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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미라마저... 갈수록 꼬이는 'IS와의 전쟁'

딸기21 2015. 5. 22.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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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국가(IS)가 이라크 북부 도시 모술을 점령하고 국가 수립을 선포한 지 다음달이면 1년이 된다. ‘IS와의 전쟁’ 1년이 다 되어가도록 국제사회는 참혹한 전쟁범죄와 유적파괴를 저지르는 이들을 막아내지 못하고 있고, 미국은 갈수록 곤혹스러운 처지가 되고 있다.

 

2000년 古都, 돌더미 될까


IS는 지난 20일 시리아 유적도시 팔미라를 결국 손에 넣었다. 이라크 바그다드 길목 라마디를 장악한 지 닷새 만에 벌어진 일이었다. 2000년 역사를 지닌 팔미라의 찬란한 인류 유산들은 이라크 북부의 유적들처럼 돌더미가 될 판이다. 



IS는 시리아 정부군과 일주일 가까이 일전일퇴의 교전을 계속한 끝에 결국 이 도시를 장악했다. 시내에 들어온 IS가 주민들에게 빵을 나눠주며 민심을 사려 한 반면, 정부군과 경찰은 밤새 달아나기 바빴다고 목격자들은 전했다. 시리아 국영언론들은 정부군 100명 이상이 IS에 목숨을 잃었다고 보도했다.


다마스쿠스 북동쪽 210km 지점에 있는 오아시스 도시 팔미라는 잘 알려진 대로 ‘사막의 베네치아’라 불리는 유적도시다. 로마제국 양식의 기둥들이 늘어선 원형경기장과 고대의 묘지, 바알 신전 등 유적들이 즐비해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곳이다. 


하지만 IS 손에 들어간 이상 이 곳의 유적들은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았다. 이라크 북부를 점령한 IS는 고대 앗시리아제국 유적도시 님루드와 파르티아제국의 유산인 하트라 유적을 ‘이교도의 것’이라며 산산히 부쉈다. 또 이라크 북부 모술의 유서깊은 도서관에서 희귀 문헌 등 8000점을 불태우는 만행을 저지르기도 했다. 


사진 bbc


2001년 3월 아프가니스탄 탈레반이 바미얀의 석불을 대포와 폭약으로 파괴한 사건은 세계에 엄청난 충격을 줬고 ‘반 탈레반’ 바람이 일어났다. 그러나 그보다 한층 심각한 IS의 중·근동 유적 파괴에 세계는 여전히 속수무책이다. 뉴욕타임스는 “전례로 볼 때 IS는 팔미라의 유적을 파괴할 뿐아니라 유물들을 빼내 밀거래하면서 자금을 충원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시리아 문화재청이 팔미라 박물관의 조각상 등 소장품 수백점을 미리 다른 곳으로 옮기기는 했으나 대부분의 유적은 풍전등화다. 



팔미라는 전략적으로도 중요한 곳이었다. 다마스쿠스로 가는 길목에 있는데다, 주변에 천연가스전들이 있다. 라마디와 팔미라를 장악한 건 이라크와 시리아 양쪽에서 IS가 ‘수도 함락’를 노릴 유리한 고지에 서게 됐다는 뜻이다. 실제로 IS 지도자 아부바크르 알바그다디로 추정되는 인물은 라마디를 점령한 뒤 인터넷에 올린 음성메시지에서 “다음번 타깃은 바그다드와 카르발라(시아파 최대 성지)”라고 선언했다.



올초 일본인 인질들과 요르단 공군 조종사가 잔혹하게 살해됐을 때 세계는 IS의 잔혹성에 몸서리를 쳤다. 이례적으로 걸프 아랍국들까지 전투기를 보내 IS 지역을 공습했고, 미국은 4~5월에 대공세를 펼쳐 IS 근거지인 모술을 탈환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이라크 정부군은 지난 3월 모술 가는 길목의 티크리트를 타깃으로 대공세를 벌여, 마침내 지난달 ‘티크리트 완전 장악’을 선언했다. 하지만 당시 작전은 이란측 물밑 지원 덕이 컸다. 전황은 순식간에 바뀌었다. 미국이 특수부대 델타포스를 들여보내 시리아에서 IS 지도자급 간부를 사살했다고 발표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IS의 반격이 벌어졌다.


유적 파괴, 참수와 학살... 그러나 모두가 외면하는 전쟁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이은 이라크 전쟁, 그리고 민주화 요구로 촉발된 시리아 내전은 각각 따로 떨어진 전쟁이지만 지금은 IS라는 존재가 부상하면서 하나로 이어진 꼴이 돼버렸다. ‘IS와의 전쟁’은 미국이 이슬람권에서 벌이는 세번째 전쟁인 동시에, 각국이 비난만 할뿐 아무도 나서지 않는 이상한 전쟁이다.

 

현재 이 전쟁의 전선은 이라크와 시리아로 양분돼 있다. 이라크에선 정부군과 시아파 민병대, 북부 쿠르드 군대가 미국 지원과 이란의 은밀한 도움 속에 싸우고 있다. 하지만 주축이 돼야 할 이라크 정부군은 힘에 부친다는 것이 여실히 드러났다. 


팔미라의 원형경기장. 시리아가 자랑하는 시리아의 관광명소인 팔미라의 고대 유적들은 이슬람국가(IS)의 점령으로 위기를 맞았다. 팔미라/AFP연합뉴스


1980년대 이란과 전쟁을 치르며 미국의 압도적인 지원을 받았던 막강한 이라크군은 이미 오래전 자취를 감췄다. 1990년대 내내 이라크는 미국과 유엔의 금수조치를 받았고, 군대는 무력화됐다. 2003년 이라크를 점령한 미국은 이라크군을 아예 해체하고 내무부 산하 치안군으로 재편했다. 중동 한복판 이라크가 사담 후세인 시절처럼 강한 군대를 키울까 걱정해 취한 조치였다. 


하지만 지금 그것이 부메랑이 되어 돌아왔다. 미군과 계약한 민간군사회사들이 훈련시킨 이라크군은 규율 없는 오합지졸이었다. 지난해 6월 모술에서도, 최근 라마디에서도 이라크군은 총을 버리고 도망치기 바빴다.


2014년 3월 14일 촬영된 시리아 홈스주 팔미라의 고대 유적. 다마스쿠스에서 약 210km 떨어진 팔미라는 ‘사막의 베네치아’라 불리는 오아시스 도시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기도 하다. 팔미라/AFP연합뉴스


시리아 전선은 더 꼬여 있다. 세습독재자 바샤르 알아사드에 맞선 반정부 진영은 세속주의·자유주의자들과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세력으로 분열됐다. 그중 극단주의 조직인 IS가 국가를 수립할 정도로 세를 키운 반면, 세속주의 반군은 거의 시야에서 밀려났다. 몰아내야 할 아사드 정부군이 IS를 막아주길 기대해야 하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최근 며칠 동안 팔미라에서 IS와 싸운 것도 아사드 정부군이었다.


이라크 전력 파악 못하고 우왕좌왕... 미국의 실책들


미국의 실책은 많았다.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라마디가 속한 이라크 안바르주 대부분 지역은 부족집단들이 통치하고 있어 이라크군이 제대로 작전을 수행할 수도 없었다. 미국은 라마디를 빼앗긴 뒤에도 전략적 의미를 축소하느라 바빴다. 


미국은 그동안 이라크군을 과대평가한 반면, 이라크 내 종파분쟁은 과소평가해 IS에 동조하는 수니파들의 결집을 막지 못했다. 이라크군이 취약한 만큼 시아파 민병대에 기댈 수밖에 없는데, 이들에게 미치는 이란의 영향력에 어떻게 대응할지 몰라 당황해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5월 17일 시리아 국영 SANA통신이 공개한 팔미라의 모습. 고대 로마제국 시절의 유적이 격렬한 교전 때문에 파괴돼 있다. 팔미라/SANA·AP연합뉴스


미군은 일단 이라크에 미사일 1000기를 보냈으며 아랍 연합군과 함께 라마디 폭격에 들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현재로선 뾰족한 수가 없어 보인다. 


미국 공화당 매파들은 ‘IS와의 전쟁’을 선언해 놓고도 버락 오바마 정부가 지상군을 보내지 않은 것이 문제라고 주장한다. 공화당의 존 베이너 하원의장은 “‘희망’은 전략이 아니다”라며 오바마 정부를 맹공격했다. 브루킹스연구소의 마이클 오핸런 연구원은 20일 웹사이트에 올린 글에서 “델타포스를 들여보내 테러범(IS 지도부)을 사살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며 “시리아에 미군 지상군을 들여보낼 때”라고 주장했다. 



앞서 월스트리트저널은 오바마 정부가 전략을 재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19일 국가안보보좌관들과 만나 IS에 반대하는 수니파 조직들의 무장을 지원하는 방안을 논의하는 등 뒤늦게 수니파를 다독이고 극단주의 세력으로부터 차단하려 애쓰고 있다. 

 

그러는 사이 참사가 나날이 반복되고 있다. 라마디를 빼앗기면서 집을 잃고 피란민이 됐다. 팔미라 인구 5만명 중에서도 상당수가 난민이 될 것으로 보인다. 알자지라는 팔미라 주민들이 줄을 이어 도시를 떠나고 있다고 21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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