감정들을 전달하고 증폭시킨다. 이민은 이런 변화들과 교차하는 문제로서, 개인적 혹은 집단적 정체성에 복잡한 결과를 가져온다. 

(197쪽)


민주주의의 핵심 개념, 예를 들어 법치, 개인의 자유, 관용 등은 고대 그리스와 로마에 뿌리를 두기에, ‘유럽적’이라는 생각을 한번 본질적으로 살펴보자. 민주주의를 폭넓게 연구한 존 킨의 걸작은 이런 생각을 철저하게 거부한다. 정치 이론가이자 호주 시드니 대학 정치학과 교수인 그는 책을 쓴 목적이 “민주주의의 역사를 민주화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민주주의는 많은 기원을 가지고 있으며 다양한 형태를 취해왔다. 고대 그리스에서 발견되는 대중 의회는 그보다 2000년 앞선 메소포타미아의 문명에서 그 전례를 찾아볼 수 있다. 킨은 아테네 민주주의를 이상화하는 경향을 비판한다.

그리스 도시국가들이 멸망하면서 민주주의가 수 세기 동안 동면에 들어갔고, 그 후에 유럽에서 재발견되고 미국에서 새롭게 동장했다는 통념을 킨은 강력하게 반발한다. 사실은 그 반대라는 것이다. 이 긴 세월 동안 민주주의는 세계의 다른 지역들, 예를 들어 중동, 극동,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지역 등에서 계속 발전해왔다. 민주주의는 무슬림을 통해 유럽으로 되돌아왔다. 최초의 유럽 의회는 12세기에 스페인 남부에서 등장했고, 당시 널리 세력을 떨치던 민주적 이슬람의 영향을 받아 기독교 군주들이 그런 의회를 세웠다는 것이다. 

그는 유럽을 다루기 전에 19세기와 20세기의 라틴아메리카 민주주의를 분석한다. 이들 나라에 폭력과 부정부패가 난무했지만, 킨은 당시의 브라질, 아르헨티나, 멕시코를 민주주의와 무관한 나라라고 보지 않았다. 그 나라들은 폭력에 물들고 전쟁에 의해 형성된 유럽 대의 민주주의의 선구자였다. 유럽과 그 식민지 지역에서, 대중 민주주의와 그것을 이루는 바탕인 시민권은 온 민족을 ‘뻔뻔스럽게 학살’하면서 생겨났다 

동일한 이야기를 다른 ‘서구적 가치 에 대해서도 말해볼 수 있다. 관용은 좋은 사례다. 관용은순수한 서구적 개념이 아니다. 예를 들어 기원전 3세기에 인도의 아쇼카 황제가 써놓은 글에는 관용의 개념이 잘 정립되어 있다. 오스만투르크 제국은 종교적 관용을 실천했다. 

다른 문화권에서 오는 이민자들을 전근대적이며, 서구가 발전시켜온 가치들을 위협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주 잘못된 일이다. ‘좋은 사회’를 지탱하는 가치들은 여러 원천에서 나왔으며 보편적 기반위에 수립되었다. 그것은 서구가 다른 야만적 지역으로 ‘수출’해야 마땅한 그런 가치가 아니었다.

(199쪽)


최근까지 유럽이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별로 신경을 쓰지 않은 것은 왜인가? 그 이유는 유럽이 엉뚱하게도 자신을 세계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하벨은 말한다. 달리 말하면, 유럽인들은 나머지 세계의 사람들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유럽을 다른 지역과 비교하여 정의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따라서 ‘의식적인 유럽주의(conscious Europeanism)’는 최근까지 전통이 확립되지 않았다. 

2차 세계대전의 종식과 공산 독재체제의 등장 이후, 서구적 가치는 너무나 자명해 보였기 때문에 그것을 옹호할 필요가 없었다. (서)유럽은 과거의 갈등이 되풀이되는 것을 막고 독재체제의 확산을 억제하기 위해 단합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서구적 가치는 너무나 당연한 것으로 여겨졌으므로 언급할 필요가 없었다. 

하벨은 이런 타당한 주장을 한다. ‘유럽의 가치들’을 명상할 때, 유럽이 세상에 남긴 양날의 유산을 깊이 생각해야한다. 인권, 자유, 법치는 유럽적 가치다. 그러나 이런 가치들은 유럽의 방대한 식민지 지역에는 적용되지 않았다. 더욱이 20세기 최악의 참사-두 번의 세계대전, 파시즘, 공산주의 독재체제-는 대체로 유럽의 소행이었다. 유럽의 추가 통합을 생각하면서 하벨은 이런 결론을 내린다. “우리는 모순적 문명이 만들어낸 피해에 대해 적극 싸울 용의가 있음을 보여주어야 한다.” 

(205쪽) 



환경, 핵 발전

위험한 것은 지구의 미래가 아니라 우리의 미래다. 우리는‘자연’을 보호할 수 있다는 개념 너머로 나아가야 한다. 우리는 지질학자들이 말하는 인간세(Anthropocene)로 이미 진입했다. 이제 자연의 모든 영역이 인간의 영향력에게 침범당하는 시대다. 

근본적인대책은 인간과 자연을 떼어놓는 과거의 전통적 보존주의 방식이 아니라, 인류가 자연계를 지배하는 현실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보존론자들은 ‘원시적 자연상태’만 강조할 것이 아니라, 가장 ‘인공적인’ 환경을 포함하여 인류가 존재하는 생활환경 전반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보호뿐만 아니라 재발명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 ‘자연’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듯한 공간에서, 적극적인 정책을 펴서 종의 다양성을 재창조해야 한다. 그 공간은 숲과 들판까지 포함하며, 전반적 도시 환경도 감안해야한다. 이 방정식에서 변수는 인류의 재주와 창의성, 그리고 이 두 가지가 함께 움직이는 속도다. 

(225쪽) 


토륨의 경우, 후쿠시마 원전 사고 같은 재앙이 발생하지 않는다. 노르웨이의 기업인 토르 에너지는 토륨이 오슬로 근처의 재래 원자로에 사용될 수 있을지 살펴보는 4년짜리 실험을 시작했다. 

그러나 조사연구 투자에 관한한 유럽연합은 중국과 인도에 뒤질 처지에 놓여 있다. 중국은 26기의 정통 원자로를 건설하는 계획을 수립 중이고, 추가로 51기를 건설할 계획이다. 동시에 중국은 토륨 등 핵 관련 조사 연구에 엄청난 투자를 하고 있다. 중국은 토륨 매장량이 많고, 인도 역시 그렇다. 인도는 2014년 후반 가동 목표로 토륨 원자로를 개발 중이다. 

(235쪽)


핵 발전을 포기하겠다는 독일의 실험을 유럽뿐만 아니라 전 세계 다른 나라들도 예의 주시하고 있다. 실험 목적은 재생 기능한 에너지 자원을 짧은 시간 안에 대규모로 개발하자는 것이다. ‘에네르기벤데(Energiewende: 에너지 전환)’는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 기존의 핵발전소들은 점진적으로 폐쇄될 것이다. 이 정책은 앞선 실적에 바탕을 둔 것인데, 독일은 이미 풍력 터빈과 태양전지판 등 재생 에너지 분야에서 상당한 존재감을 과시한다. 햇빛이 따뜻하고 바람이 많이 부는 날에, 바람과 태양은 독일 전력 수요의 85퍼센트까지 생산한다. 독일의 전체 전력 공급 중 22퍼센트가 재생 자원에서 만들어진다. 이 수치는 2020년까지 40퍼센트로 올라갈 계획이다. 

풍력발전소와 태양광 발전소룰 도입하고 운영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보조금을 지원해주어야 한다. 두 발전소는 초기에는 높은 자본 투자를 필요로 하지만, 일단 가동이 되면 운영비는 아주 저렴하다. 핵발전소를 폐쇄하겠다는 독일의 계획은 장기간에 걸친 전환기 동안에는 석탄에 크게 의존하겠다는 뜻이다. 

(237쪽) 


발전 그리드를 유럽 수준에서 바꾸자는 제안이 많이 나와 있다. 독일을 주축으로 북유럽 국가들,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폴란드를 연결하는 네트워크도 이 그리드에 포함시킬 수 있다. 다른 아이디어로는 중부 유럽, 그러니까 독일, 네덜란드, 벨기에를 서로 연결하는 ‘로 그리드(low grid)’가 있고 유럽과 북아프리카를 연결하는 ‘하이 그리드(high grid)’도 있다. 구체적 진전이 이루어진 하이 그리드의 한 버전은 데저텍(desertec)인데, 사막과 테크놀로지의 합성어로 북아프리카와 중동에서 나온 태양광 전기를 유럽으로 수송하는 사업이다. 그러나 이 프로젝트는 주요파트너 사이의 의견 분열 때문에 위협을 받고 있다. 

(244쪽) 



군사 분야에서의 무책임 + 러시아

유럽연합 국가들은 나토를 통해 이루어지는 미국의 군수 지원이 없었더라면 
리비아 개입은 생각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다. 프랑스가 말리에 개입한 경우도 마찬가지다. 프랑스의 개입을 지원하기 위해 미국의 공중 급유기가 200차례 이상 비행했다. 미국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프랑스는 말리에 도착하지 못했을 것이고, 공군력을 동원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261쪽)


프랑스 국방 전문가인 카미유 그랑은 이런 냉소적인 논평을 했다. “군사 분야에서 유럽은 무능력자와 의욕 없는 자의 결합 쪽으로 움직이고 있다.”

위선적이게도 유럽연합이 미국의 군사력에 의존하는 현상은 계속되고 있다. 국방 능력에 관한 한, 나토의 존재 때문에 유럽이 조직적인 도덕적 해이에 빠져 있다는 결론을 피하기가 어렵다. 유럽연합은 평소 아무리 느슨하게 행동해도 비상시에는 지원 세력이 달려온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 때문에 유럽연합은 책임의식이 부족하고 내부적으로 다투기가 일쑤다. 하지만 이런 상황이 오려 지속되지는 않을 것이다. 유럽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미국은 막대한 부채 수준을 감축하려고 애쓰고 있다. 

(263쪽) 


러시아 석유와 가스에 대한 유럽연합의 의존도는 점정 더 커지고 있고, 특히 독일은 과거보다 더 많이 러시아로부터 수입하고 있다. 근년에는 노르드스트림 가스프로젝트가 가장 논쟁적인 에너지 혁신 사업이다. 이것은 러시아의 가스 회사인 가스프롬과 독일, 네덜란드, 프랑스기업들사이의 합작 사업인데 가스프롬이 전체 주식의 51퍼센트를 가지고 있다. 

이 파이프라인 공사의 결과, 독일과 러시아의 이해관계가 긴밀해졌고 그리하여 러시아는 유럽연합 정치에 영향력을 갖게 되었다. 동시에 두 나라의 관계는 뚜렷한 양가감정으로 특정 지어졌다.

(266쪽)

 

2012년 푸틴 대통령이 연임하면서 뚜렷한 정책 전환이 있었다. 부분적으로는 푸틴 반대 집단이 벌이는 내부 저항에 대한 반응이기도 했다. 반대 세력을 탄압하고 나서 푸틴의 통치는 전보다 더 권위적인 색깔을 띠기 시작했다. 푸틴은 유럽이 회복 불능의 쇠퇴에 접어들었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유럽연합은 더 이상 러시아의 장래에 도움이 되는 아이디어의 원천이 아니며, 허약한 국가들의 집단에 지나지 않는다. 새로운 포괄적 조약을 구상하기는커녕, 러시아는 1990년대에 수립된 일부 협약들을 해체하고 있다. (267쪽) 


러시아는 1973년 유엔 결의안에 거부권을 행사하지는 않았다. 이 해결안은 2011년 민간인 보호를 위해 나토가 리비아 내에서 활동하는 것을 허용했다. 그러나 러시아 지도부는 그 임무의 범위가 근거 없이 확대되어 카다피 대령의 제거를 포함하자 크게 당황했다. 

이 일로 인해 러시아는 시리아 갈등에 대한 정책을 바꾸었다. 러시아는 시리아의 아사드 정부의 조치를 비난하는 일련의 유엔 결의안을 방해했고, 아사드에게 계속 무기를 제공했다. 미국 및 유럽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러시아는 가능한 구원책으로 동쪽을 바라보고 있다. 오바마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푸틴은 아시아와 태평양 쪽으로 ‘선회’했다. 이렇게 한 한 가지 이유는, 서방과 교류하다 보면 필연적으로 자국의 내부 탄압에 대해 주의가 집중될 것이기 때문이다. 

독일은 군사력의 동원에 대해 양가적 태도를 취한다. 독일은 리비아 개입 때에도 옆으로 비켜서 있었다. 유럽연합은 시리아의 개입에 대해서도 공동 노선을 취하지 못했다.2013년 5월 유럽 외무장관 회의에서, 프랑스와 영국은 시리아 반군에게 무기 공급을 금지하는 유럽연합 엠바고(수출 금지)를 갱신하는 것을 거부했다. 이 때문에 일부 회원국이 반발했다. 두 나라는 나중에 러시아의 술책에 허를 찔렸다. 러시아는 시리아에 새로운 미사일 방어체제를 신속하게 공급했던 것이다. 같은 해 8월에 미국이 시리아를 상대로 미사일 타격을 하자고 제안했을 때, 독일은 이번에도 참여를 거부했다. 영국도 의회 논의를 거쳐 참여를 거부했고, 결국 미국과 프랑스는 일시적으로 고립되었다. 

(26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