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카 초원의 주인이었던 버펄로는 유럽인들의 미주 정착과 함께 밀려났다. 버펄로 사냥이 대륙을 휩쓸면서 개체수는 급격히 줄었다. ‘아메리칸 바이슨(American Bison)’이라고도 불리는 버펄로는 1492년 이전 북미 초원에 600만마리가 살았던 것으로 추정되나 1890년 무렵에는 750마리 수준으로 줄어 멸종 위기를 맞았다. 이후 사냥이 통제되면서 2000년 기준 36만마리 정도로 늘었다.
요즘 미국 그랜드캐년 일대가 색다른 버펄로 때문에 몸살을 앓고 있다고 BBC방송이 보도했다. 이 버펄로는 흔히 알려진 미국 들소가 아닌 ‘비펄로(Beefalo)’다. 비펄로는 일종의 하이브리드(잡종) 동물이다. 목축업자들이 버펄로와 소를 교배시켜 비펄로를 만들었지만, 이들은 야생의 속성을 간직하고 있어 농장들을 빠져나갔다. 그러고는 자연번식해 그랜드캐년 주변을 쑥대밭으로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버펄로(들소)와 소를 교배시켜 만든 ‘비펄로(Beefalo)’. 미국 그랜드캐년 국립공원 주변에 비펄로들이 갑자기 불어나면서 생태계가 교란되고 있다. 사진 BBC
비펄로 수는 그랜드캐년의 ‘노스림’ 지역에만 600마리가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대형 야생포유류가 갑자기 늘어나자 이 지역 생태계가 교란되고 있다. 비펄로는 목이 마르면 한번에 최대 10갤런(약 378리터)의 물을 들이켠다. 샘물들이 마르는 것은 순식간이다.
그랜드캐년 국립공원 천연자원 담당관 마서 한은 리틀파크라는 작은 호수를 예로 들면서 “이 호수는 주변 동물들의 주요 식수원인데, 들소 200~300마리가 와서 마시면 금세 바닥이 드러날 것”이라고 말했다. 뿐만 아니라 무거운 비펄로들이 돌아다니면서 땅을 밟아 다지기 때문에 땅이 단단해진다. 풀 뜯어먹고 샘을 바닥내고 초지를 밟아 풀이 제대로 자라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다른 소형 동물들은 비펄로에게 밀려나고 있다.
환경운동가들 뿐만 아니라 이 일대 보호구역에서 살고 있는 토착 원주민들도 비펄로 고민을 호소하고 있다. 원주민들이 영적 고향으로 여기는 협곡의 성소들을 비펄로들이 돌아다니며 부수기 때문이다.
비펄로가 처음 태어난 것은 10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버펄로 존스라는 별명으로 불렸던 찰스 존스라는 목축업자가 1906년 바이슨과 육우를 교배시켜 하이브리드종을 처음 탄생시켰다. 하지만 이렇게 태어난 잡종을 상업적으로 가치 있는 ‘가축’으로 키우는 것은 쉽지 않았다. 존스는 결국 비펄로 길들이기를 포기했고, 당국은 제한적으로 비펄로 사냥허가를 내줌으로써 이 동물의 자연증가를 통제했다.
하지만 비펄로들은 점점 서식지를 넓혔고, 사냥 금지구역인데다 천적도 없는 국립공원에 진입하기 시작했다. 최근 몇년 새 비펄로는 연간 50%씩 늘어난 것으로 당국은 추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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