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네 책방

이탈로 칼비노, '반쪼가리 자작'

딸기21 2016. 2. 1. 15:55
728x90




아, 정말 이런 책은!


칼비노에 대해 내가 갖고 있는 애정은 주변사람들에게 하도 늘어놔서 남사스러울 지경이지만, 이 책은 정말이지 대단하다. 재미있어도 너무 재미있었다! 딸과 함께 침대에 누워, 며칠에 걸쳐서 서로 번갈아 큰 소리로 읽어주며 어찌나 즐겁던지. 무척이나 칼비노스러운 엽기잔혹발랄판타지동화다.


반쪼가리 자작 - 이탈로 칼비노 / 이현경 옮김 / 민음사


그날 아침, 노인은 때까치가 있는 새장 문을 열고 아들 방까지 날아가게 했다. 그리고 까치와 박새의 작은 울음소리를 흉내 내며 모이를 주었다.

잠시 후 메다르도의 방에서 창틀을 향해 무엇인가를 집어던지는 소리가 났다. 그 뒤 노인이 밖으로 몸을 내밀었다. 처마널에 때까치가 죽어 있었다. 노인은 손을 동그랗게 모아 때까치를 데려왔다. 그리고 마치 잡아 뜯길 뻔한 것처럼 날개에 상처가 나고 두 손으로 꽉 쥐인 것처럼 다리가 부러지고 한쪽 눈이 뽑힌 때까치를 보았다. 노인은 때까치를 가슴에 안고 울기 시작했다. 

그날 노인은 침대에 누웠다. 새장 창살 저편에 있는 가족들은 그가 몹시 앓는 것을 보았다. 그러나 노인이 방문을 잠그고 열쇠를 숨겨 버렸기 때문에 안으로 들어가 노인을 간호할 수가 없었다. 그의 침대 주위엔 새들이 날아다녔다. 그가 침대에 누울 때부터 새들은 그렇게 날았다. 그러고는 쉬려고 하지도 , 날갯짓을 멈추려 하지도 않았다. 다음 날 아침 새장 너머로 얼굴을 내민 유모는 숨을 거운 아이올포 자작을 발견했다. 새들은 모두 침대 위에 앉아 있었다. 마치 바다 가운데 떠다니는 나무토막 위에 앉아 있는 것처럼.


“온전한 것들은 모두 이렇게 반쪽을 내 버릴 수 있지. 그렇게 해서 모든 사람들이 둔감해서 모르고 있는 자신들의 완전성에서 벗어날 수 있는 거야. 나는 완전해. 그리고 내게는 모든 것이 공기처럼 자연스럽고 막연하고 어리석어 보여. 나는 모든 것을 볼 수 있다고 믿었는데 그건 껍질에 지나지 않았어. 우연히 네가 반쪽이 된다면 난 너를 축하하겠다. 얘야, 넌 온전한 두뇌들이 아는 일반적인 지식 외의 사실들을 알게 될 거야. 너는 너 자신과 세계의 반쪽을 잃어버리겠지만 나머지 반쪽은 더욱 깊고 값어치 있는 수천 가지 모습이 될 수 있지. 그리고 너는 모든 것을 반쪽으로 만들고 너의 이미지에 맞춰 파괴해 버리고 싶을 거야. 아름다움과 지혜와 정당성을 바로 조각난 것들 속에만 있으니까.”


“내 날카로운 감정 속에는 온전한 사람들이 사랑이라고 부르는 감정과 일치할 수 있는 것이 전혀 없어. 그런데 만일 그렇게 어리석은 감정이 사람들에게 그다지도 중요하다면 나도 그에 상응하는 것을 만들어 낼 수 있겠지. 그렇다면 그것은 틀림없이 멋지고 무시무시할 거야,” 그러나 메다르도가 냉담하게 표현했던 생각들이, 거짓으로 꾸며낸 것만은 아니었다. 파멜라를 보자 메다르도는 자기도 모르게 피가 움직이는 듯한 느낌을 받았고 오랫동안 맛보지 못했던 무엇인가를 느꼈다. 


점심 때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파멜라는 풀밭에 핀 데이지 꽃들이 모두 반쪽만 남은 것을 발견했다. 나머지 꽃잎 반쪽은 땅에 떨어져 있었다. “어머, 계곡의 다른 소녀들에게도 이런 일이 생겼을까!” 

그녀는 자작이 자신을 사랑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오후에 파멜라는 풀을 먹이고 저수지에서 놀게 하려고 수오리를 데리고 수녀들의 초원으로 갔다. 초원에는 하얀 방풍나물 꽃들이 가득 피어 있었다. 그러나 이 꽃들도 역시 데이지 꽃과 같은 운명에 처했다. 꽃의 줄기 부분이 마치 가위로 잘린 것처럼 잘려 나가고 없었다. 

“어머나, 그가 원하는 건 바로 나야.”

저녁에는 ‘민들레’라고 불리는 꽃들이 가득 핀 초원을 지나서 집으로 왔다. 그 길에서 파멜라는 민들레의 한쪽 홀씨들이 없는 것을 발견했다. 파멜라는 반쪽이 된 하얗고 둥근 부분을 몇 개 따서 날렸다. 부드러운 홀씨는 멀리 날아갔다.

“어머나, 바로 나를 원하는 거야. 앞으로 어떻게 될까?”


다음 날 파멜라는 보통 때처럼 뽕나무 열매를 따러 나무 위로 올라갔다. 그런데 잎사귀들 틈새에서 무언가가 신음하며 날갯짓하는 소리가 들렸다. 파멜라는 놀라서 한동안은 내려갈 수가 없었다. 날개가 묶인 닭이 높은 가지에 매달려 있었고 털이 많은 남색 나비들이 그 닭을 갉아 먹고 있었다. 그리고 소나무 위에 사는 송충이들이 바로 닭의 볏 위에 놓여 있었다.

그것은 자작의 무시무시한 또 다른 메시지 같았다. 파멜라는 그것을 이렇게 해석했다.

“내일 숲에서 만나자.”


“아, 이 거미! 내겐 손이 하나밖에 없는데 그 한 손에다마저 독을 쏘았어! 그렇지만 어린아이의 목을 깨문 것보다야 내 손을 문 게 분명 더 낫겠지.”

말을 하는 동안 자작은 보랏빛으로 부풀어 오른 손을 슬프게 바라보았다. 


“아, 파멜라. 이건 반쪽짜리 인간의 선이야. 세상 모든 사람들과 사물을 이해하기란 어려운 일이야. 사람이든 사물이든 각각 그들 나름대로 불완전하기 때문이지. 내가 성한 사람이었을 때 난 그것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귀머거리처럼 움직였고 도처에 흩어진 고통과 상처 등을 느낄 수 없었어. 성한 사람들이 믿을 수 없는 일들이 도처에 있지. 반쪼가리가 되었거나 뿌리가 뽑힌 존재는 나만이 아니야, 파멜라. 모든 사람들이 악으로 고통받는 걸 알게 될 거야. 그리고 그들을 치료하면서 너 자신도 치료할 수 있을 거야.”


아침마다 나는 동물들을 치료하러 마을을 돌아다니는 트렐로니를 따라다녔다. 트렐로니는 차츰차츰 자기 의술을 실제로 사용했고, 우리 고장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질병으로 고통을 받는지 느끼기 시작했다. 오랫동안 계속되어 온 가난 때문에 그들은 많이 쇠약했다. 그들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치료를 받아 본 적이 없었다.


피에트로키오도는 인간들이 정말 실용적이고 정확하게 만들어 작동할 수 있는 기계는 사형대와 고문대같이 해로운 것들뿐일지도 모른다는 의구심을 갖게 되었다. 사실 악한 반쪽이 피에트로키오도에게 새로 만들 기계에 대한 것을 보여 주기만 하면 이 장인의 머릿속에는 그 기계를 만들 수 있는 방법이 금방 떠올라서 그는 곧바로 작업에 들어갔다. 그리고 세부적인 부분들을 다시 손볼 필요 없이 완벽하게 완성된 그 도구는 기술적으로나 독창적인 면에서나 걸작이었다.

장인은 괴로웠다.

“혹시 내 영혼에 사악함이 있기 때문에 잔인한 기계밖에 만들 수 없는 게 아닐까?”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열의를 다하고 재능을 발휘해 다른 고문대들을 만들었다.


달이 뜨면 사악한 영혼에게는 악한 생각들이 마치 새끼 뱀들처럼 엉켜들었고, 자비로운 영혼에는 자제와 헌신의 백합들이 꽃을 피우곤 했다. 그렇게 베다르도의 두 쪽은 상반되는 어지러운 마음으로 번민하며 테랄바의 절벽을 헤매 다녔다.


악한 반쪽과 착한 반쪽은 서로 같이 꽁꽁 묶였다. 트렐로니는 모든 내장기관들과 두 반쪽의 동맥을 서로 결합하여 치료했다. 외삼촌은 죽음과 삶 사이에서 몇날 며칠 밤을 새웠다. 어느 날 아침 붉은 선 한 줄이 이마에서 턱까지 가로질러 가는 게 보였다. 진짜로 선 몇 개가 외삼촌 얼굴 위에 나타나면서 움직였다. 그리고 트렐로니는 그 선이 한쪽 뺨에서 다른 쪽 뺨으로 이동하는 것을 보고서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마침내 메다르도는 눈과 입을 열었다. 처음에 그의 표정은 비틀려 있었다. 한쪽 눈은 찡그리고 있었고 다른 쪽 눈은 애원하는 듯했다. 한쪽 이마에는 주름이 잡혔고 다른 쪽 이마는 깨끗했다. 입도 한쪽은 각 지게 웃었고 다른 쪽은 이를 드러내고 웃었다. 하지만 차츰차츰 균형이 잡혀 나갔다.

그렇게 해서 외삼촌은 사악하지도 선하지도 않은, 사악하면서도 선한 온전한 인간으로 되돌아왔다. 표면적으로는 반쪽이 되기 전과 달라진 점이 없었다. 그러나 그에겐 두 반쪽이 재결합된 경험이 있었다. 그래서 그는 아주 현명해질 수 있었다. 그는 행복한 생활을 했고 자녀를 많이 두었으며 올바를 통치를 했다. 아마도 우리는 자작이 온전한 인간으로 돌아옴으로써 놀랄 만큼 행복한 시대가 열리리라 기대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세상이 아주 복잡해져서 온전한 자작 혼자서는 그것을 이룰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