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이 극단주의 무장세력 이슬람 국가(IS)와 싸우는 시리아 반군에 무기를 떨어뜨려줬다. 말 그대로 하늘에서 땅으로, 무기를 떨궈준 것이다. 반정부군에 무기를 내줬다가 혹여 극단세력에 흘러갈까봐 직접적인 지원을 꺼려왔던 미국이 전략을 바꾸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시리아·이라크 IS와의 전투를 지휘하는 미군 사령부의 스티브 워런 대변인은 11일 미 공군이 C17 수송기를 이용해 탄약을 낙하산에 매달아 반군에 공수했다고 12일 밝혔다.
미군은 구체적으로 어느 지점에 무기를 투하했는지는 밝히지 않은 채, 무기를 받은 집단의 지도부가 ‘충분히 검증’됐다고만 밝혔다. 그는 이 조직이 ‘시리아아랍연합군(SAC)’이며 4000~5000명 규모의 병력을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미군 관리에 따르면 공급된 물자는 탄환과 수류탄 50t 분량이라고 AFP통신은 전했다.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 등 미국 언론들에 따르면 시리아 반정부군은 지난달 말 러시아의 공습이 시작된 이래 처음으로 미국으로부터 TOW 대전차미사일 등 무기를 대량공급 받았다고 확인했다. 2013년부터 미국산 대전차미사일이 반군에게 가기는 했으나 주로 미 중앙정보국(CIA)이 극단주의 진영이 아니라고 파악한 그룹에게 사우디아라비아 등 아랍 ‘연합국’들을 통해서 은밀히 건네는 식이었다.
시리아 정부군이 10월 7일 모렉 지역에서 하우위저 포를 발사하고 있다. AP
미국은 시리아 북부에서 IS와 싸우는 쿠르드 민병대에도 무기를 공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영국에서 시리아 상황을 모니터링하는 시리아인권관측소는 쿠르드 민병대 YPG가 다른 무장세력들과 함께 ‘시리아민주군’을 결성, IS의 근거지인 북부 도시 라카를 공략하려 하고 있다고 전했다. 터키에 접경한 시리아 북부 국경도시 코바니의 한 쿠르드족 관계자는 미군이 YPG에 120t 가량의 무기와 탄약을 지원했다고 전했다. 미군은 지난 주에 쿠르드 민병대에 직접 무기를 전달한 일은 없다고 밝혔었다. 경로는 여러가지이지만, 미국이 IS와의 싸움에 나선 집단들에게 무기 지원을 본격화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러나 미국의 무기 공급만으로 시리아 전황을 바꿀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미국 버락 오바마 정부는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소규모 병력만 남기고 미군을 철수시키면서 현지 치안군을 훈련시키는 전략을 택해왔다. 그러나 이라크에서 IS가 중·북부 지역을 상당부분 차지한데다 최근 아프간에서 북부 주요 도시 쿤두즈를 14년만에 다시 탈레반에 빼앗기는 등, 10여년간 치러온 전쟁의 성과가 다시 무위로 돌아가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 때문에 오바마 정부의 ‘현지군 훈련 전략’이 애당초 잘못된 것이었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존 매케인 상원의원 등 공화당 내 강경파들은 2013년 8월 시리아의 바샤르 알아사드 독재정권이 자국민을 상대로 화학무기를 사용, 어린이들을 포함해 1000명 가까이를 학살했을 때 미국이 ‘인도적 차원의 군사개입’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예산도 없는데다 이라크·아프간에 이어 또 하나의 전선을 여는 것을 꺼린 오바마 대통령은 끝내 공습을 하지 않았다. 근 1년 뒤인 2014년 6월 반 아사드를 내세워 시리아 내전에 뛰어든 극단조직 IS가 시리아와 이라크 일대에 ‘국가 수립’까지 선포하고 나서면서 오바마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처지가 됐다.
지난 9일 뉴욕타임스는 오바마 정부가 결국 시리아 내 반정부군을 훈련시켜 IS에 맞서게 하는 전략을 포기했다고 보도했다. 지금까지 5억 달러를 들여 수천 명의 반군을 훈련시켰으나 이 전략은 실패로 돌아갔고, 펜타곤은 훈련 예산을 무기 공급에 쓰기로 했다는 것이다. 미군은 시리아 북쪽의 터키와 남쪽의 요르단을 비롯해 중동 곳곳에 훈련캠프를 차려놓고 반군을 키워왔다. 오바마는 이라크·아프간에서의 현지 병력 육성 전략에는 변화가 없다고 못박았으나, 최소한 시리아에서는 이를 바꾸기로 한 셈이다.
(Photo: US Air Force/Getty Images)
하지만 미군이 지원하고 있다는 쿠르드 군대의 도덕성을 두고 논란이 일면서 오바마 정부의 전략에 대한 비판이 가시지 않는다. 국제앰네스티는 12일 시리아 쿠르드반군 YPG가 지난해 1월부터 북부 지역에 사실상 ‘자치정부’를 세워놓고 쿠르드족이 아닌 아랍계와 투르크멘계 주민들을 내쫓고 있다는 보고서를 내놨다. 앰네스티는 YPG가 “주도면밀하게 민가를 파괴했으며 마을 전체를 밀어버리거나 불태우기도 했다”면서 이는 국제 인도주의법을 위반한 전쟁범죄에 해당된다고 비판했다.
군사전문지 디펜스뉴스는 12일 “공군력을 충분히 쓰지 않으려는 오바마 정부의 미온적인 태도”를 지적하면서 1991년 걸프전 때와 2003년 이라크 침공에 비해 미국 주도 연합군의 IS 지역 공습은 미미하다고 비판했다.
미군은 지난 6일 현재 IS에 대한 연합군의 공습 횟수가 이라크에서 4701회, 시리아에서 2622회 등 모두 7323회나 됐다며 반박했으나 걸프전 42일간의 4만8024회나 이라크 침공 초반 한달 간 매일 평균 800번 이상을 출격한 것에는 미치지 못한다. 물론 걸프전·이라크전 등 미군 아랍국을 침공한 전쟁과 시리아 내전에 대한 ‘군사 개입’을 대놓고 비교하는 데에는 무리가 있다.
Airstrikes in Iraq and Syria /미 국방부
Fighting ISIS: Is Pentagon Using Air Power's Full Potential? /디펜스뉴스
하지만 시리아에 대한 정보가 부족해 공습 목표가 분명치 않고, 계속해서 우유부단한 모습을 보임으로써 IS를 비롯한 극단주의자들에게 ‘잘못된 메시지’를 줬다는 지적에는 일리가 있다. 이에 대해 미군은 알아사드 정부군-온건 반군-쿠르드 민병대-IS-러시아 공습병력 등 숱한 진영이 개입된 시리아 내전은 상황이 다르다고 강조하고 있다. 적의 위치가 분명치 않은 상황에서 무차별 공습을 하다가는 오히려 민간인 피해만 더 키울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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