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심장’을 강타한 테러에 세계가 들썩이고 있다. 프랑스 파리 동시다발 테러로 이슬람국가(IS)는 시리아·이라크만의 문제가 아닌 지구적인 위협으로 떠올랐다. 하지만 시리아에서는 4년 반 넘게 계속돼온 내전으로 날마다 사람들이 죽어간다. 이미 사망자는 20만 명을 넘어섰다. 최대 도시 알레포에서는 바샤르 알아사드 독재정권 정부군의 ‘통폭탄’과 IS의 전투 등으로 하루가 머다 하고 민간인들이 희생된다.
이라크에서는 소수 집단인 야지디족 여성들이 IS의 성노예가 되거나 팔려간다. 아프가니스탄에서는 파리 테러 이틀 전 탈레반에서 떨어져나와 IS에 결합한 무장조직이 소수민족인 하자라족 7명을 참수했다. 희생자 중에는 9살 여자아이도 있었다. 유럽은 시리아 난민 50만명 이상이 유입되자 수용 여부를 놓고 갈등을 빚었지만 터키와 요르단, 레바논 등에는 이미 400만 명 가까운 시리아 난민들이 피신해 있다. 이 나라들의 대규모 난민촌은 대외 원조가 부족해 점점 열악한 환경이 돼 간다. 유엔난민기구(UNHCR) 등 구호기구들은 다가올 겨울을 걱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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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파리 테러 전날 레바논 베이루트에서 IS의 테러가 나 44명이 숨진 사실이 뒤늦게 부각되면서, 추모와 연대의식조차 ‘강한 나라’ 쪽으로 모인다는 지적도 나온다. 페이스북은 파리 거주자들의 안전을 확인할 수 있도록 ‘세이프티체크’ 앱을 내놨으나, 의도와는 다르게 ‘프랑스와 레바논을 차별했다’는 이유로 비판을 받았다. 왜 파리 테러 희생자들만 애도하느냐는 얘기가 들린다. 그 전날 레바논 베이루트의 희생자들은 애도조차 하지 않았다고.
그럼 왜 또 베이루트 뿐인가? 한국은 물론 세계 사람들이 아마도 대부분 들어본 적 없을, 방기(Bangui)라는 도시가 있다. 아프리카 내륙, 중앙아프리카공화국의 수도다. 바가(Baga)라는 곳도 있다. 나이지리아 북부에 있는 곳이다. 방기에서도, 바가에서도 수많은 이들이 학살됐다. 모두 지난 1, 2년 사이에 벌어진 일이다.
BBC가 가릿사(케냐 도시) 학살 얘기를 꺼내면서, 가릿사 얘기도 도는 모양이다. BBC방송은 가릿사 사건을 다시 거론하면서 ‘파리에만 쏠린’ 세계의 시선을 지적했다. 워싱턴포스트는 지난 16일 “왜 페이스북의 세이프티체크는 베이루트나 가릿사나 앙카라가 아닌 파리를 위해서만 개발됐나”고 지적하는 기사를 실었다. 소말리아 국경과 인접한 가릿사에서는 지난 4월 알카에다에서 떨어져 나와 IS에 충성을 맹세한 소말리아 극단조직 알샤바브 전투원들의 공격으로 150명 가까이 숨졌다. 터키 앙카라에서는 지난달 IS의 폭탄테러로 120여명이 목숨을 잃었다. 알자지라 미국판도 “페이스북의 세이프티체크는 아랍인들을 위한 것이 아니다”라며 “우리의 공감과 연대는 (서방에) 한정돼 있다”고 썼다. 페이스북은 이런 비판을 받아들여, 18일 세이프티체크 앱을 나이지리아에서도 쓸 수 있게 활성화했다. 나이지리아 북부 욜라에서는 전날 자폭테러로 33명이 숨졌다.
파리에서 129명이, 베이루트에서 44명이 죽었다. 올 1월 바가 학살 때에는 나흘 새 2000명이 목숨을 잃었다. 베이루트 얘기를 하는 사람들에게 "왜 방기는 애도하지 않느냐" "왜 바가를 위해서는 슬퍼하지 않느냐" "왜 가릿사에는 관심이 없느냐"고 묻기 시작한다면, 아마도 끝이 없을 것이다. 세상 여러 곳에서 너무 많은 참사가 벌어지고 있으니 말이다. 미국만 해도 그렇다. 퍼거슨 사태는 그나마 언론을 많이 탔지만 그 밖에도 흑인들이 숱하게 경찰의 총에 죽었다. 미디어가 다루는 것은 늘 제한돼 있다.
중동에서 벌어지는 분쟁과 그로 인한 참상에 세계가 관심을 갖지 않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다른 지역의 현안들이 모두 묻힐 정도로, 중동 문제는 최근 15년간 세계의 화두였다. 구호기구 ‘국경없는 의사회’의 병원이 아프간 쿤두즈에서 미군 폭격을 받아 이슈가 됐으나 이 단체는 이미 한참 전 탈레반 치하 아프간의 인권 탄압과 의료 문제를 고발했다. 힐러리 클린턴 전 미국 국무장관은 퍼스트레이디 시절 아프간의 여성 인권문제를 선도적으로 제기했다. 9·11 테러가 일어나기 전의 일이었다.
미국이 2003년 3월 이라크를 침공하기 전, 거의 1년 가까이 세계의 주요 대도시들에서 일제히 반대 시위가 벌어졌으며 반전 캠페인은 1년 가까이 지속됐다. 2003년 이라크 할라에서 미군의 오폭으로 민간인 60여명이 숨진 사건을 비롯해 2004년 팔루자 학살, 2006년 마흐무디야 성폭행·방화, 2007년 민간 군사회사 블랙워터 직원들의 총기난사 등 미군과 용병들의 전쟁범죄에 세계가 분노했다. 2013년 시리아 내전에서 정부군의 무자비한 봉쇄로 다마스쿠스 외곽 팔레스타인 난민촌 아이가 굶어 죽어가는 사진이 현지 인권활동가들을 통해 전해졌을 때에도 안타까워하는 목소리들이 터져 나왔다. 지난해 8월 이스라엘의 가자 침공으로 아이들을 비롯해 팔레스타인인들이 죽어갔을 때에는 한국에서도 반 이스라엘 시위가 줄을 이었다. 시리아 세살배기 아이 아일란 쿠르디의 죽음에도 마찬가지로 연민과 애도가 몰아쳤다.
그럼에도 미국이나 유럽에서 일어난 사건에 비해 중동이나 아프리카의 고질적인 분쟁지역 참사에 대한 관심이 떨어지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지정학적 중요성이 큰 나라에서 벌어진 사건이 더 큰 뉴스가 되는 측면도 있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이유는 ‘재앙의 만성화’에서 찾아야 한다. 시리아 내전이 길어지고 있는 데다 정치적 합의가 없어 해결책이 보이지 않고, 중동·이슬람권은 테러가 일상이 되면서 민감성이 떨어졌다. 9·11 이후 ‘무슬림 테러리스트’의 이미지가 고착돼 이슬람권이 피해자로 인식되지 않는 것도 물론 하나의 요인이다. 특정 지역의 참상에만 사람들이 무관심한 게 문제가 아니라, 잔혹한 현실에 대한 느낌마저 마비시킬 정도로 분쟁이 만성화되고 있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왜 누구만 애도하느냐"는 물음은 충분히 의미 있다. 반드시 그런 문제제기를 해야 한다. 하지만 '친 서방 이중 잣대'를 점검하기 위해서 생각해봐야할 것들은 너무 많다. 중동의 참사는 '파리에 비하면 적은' 관심을 받았을지 모르지만, '아프리카와 아시아에 비하면 훨씬 많은' 관심을 받는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러니 어느 잣대건 그 하나로 공정한 것은 없다.
나는 파리 테러 희생자들을 애도하는 삼색기로 내 프로필 사진을 바꾸지 않았다. 그렇다고 내가 파리의 안타까운 죽음을 슬퍼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또한 베이루트를 얘기하는 사람들의 문제의식도 거부하지 않는다. 하지만 세상 일은 늘 한꺼풀이 아닌 겹겹의 장막과 그늘로 덮여 있다. '애도의 편향'을 둘러싼 논란도 그 겹겹 중 하나다. 진짜 문제는, 뉴스에 등장하기조차 힘들 정도로, 듣는 사람조차 지겹다 느낄 정도로 분쟁과 테러와 학살이 만성화되고 있다는 게 아닐까.
슬픔과 연대에도 ‘이중잣대’가 적용된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지만, 지역의 문제는 역내에서 해결해야 한다는 점 또한 명백하다. 모든 무슬림이 테러리스트인 것은 아니고 문명의 충돌이라는 틀로 대립을 부추겨서는 안 된다. 이슬람이 근대성을 받아들이는 데에서 다른 종교보다 늦다는 지적도 적지 않지만 이 문제를 놓고는 의견이 갈린다. 이슬람 극단주의자로 수감됐다가 나와 이슬람 개혁가로 변신한 이집트 출신의 마지드 나와즈와 미국의 신경과학자 겸 무신론 운동가 샘 해리스는 최근 펴낸 <이슬람과 관용의 미래>라는 책에서 ‘이슬람의 현대화’를 주장했다. 반면 호주의 역사학자 밀라드 밀라니는 18일 온라인 매체 더컨버세이션 기고에서 “종교를 개혁한다고 극단주의를 없앨 수는 없다”며 “문제는 정치이지 종교가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역내 분쟁과 테러리즘과 인권 침해와 학살은 결국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몫이다. 만성화된 폭력의 고리를 끊는 것은 외부의 개입으로는 불가능하다. 난민들을 잠재적 테러범으로 보고 밀어내는 것으로는 테러를 막을 수 없듯이, 보복공격으로 IS를 격퇴할 수도 없고 외부의 힘으로 극단주의를 몰아낼 수도 없다. 이라크는 미국의 공격으로 아수라장이 됐으나 시리아는 민주화 시위가 내전으로 변질되면서 지상의 지옥이 돼버렸다. 현지의 정치 과정이 오랜 성숙기간을 거쳐 정상화되지 않고서는 안정은 요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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