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5.27
올림픽을 코앞에 두고 브라질은 혼돈 그 자체다. 국민들의 삶이야 딱히 큰 변화가 있을까마는, 정치권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점입가경이다.
25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은 오는 8월 열릴 예정인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이 비리로 얼룩진 것으로 드러났다고 보도했다. 브라질은 이미 지난해부터 국영 석유회사 페트로브라스를 둘러싼 부패 스캔들로 집권 여당이던 노동자당(PT)이 흔들리고 탄핵 소동이 벌어졌다. 그게 결국 올림픽 준비에 얽힌 비리 의혹으로 번진 것이다. 로이터는 “연방검찰이 페트로브라스 부패사건을 수사하다가, 하청 건설업체들이 연루된 올림픽 인프라 조성 사업의 비리를 포착했다”고 보도했다. 브라질 최대 건설회사 오데브레히가 정부로부터 올림픽 경기장 지하철역 공사와 리우의 마라빌랴 항구 현대화 사업을 수주하면서 페트로브라스 임원과 정치인들에게 뇌물을 줬고, 검찰이 수사에 나섰다는 것이다.
미셰우 테메르 브라질 대통령 권한대행(왼쪽 두 번째)이 5월 23일 브라질리아의 의사당에서 헤난 칼례이후스 상원의장(오른쪽 두 번째) 등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AP연합뉴스
이뿐이 아니다. 브라질은 요즘 ‘마샤두 파일’이라는 것을 놓고도 시끄럽다. 역시 페트로브라스와 관련이 있다. 페트로브라스의 자회사인 트란스페트로의 대표이자 상원의원인 세르지우 마샤두가 검찰 수사과정에서 플리바겐(양형 협상)을 하면서 녹취 파일 하나를 제시했는데 이것이 공개됐다. 일간 풀랴지상파울루에 따르면 이 파일은 헤난 칼례이후스 상원의장과 마샤두 사이의 전화 내용이라고 한다. 여기서 핵심은 비리가 아니라 유력 정치인의 수사 개입과 ‘정치 공작’이다. “체포됐을 때 플리바겐을 할 수 없도록 해야 해. 그게 먼저야.” 녹음 파일에서 칼례이후스는 검찰이 플리바겐을 못하게 해야 한다고 했다. 그렇게 해서 노동자당을 몰아붙여 정권을 뒤집으려 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노동자당은 우파 진영이 검찰 수사를 ‘기획’하는 등 깊이 개입했음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주장하고 있다.
호세프 몰아낸 ‘탄핵 쿠데타’
브라질 상원은 지난 12일 노동자당의 지우마 호세프 대통령을 몰아내기 위한 탄핵심판 개시안을 통과시켰고, 즉시 호세프는 직무가 정지됐다. 남은 임기는 미셰우 테메르 부통령이 물려받았다. 테메우 대통령 권한대행은 최대 정당인 우파 민주운동당(PMDB) 소속이다.
브라질 의회는 정당들이 난립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임기 8년의 상원의원은 총 81명인데, 2014년 총선에서 상원 의석을 확보한 정당이 17개다. 이 정당들이 우파 진영, 좌파 진영, 독립블록 등으로 나뉘어 있다. 이합집산이 많을 수밖에 없다. 루이스 이냐시우 룰라 다 실바 시절부터 14년째 집권해온 노동자당도 이 구조는 어쩌지 못해, 여러 정당들과 연립을 하면서 의회를 움직이고 입법을 추진해야 했다. 내각도 연정에 소속된 여러 정당들이 나눠 맡았다. 테메우가 이끄는 민주운동당 등 중도우파 진영은 대선에서는 노동자당 후보를 이기지 못하기에, 정치협상을 통해 연정에 들어가 권력을 행사했다. 그러나 2014년 호세프가 힘겨운 승리 끝에 2기 집권에 들어간 후 여론이 등을 돌리는 조짐이 일자 노선을 갈아탔다. 연정에서 탈퇴해 호세프 탄핵을 주도하고 나선 것이다.
탄핵안 개시로 직무가 정지된 지우마 호세프 브라질 대통령이 5월 20일 동남부 도시 벨루오리존치에서 열린 디지털미디어 활동가들과의 만남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AP
아직 탄핵이 완전히 이뤄지기까지는 절차가 남아 있다. 연방대법원이 최대 180일에 걸쳐 탄핵심판을 심의해 적법성을 인정하면 상원이 최종 표결로 탄핵을 결정한다. 그러나 탄핵절차에 들어갈지를 결정하는 개시안 통과 때 이미 찬성한 의원이 3분의2가 넘었다.
문제는 이 과정이 석연치 않다는 것이다. 탄핵을 추진한 우파 진영이 내세운 것은 호세프가 2년 전 대선 캠페인 때 정부 적자를 숨기려고 재정 통계를 조작, 연방정부회계법을 위반했다는 것이다. 2003년 룰라 집권 이래 노동자당은 페트로브라스가 석유를 팔아 번 돈을 비롯한 에너지 수입으로 서민 복지를 추진했다. 그러나 저유가로 수입이 줄자 재정난에 부딪쳤다. 회계장부 조작은 이 과정에서 벌어졌다. 검찰의 페트로브라스 비리 수사는 호세프 탄핵과는 직접 관련 없는 일이었으나, 호세프가 이 회사 이사회장으로 재직한 기간 비리가 일어났다는 점에서 한 덩어리로 묶여 여론을 악화시켰다.
“부패 혐의자들이 부패를 이유로 탄핵”
하지만 회계법 위반은 국민들이 뽑은 대통령을 몰아내기에는 다소 명분이 약하다. 그래서 우파는 어떻게든 ‘호세프=비리’라는 이미지를 만드는 데에 주력했다. 이를 위해 여전히 국민들의 지지를 받는 룰라까지 걸고 넘어졌다. 룰라가 차기 대선에 다시 출마한다면 유력 후보가 될 것이 뻔하니 흠집을 내고 수사로 발을 묶어 못 나오게 하겠다는 의도다. 현재 노동자당은 호세프 탄핵을 피하기 힘들 것으로 보고 조기대선을 주장하는 반면, 테메르 등은 반대하고 있다. 우선은 노동자당을 무력화한 후에 대선을 치르지 않으면 승산이 높지 않은 탓이다. 중남미 좌파 국가들이 브라질 우파가 ‘쿠데타’를 벌인 꼴이라며 격앙된 반응을 보이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브라질 우파의 호세프 탄핵은 중남미에서 진행되는 ‘우파의 반격’과도 맥을 같이 하고 있다.
5월 22일 브라질 상파울루에서 의회의 탄핵안 개시로 직무가 정지된 지우마 호세프 대통령 지지자들이 미셰우 테메르 권한대행의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시위대가 들고 있는 현수막에는 ‘테메르는 나가라’는 문구가 쓰여 있다./AP·AFP연합뉴스
호세프와 노동자당이 썩었다고 주장하는 브라질 우파 진영은 깨끗할까? 부패에 있어서라면 이들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 테메르는 밀실 협상 전문가이고, 미국 금융자본이 선호하는 인물이라고 미 CNN방송은 전했다. 레바논 이민자 가정 출신인 테메르는 미국의 정보원 역할도 한 것으로 드러났다. 위키리크스는 호세프 탄핵 절차가 개시된 이튿날인 13일 미국 외교문서를 공개했다. 테메르가 2006년 룰라 재선을 앞두고 미국 외교관들에게 브라질 정치상황을 전달했음을 보여주는 내용이었다.
테메르는 호세프가 직무정지를 당한 이튿날 곧바로 새 내각을 공개했다. 각료 23명 전원이 백인 남성이었다. 과학 부처에는 복음주의 목사가, 농업장관에는 아마존 밀림을 밀어낸 농장주가 임명됐다. 정권의 색채를 그대로 보여준다. 테메르 본인은 비록 기소되지는 않았으나 페트로브라스 뇌물 사건에 연루돼 증인으로 소환된 상태다. 여론조사기관 이보페 조사에서는 60% 이상이 “테메르도 호세프와 함께 물러나야 한다”고 답했다. 1992년 비리가 대거 폭로돼 탄핵당한 페르난두 콜로르 전 대통령이 호세프 탄핵을 추진해온 상원에서 지금 의원으로 활동하고 있다는 것은 코미디나 다름없다. 하원 탄핵절차 표결을 주도했던 에두아르두 쿠냐는 부패 혐의로 최근 연방대법원에서 하원의장 직무 정지를 당했다. 임수진 대구가톨릭대학교 중남미학부 교수는 “부패 혐의자들이 부패 혐의를 이유로 대통령을 탄핵하려는 것”이라며 “검찰 수사가 확대된다면 테메르가 대통령 권한대행을 하는 것조차 불가능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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