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가 보는 세상/유럽이라는 곳

국정원 뺨치는 크렘린 ‘댓글 알바’  

딸기21 2015. 6. 24.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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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롤 팩토리(troll factory)’. 한국식으로 말하자면 ‘댓글 공장’이다. ‘댓글 알바단’, ‘십알단’처럼 인터넷 여론을 정부에 우호적인 쪽으로 조성하고 비판세력을 매도하기 위한 여론조작 작업을 맡은 기관을 가리킨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 치하의 러시아는 국영 언론들을 활용해 정부 선전을 하며, 비판적인 민간 언론은 강압적으로 침묵시킨다. 체첸 문제 등을 꾸준히 거론해온 독립언론 ‘노바야 가제타’ 같은 신문은 기자들이 잇달아 살해되고 의문의 공격을 당하는 등 갖은 고난을 겪고 있다. 

 

반면 크렘린은 인터넷 공간만큼은 자유를 보장해주는 것으로 알려져 왔다. 하지만 러시아 정보기관들이 인터넷에서도 여론을 조작하기 위해 친 크렘린 선전선동을 퍼뜨리는 조직을 운영해왔던 사실이 드러났다. 이런 조직에 들어가 돈 받고 블로그 글을 쓰던 사람들이 잇따라 폭로를 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알바비’조차 제대로 지급하지 않았다며, 여론조작에 동원됐던 사람이 소송까지 냈다. 

 

AFP통신은 23일 이런 소송을 통해 드러나 러시아 친크렘린 여론조작 작업의 실체를 보도했다. 서방 언론들을 통해 일부 실체가 드러나기는 했지만 러시아에서 이 문제가 법정에까지 가게 된 것은 처음이다.

 

지난 3월 15일 친크렘린 ‘댓글 알바’로 고용됐던 류드밀라 사브추크가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집에서 랩톱 컴퓨터를 들여다보고 있다. 사브추크는 친정부 여론조작의 실태를 고발하면서 ‘인터넷연구대행사’라는 이름의 기관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AFP

 

 

류드밀라 사브추크라는 여성은 최근 러시아의 정보기관과 관련된 ‘인터넷연구대행사’를 상대로 체불임금을 지급하라는 소송을 냈다. 이 기구는 상트페테르부르크에 ‘트롤 팩토리’를 만들어 놓고 사람들을 고용한 뒤 인터넷에 푸틴의 정책들을 지지하는 글이나 댓글을 올리게 했다. 사브추크도 그런 일에 동원된 사람 중 하나였다. 하지만 ‘열악한 노동’에도 불구하고 이 기구는 댓글알바들에게 보수조차 제대로 지급하지 않았다.

 

화가 난 사브추크 등이 항의하자 당국은 일이 커지는 걸 막기 위해 개별 보상을 제안했다. 그러나 사브추크는 이를 거절한 뒤 상트페테르부르크의 페트로그라츠키 지방법원에 소송을 냈다. 요구한 돈은 상징적인 액수인 1만루블(약 20만원)이다. 사브추크는 법정에서 이 기관이 시키는 대로 올초부터 3월까지 두 달 동안 온라인에 친 푸틴 글들을 올렸다고 밝혔다. 

 

인터넷연구대행사의 법률대리인인 예카체리나 나자로바 변호사는 “원고는 사건이 해결되지 못하게 막으려 하고 있다”며 사브추크를 비난했으나 문제의 ‘업무’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에는 답하지 않았다고 AFP는 전했다.

 

인터넷연구대행사는 상트페테르부르크 북쪽에 사무실을 두고 크렘린을 위한 인터넷 여론조작을 해온 것으로 추정된다. 이 조직을 운영하는 사람은 푸틴과 가까운 사업가 예브게니 프리고진으로 알려졌다. 

 

이 기구에 채용된 사람들은 주로 웹사이트에 올라온 뉴스들에 비난 댓글을 달거나, 소셜미디어에서 반 푸틴 블로거들의 활동을 막는 일을 해온 것으로 보인다. 이 기구는 최소 400명 이상을 동원해 반정부 인사인 알렉세이 나발니 등을 비난하고 미국 문화를 비판하는 글들을 올렸다. 지난 2월 야권 정치인 보리스 넴초프가 피살됐을 때에는 “넴초프는 야당 동료들에게 살해된 것”이라는 루머를 주로 퍼뜨렸다. 우크라이나 사태로 서방과의 마찰이 격화된 뒤에는 외국어로도 댓글 공작을 했고, 동영상과 사진 등을 활용해 여론을 왜곡하기도 했으며 자체 뉴스사이트도 운영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러시아 온라인 여론조작 부대가 이슈가 된 것은 2003년 무렵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인터넷매체 베스트니크에 “빅브라더의 가상의 눈”이라는 기사가 실렸다. 프랑스 출신으로 러시아에서 활동하던 저널리스트 안나 폴랸스카야 등이 쓴 이 기사는 이미 인터넷이 대중화된 초창기였던 1998년부터 루넷(러시아 인터넷 포럼)에서 시작된 여론전을 전하고 있다. 이들은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러시아 인터넷 공간이 친정부적으로 변하고 전체주의적인 색채가 짙어졌다고 지적했다. 1998~1999년만 해도 인터넷 글들의 60~80%가 자유주의를 옹호했으나, 2000년이 되자 갑자기 ‘민주주의 반대’를 외치는 글들로 도배됐다는 것이다.

 

2012년 해킹그룹 ‘어노니머스’의 러시아 지부라고 주장하는 몇몇 해커들이 친크렘린 청년조직 ‘나시’ 전현직 간부들의 이메일을 폭로했다. 이 이메일들을 통해, 크렘린과 연결된 조직적인 인터넷 여론조작이 드러났다. ‘웹 여단’이라는 조직은 ‘알바’를 동원해 댓글 하나 당 85루블씩을 지불했고, 최대 60만루블을 받은 알바까지 나왔다. 

 

Polishing Putin: hacked emails suggest dirty tricks by Russian youth group /가디언

 

이듬해 언론감시 기구인 미국 프리덤하우스는 러시아가 친정부 댓글부대를 조직해 온라인 상의 토론을 왜곡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인터넷연구대행사의 존재가 처음 드러난 것도 2013년이었다. 

 

지난 3월 BBC방송 등은 우크라이나와 서방을 비판하고 러시아를 옹호하는 댓글부대 활동이 최근 몇년 새 크게 늘었다고 보도했다. 댓글부대는 주로 평범한 주부나 미국에 반감을 가진 일반 시민을 사칭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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