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얘기 저런 얘기/여행을 떠나다

나우루 여행기 2탄- 라나와 리사, 안녕!

딸기21 2015. 8. 5. 20:19
728x90

나우루의 현실은 답답하고 아팠지만 그래도 며칠 간 거기서 지내면서 마음은 참 따뜻했다. 그곳 사람들 마음이. 무엇보다, 거기서 만난 친구 라나와 리사. 


라나의 집에는 정말 우연히 들렀다. 사전 섭외를 이렇게 전혀 하지 않고 출장을 가는 것은 처음이었던 듯 싶다. 맨땅에 헤딩도 이 정도면... ㅎㅎ 가기 전까지 걱정이 태산이었다. 


길을 걷다 들른 집에서 만난 아이들. 어찌나 이쁜지!



아이들이 모여 있길래 기웃거려본 곳이 라나의 집이었다. 기사에 쓴 대로 라나는 나에게도 초콜릿을 권했고, 나는 다짜고짜 라나의 집에서 저녁밥을 먹고 싶다고 했다. 처음엔 "그러자, 같이 중국 식당에서 사먹자"고 했던 라나는 "집에서 밥을 해달라"고 조르자 흔쾌히 응낙했다.


그날 저녁은 라나의 집에서 보냈다. 밥을 먹고, 잠시 수다를 떨고, 라나가 만들어 파는 옷들과 퀼트 제품들을 구경하고. 소나기가 갑자기 엄청나게 쏟아졌다. 대중교통이 없기도 하거니와 거리도 그리 멀지 않아 호텔서 걸어왔는데. 라나는 조카딸을 불러 오토바이로 나를 호텔까지 태워다 주라고 했고, 아마도 그 집안에서 라나의 말은 준엄한 명령인 것 같았다. 빗속에 오토바이 뒷자리에 타고 호텔로 돌아왔다. 


길 걷다 들러서 얼굴 마주치면 웃어주는 사람들.


그렇게 나우루에서의 첫날은 지나갔다. 둘쨋날은 앞서 얘기했듯 하염없이 걸었다. 우와, 전국일주라니! 아침에 출발할 때에는 구름이 끼어있었다. 자외선 차단제도 바르지 않고 걷기 시작했는데, 오후가 되니 햇빛이... 으흐흐흑 새카맣게 타서 피부가 벗겨지고, 그 후 며칠 동안 고생했다...


길 걷다가 마주친 주유소.

더위 속에 걷다 지쳐 주유소 그늘에 앉아 잠시 쉬었다. 아빠와 아기.


둘쨋날에 만난 사람들은 난민들이었다. 메넹호텔 앞 난민캠프에서 만난 팔레스타인 사람 하니는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누다가 내게 "기자냐"고 물었다. 당연히 그렇다고 얘기를 했지만, 미안해졌다. 난민 문제를 취재하러 간 것도 아니고 우연히 마주쳐 이야기를 나누게 된 것뿐인데. 앞이 보이지 않는 그의 인생에 대한 나의 호기심이 몹시도 미안했다. 


남태평양 섬에서 만난 한여름의 크리스마스 ㅎㅎ



나우루에서 본 가장 거대한 시설. 인산염을 저장하던 시설이다. 왼쪽 뒤편으로 보이는 건물이 내가 묵었던 호텔.

여기도, 저기도... 인산염을 캐내고 보관하고 실어나르기 위한 시설들. 실은 이미 한번 동이 났던 자원을, 더 아래 깊은 지층을 파서 다시 캐내고 있다. 그러나 이 '두번째 인산염층'도 2030년 무렵이면 바닥날 것으로 예상된다.


야니바레 언덕의 레스토랑에서 만난 사람들은 이란 난민들이었다. 한 명은 술에 취해 있었고, 내게 "하와이나 괌이나 더 좋은 섬으로 가지 왜 이런 섬에 왔냐"고 했다. 


마음 아프니 난민 이야기는 여기서 끝.


라나의 손자. 형아가 초콜렛 빼앗아가서 울었어요...

라나의 집 마당, 소낙비가 쏟아지던 저녁.


걷다 보면 기분이 이상하다. 헤세의 "안갯속을 헤매면 이상하여라"처럼 돼버린다. "나무도 풀도 모두가 혼자"이고, "살아있다는 것은 고독한 것, 사람들은 서로를 알지 못하고 모두가 혼자"다. 시간이 느리게 흘러가는 듯한 섬에서 습기와 열기 속을 걸으며 고독하고 알지 못하고 혼자인 사람들을 만나는 경험.


메넹호텔 앞 난민 주택. 여기서 하니를 만났다.

섬 안쪽에 있는 난민캠프. 여기는 '심사'를 받지 않은 난민들을 수용하는 곳이어서 출입할 수 없다. 이런 수용시설을 두어 군데 더 짓고 있었다. 여기서 심사를 거친 사람들은 '자유 난민'이 돼 메넹호텔 앞 난민 주택 같은 컨테이너 집들로 이동한다. 일자리가 있거나 집을 구할 수 있으면 보통의 나우루 사람들처럼 살아가는 것이고.


옆에는 항상 바다가 있었다. 바닷가를 따라 난 길이 이 섬의 유일한 '주요 도로'였으니. 바다는 아름다웠던가? 잘 모르겠다. 아름다운 줄 알고 모래밭으로 내려가 보면 아름답지 않았다. 바닥엔 온통 캔 조각과 쓰레기들. 



세째 날에는 다시 라나의 집으로 갔다. 라나는 도보 일주를 한 나를 칭찬해줬다 ^^ 

섬 가운데 고원의 부아다 라군에 가겠다고 했더니 걸어서는 못 간단다(나중에 가보니까 걸어서 왔으면 황당했으리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라나의 예비 며느리(가 아니고 실은 지금도 며느리인데 아직 결혼식을 올리지 않았음)인 유리가 차를 몰고 왔다. 유리의 할아버지는 태평양전쟁 때 잠시 일본이 이 섬을 점령했을 때 들어온 일본인이라고. 외교부 직원인 유리는 정부청사에 내려놓고, 운전대는 라나가 잡았다. 



둘이서 라군으로 들어가 라이널의 집에서 파파야와 코코넛을 먹었다. 섬 가운뎃부분을 구경하고 다시 공항 옆으로 가 라나의 친구이자 사촌인 리사의 식당에서 밥을 먹고, 공항 옆 스튜어트(이 사람은 나를 모르겠지만 나는 이 사람을 안다. 호주에서 나우루 건너올 때 입국장에서 봤다. ㅋ)의 집 옆에 있는 동굴 속 샘물에 들어갔다. 


오후 내내 라나, 리사, 리사의 막내딸, 나, 이렇게 넷이서 차를 타고 섬을 돌았다. 전날 걸어서 돌았던 섬을 차를 타고 돌아보니 참 편하드만~~ 


그렇게 나의 나우루 생활은 저물어갔으며...



떠나는 날, 호텔 아줌마가 내준 차를 타고 공항으로 이동. 갔더니 리사와 리사의 딸이 나와 있었다. 아쉽지만 리사의 딸은 나우루식 이름이라 내가 발음을 할수가 없었고 기억이 안 나... ㅠㅠ 소녀야 미안


공항에 나왔던 라나는 내가 없는 걸 보고 호텔까지 나를 데리러 갔다가, 이미 떠났다는 말을 듣고 다시 유리와 함께 공항으로 돌아왔다. 네 사람은 내가 출국장으로 들어가기까지, 두 시간 동안 그렇게 함께 놀아주며 나를 배웅해줬다. 인산염으로 만든 목걸이와, 라나가 직접 만든 꽃머리장식도 선물해줬다. 나는 아무 것도 줄 게 없어서 정말 미안했다. 돌아서면서 눈시울이 시큰. 아우아우.


그래서, 여행은 행복했다. 나우루라는 곳에 다시 가보고 싶으냐고 하면? 대답은 쩜쩜쩜. 

하지만 라나를 보기 위해서라면 꼭 가고 싶다.


라나, 리사, 모두들 

모요우랜!

투봐!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