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가 보는 세상/유럽이라는 곳

프랑스 ‘그리스 재협상 지지’

딸기21 2015. 2. 3. 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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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임한 지 닷새밖에 안 된 야니스 바루파키스 신임 그리스 재무장관이 1일 프랑스를 방문했다. 빚탕감을 주장해온 그리스 ‘시리자(급진좌파연합)’ 새 정부가 구제금융 재협상을 위한 본격 행보에 나선 것이다.

 

아테네대학 경제학교수 출신으로 유럽에서 제법 알려진 경제학자인 바루파키스 장관은 파리 방문에서 제법 큰 성과를 거뒀다. 미셸 사팽 프랑스 재무장관은 파리에서 바루파키스와 만난 뒤 기자회견을 갖고 “그리스가 채권단과의 협상을 타결할 수 있게 도울 것”이라고 말했다. 사팽 장관은 빚을 탕감해주는 일은 있을 수 없다고 강조했지만, 그리스의 ‘재협상’ 주장은 지지한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고 BBC방송 등은 전했다.


Greece's new Finance Minister Yanis Varoufakis speaks to British Chancellor of the Exchequer George Osborne (not pictured) during their meeting at 11 Downing Street on Monday.


그리스는 긴축보다는 경기부양, 무조건적인 구조조정보다는 경제회복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유럽 주요국들을 설득하기 위해 ‘각개격파’에 나서기로 방향을 잡은 것으로 보인다. 바루파키스는 파리에 이어 런던과 로마를 잇달아 방문해 영국·이탈리아를 설득할 계획이다. 그는 “5월말쯤부터 경기부양책을 시작할 것”이라고 했고, 빚 갚는 문제에 관해서는 “채권단 트로이카와 협상은 하겠지만 그 기구들의 ‘기술관료’들과 논의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유럽연합(EU), 유럽중앙은행(ECB), 국제통화기금(IMF)의 ‘트로이카’는 상대적으로 경직된 입장을 보일 수밖에 없는 구조다. 그리스 새 정부는 이들 기구를 움직이는 독일과 프랑스 등 실질적인 파트너들을 설득하려 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알렉시스 치프라스 총리는 최근 블룸버그 인터뷰에서 협상을 깨겠다는 게 아니라면서 “숨을 좀 쉬고, 중기 경제회복 프로그램을 만들 시간을 갖게 해달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보수적인 경제지 월스트리트저널 등이 베네수엘라의 고 우고 차베스보다 더 급진적이라며 ‘위험인물’ 딱지를 붙인 치프라스는 집권 뒤 오히려 협상가로서의 면모를 과시하고 있다.


프랑스의 움직임에서 보이듯, 그리스 채권국들이 손익계산에 따라 독일의 강경방침을 따르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졌다. ‘그리스 대 독일’의 싸움으로 시작됐던 채권문제에서 독일이 고립될 조짐마저 보인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1일 CNN 인터뷰에서 “그리스는 성장전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그리스가 경제개혁을 해야 한다는 전제를 달면서도 “사람들의 생활수준이 그렇게 떨어진 상태에서는 변화를 이끌어내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오바마 정부는 2009년 집권 이후 엄청난 돈을 시중에 풀어 경기부양에 힘썼다. 미국과 유럽의 경제정책이 엇갈린 적은 많지만 그리스 문제가 이슈가 된 시점에 오바마가 직접 나서서 독일의 긴축노선을 에둘러 비판한 것은 이례적이다.


유럽 내 흐름도 그리스에 다소 우호적이다. 금융·재정위기가 극에 달했을 때에는 유럽국들이 모두 돈줄을 쥔 독일 앞에서 꼼짝 못했고, 2009~2010년 독일 주도하에 유럽 구제금융 시스템이 만들어졌다. 하지만 경기부양에 나섰던 미국 경제가 회복되고 있는 것과 달리 유럽은 제2, 제3의 경제위기 우려에 시달린다. 중국도, 일본도 미국처럼 양적완화에 나서자 ECB도 결국 돈풀기를 시작했다. 그리스의 ‘반란’은 독일이 주도한 긴축 강요정책이 실패했다는 평가를 반영한다. 그리스는 채무 재협상을 ‘독일과의 싸움’으로 몰아가고 있다. 치프라스 총리가 지난 26일 독일을 향해 “나치가 1944년 그리스인 200명을 학살한 전쟁범죄 배상금이나 내놓으라”고 공격한 것도 그런 맥락에서다.



그러나 독일과 ‘트로이카’도 쉽게 물러설 수는 없는 입장이다.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그리스 빚탕감은 ‘불가’라고 거듭 밝혀왔다. 프랑스와 처지가 다를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BNP파리바, 크레디아그리콜 등 프랑스 대형은행들은 경제위기 전에 그리스 은행 채권과 국채에 거액을 투자했다. 그리스가 디폴트(채무불이행)로 가면 프랑스 은행들도 줄줄이 무너질 수 있다. 반면 독일 민간은행들은 그리스에 투자한 게 별로 없다. 

 

그런데 그리스 구제금융에는 독일이 가장 많은 돈을 냈다. 그리스 재정운용 실패는 물론이고, 프랑스 등 유로존 다른 나라들의 잘못된 투자까지 독일 납세자들 돈으로 메꾸고 있는 셈이다. 그리스를 ‘용서’해주면 독일 내에서 반발이 클 것이고, 한창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반(反)EU’ 극우파들에 힘이 실리게 된다. 블룸버그통신은 메르켈 총리가 치프라스 총리와의 면담을 몹시 꺼리고 있다면서, 오는 12일 열리는 EU 정상회의 때에도 양자회담은 없을 것같다고 보도했다. 


IMF 역시 그리스의 빚을 깎아주면 과거 아르헨티나 등의 탕감 요구를 거부한 것과 형평에서 어긋나며 잘못된 선례를 남기게 되는 것이라 반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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