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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르비아, 유고내전 때 ‘제노사이드’ 혐의 없다... 유엔 법정 판결

딸기21 2015. 2. 3. 2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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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민족이 함께 살던 나라가 내분에 휩싸였다. 민족 간 전쟁이 벌어져 한 민족이 다른 민족을 학살하고, 피해를 입은 민족은 반격에 나서 상대방을 대거 쫓아냈다. 공격, 학살, 추방이 반복된 끝에 민족들은 뿔뿔이 갈라져 제각각 나라를 세웠다. 이런 학살과 추방의 책임을 새로 태어난 독립국들에게 물을 수 있을까.

 

이 어려운 문제에 대해 유엔 산하 재판소가 재판 16년만에 “책임 없다”는 판결을 내놨다. 수만명이 숨지고 수십만명이 삶의 터전을 잃었는데 책임질 국가는 없다는 것이다. 국가 간 분쟁을 재판하는 유엔 산하 법정인 국제사법재판소(ICJ)는 3일 옛 유고슬라비아 연방 지역에서 1990년대 벌어진 학살에 대한 책임을 지라며 크로아티아가 세르비아를 상대로 낸 소송을 기각했다. 



슬로바키아 출신 법관인 ICJ의 페테르 톰카 판사는 이날 판결에서 “크로아티아는 세르비아가 제노사이드(종족말살)를 자행했음을 입증하는 데에 실패했다”며 크로아티아의 주장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밝혔다. 근거로 든 것은 1948년 채택된 제네바 협약의 제노사이드 관련 규정이다. 협약은 제노사이드에 대해 “특정 국민, 민족, 인종, 혹은 종교집단을 파괴하려는 목적으로 해당 집단의 구성원들을 살해하거나 극심한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야기하는 행위, 해당 집단의 출산을 막기 위한 조치를 취하거나 해당 집단의 아이들을 다른 집단으로 이주시키는 행위 등”으로 규정하고 있다.

 

톰카 판사는 세르비아가 크로아티아 민족집단을 “힘으로 몰아내려고” 한 것은 사실이지만 집단 자체를 “파괴하기 위한 의도로” 공격한 것은 아니라고 판결했다. 세르비아군이 점령지 안에서 전쟁범죄를 저지른 것은 사실이지만 크로아티아인 전체 혹은 일부를 학살할 의도가 있었음은 입증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옛 유고슬라비아연방 내전 진행과정


1990년 크로아티아계, 독립국가 수립 선언

1991년 민족간 전쟁 시작, 유고연방군-슬로베니아 ‘10일 전쟁’

         크로아티아 독립전쟁 발발

1992년 세르비아-몬테네그로, 신 유고연방 수립 선언

         보스니아 내전 발발

1994년 미국 중재로 크로아티아계-보스니아계 휴전,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건국

1995년 크로아티아, ‘폭풍우 작전’으로 세르비아계 15만~20만명 추방

1998~1999년 세르비아 내 코소보 전쟁, 나토 공습



1990년대 옛 유고연방에서는 민족 간 극심한 내전이 일어났다. 그 중 한 축이 독립을 원하는 크로아티아계와, ‘대 세르비아’를 주창하며 연방의 존속을 원했던 세르비아계 간의 전쟁이었다. 크로아티아는 세르비아계가 조직적으로 학살을 저질렀다고 주장했고, 배상을 요구하며 1999년 ICJ에 제소했다. 


그러자 세르비아는 “크로아티아가 군사작전을 벌여 세르비아계 주민 20만명을 강제 추방했다”면서 2010년 맞제소했다. 톰카 판사는 크로아티아 측의 학살 주장을 기각하면서, 세르비아의 제소도 역시 기각했다. 17명으로 구성된 재판부 중 크로아티아의 주장에는 15명이, 세르비아의 주장에는 11명이 반대표를 던졌다고 인세르비아뉴스는 전했다.



내전 시기의 대량학살 등 반인도범죄 책임자들에 대해서는 유엔 산하에 별도로 구성된 국제유고전범재판소(ICTY)에서 재판이 진행중이다. 그러나 국가 간 제소건에 대한 유엔 차원의 판결은 처음이어서 관심이 집중돼왔다. 크로아티아와 세르비아 사이에는 한동안 화해 분위기가 감돌았으나, 2012년 크로아티아의 세르비아계 추방작전을 주도한 사령관이 ICTY에서 무죄판결을 받은 뒤 관계가 악화됐다. 

 


하지만 ICJ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두 나라는 줄곧 서로에게 화해의 메시지를 던져왔다. 오르사트 밀리에니치 크로아티아 법무장관은 “전쟁 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를 알리고자 한 우리의 목적은 이미 달성됐다”고 말했고, 이비차 다치치 세르비아 외교장관도 판결에 대해 “양국 관계에서 매우 중요한 사건”이라고 평가했다. AFP통신 등은 이번 판결이 양측의 책임을 묻기보다는 과거를 씻고 화해로 나아가라는 뜻을 담은 것이라면서, 내전 당사자들이 새로운 관계로 나아가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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