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헨티나 수도 부에로스아이레스에서 18일(현지시간) 한 검사가 숨진 채 발견됐다. 검사는 자택 화장실 욕조에서 총에 맞았고, 옆에는 권총과 탄피 하나가 떨어져 있었다. 숨진 인물은 알베르토 니스만이라는 검사였다.
이 사건으로 아르헨티나와 이스라엘이 발칵 뒤집혔다. 사건의 이면에는 이스라엘과 이란이 관련된 오래된 테러사건이 있다. 발단은 2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아르헨티나에는 19세기 말~20세기 초중반 박해를 피해 스페인 등 남유럽에서 ‘세파르디(남유럽계 유대인)’들이 대거 건너왔고, 지금 그 수는 최대 30만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1994년 7월 18일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있는 ‘이스라엘-아르헨티나 친선협회(AIMA)’ 건물에서 폭탄테러가 일어나 85명이 목숨을 잃었다. 아르헨티나 사상 최악의 테러공격이었다.
수사에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부에노스아이레스 지방경찰이 연루돼 있다는 의혹이 제기됐으나 결국 무죄로 결론이 내려졌다. 사건을 맡았던 연방판사는 ‘중대하게’ 사안을 다루지 않았다는 이유로 쫓겨났다. 2005년 당시 부에노스아이레스 대교구장이던 호르헤 베르고글리오 추기경(현 교황 프란치스코)이 이 사건을 공정하게 제대로 조사하라는 청원에 서명했을 정도로 수사는 곡절을 거듭했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숨진 채로 발견된 알베르토 니스만 검사. 사진 라우니온(Launion.com)
이 테러에 대한 검찰 수사의 핵심에 있었던 인물이 바로 니스만 검사였다. 그는 2006년 “수사 결과 이란이 이 공격의 배후에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공표하고, 이란 측 용의자들을 기소했다. 이란의 지원을 받은 레바논 무장조직 헤즈볼라가 테러를 저질렀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란 측은 이를 부인했으며, 용의자들을 내주지 않았다. 사건은 이란과 아르헨티나 간 외교 분쟁으로 비화했다.
2013년 마침내 이란은 아르헨티나와 합의해 수사에 협력하기로 약속했다. 양국은 합동 진상조사위원회를 꾸리기로 했다. 하지만 니스만 검사와 아르헨티나 유대인 공동체는 “이란과의 합동 조사위원회가 사건을 맡으면 투명한 조사를 기대할 수 없다”며 반발했다. 그러다가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아르헨티나 대통령에게로 사건의 불똥이 튀었다. 페르난데스 정부가 이란으로부터 석유를 공급받는 대신 이란측 폭탄테러 용의자들의 처벌을 막아주기로 밀약을 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니스만 검사는 페르난데스 대통령과 엑토르 티메르만 외교장관을 비롯해 정부·여당과 연방 검찰·법원 인사들이 이란과의 관계를 악화시키지 말라며 수사에 압력을 가했다고 주장했다. 이란은 핵 문제로 국제사회의 제재를 받고 있는데, 페르난데스 정부가 폭탄테러 수사를 무마해주는 대신 비밀리에 이란산 석유를 들여오려 했다는 것이었다. 페르난데스 대통령 측은 “터무니 없는 소리”라고 일축했지만 니스만은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니스만은 19일 오후 의회 비공개 청문회에 나와 이 문제에 관해 증언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청문회 바로 전날 니스만 검사가 의문의 죽음을 맞은 것이다.
1994년 테러범들의 폭탄 공격이 일어나 폐허가 된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이스라엘-아르헨티나 친선협회(AIMA) 건물. 사진 WIKIPEDIA
아직 니스만이 살해됐는지, 극도의 압박 속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인지 등은 밝혀지지 않았다. 연방검사 비비아나 페인은 “지금 말할 수 있는 것은 니스만이 22구경 권총에 의해 목숨을 잃었다는 것뿐이다”라고 밝혔다. 하지만 시선은 페르난데스 측에 쏠리고 있다. 야당은 “니스만은 전부터 살해 위협을 받고 있었다”며 이 사건을 정치 이슈로 만들 태세다. 미국 인터넷매체 데일리비스트는 이란이 ‘니스만 살해’의 배후에 있을지 모른다는 추측까지 내놨다.
이스라엘도 니스만 피살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고 로이터통신 등은 전했다. 이스라엘 외교부는 니스만의 죽음이 “비극적인 상황에서 일어났다”면서 “아르헨티나 정부가 니스만이 해오던 일(테러 진상조사)을 계속 수행해 테러공격의 책임이 있는 자들에게 정의를 구현해주길 기대한다”는 성명을 냈다. 타임스오브이스라엘은 니스만의 죽음이 “미묘한 시점에 일어났다”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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