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신좌파의 대부인 영국 지식인 타리크 알리는 영화감독 올리버 스톤과의 대담을 묶은 책 <역사는 현재다>에서 “사건은 사라지지 않는다”고 말한다. 알리에 따르면 사건은 “그 자리에 남아 있다.” 사람들이 기억하기 때문이다.
2015년, 세계는 그 어느 해보다도 ‘기억할 일’이 많을 것 같다. 2차 세계대전이라는 거대한 전쟁, 식민통치라는 하나의 시대가 끝난 것이 바로 70년 전의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가 하면, 또 다른 거대한 전쟁 즉 베트남전이 시작된 지도 60년이 된다. 2015년 올해 기억하고 되새겨야 할 일들은 어떤 게 있을까.
1945년 3월, 이오지마를 점령한 미국 해병대가 노획한 일장기를 펼쳐 보이고 있다. _ WIKIPEDIA
1945년 1월 27일 소련군이 독일로 진격해 악명 높은 유대인 학살 시설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해방시켰다. 2차 세계대전이 막바지로 치닫는 해였다. 어린 소녀 안네 프랑크는 그 해 3월 나치의 수용소에서 목숨을 잃었으나, 파시즘에 맞선 연합국은 마침내 승리했다.
전쟁이 끝나기도 전인 1945년 2월에 미국의 프랭클린 D 루스벨트 대통령과 영국의 윈스턴 처칠 총리, 소련 지도자 이오시프 스탈린은 오늘날의 크림반도에 있는 얄타에서 3자회담을 열고 자신들의 구미에 맞는 ‘전후체제’의 틀을 만들었다. 2차대전 뒤에 탄생한 국제체제인 유엔은 10월 24일로 창립 70년을 맞는다.
전후 70년, 평화의 의미를 생각해야
연합국 진영에 속했던 나라들에게 2015년은 승전 70년을 대대적으로 기념하는 해가 될 것으로 보인다. 유럽국들은 5월 8일을 2차대전의 공식 승전기념일로 삼고 있다. 다만 러시아는 독일을 상대로 승리를 거둔 5월 9일을 기념한다.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이날에 맞춰 미국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북한 지도자 김정은을 모스크바로 초청했다. 미국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사태 뒤 ‘신냉전’을 벌이고 있는 상황에서 오바마가 모스크바의 축하잔치 초대에 응할 것 같지는 않다. 반면 김정은은 북한 지도자가 된 이래 처음으로 해외방문을 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고 일본 아사히신문 등은 최근 전했다.
승전국들에겐 기념식이 기다리고 있겠지만, 반대로 독일은 패전의 의미와 나치즘이 남긴 상처들을 곱씹게 될 것으로 보인다. 2월 13일은 독일 드레스덴이 영국군의 ‘융단폭격’을 받은 지 70년이 되는 날이다. 비록 전면전 중이기는 했으나 ‘시민들이 열기에 녹아내린 아스팔트에 들러붙어 죽어갈’ 정도의 화력을 쏟아부은 드레스덴 폭격에 대해서는 윤리적 문제를 제기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1945년 5월 2일 베를린 함락, 뒤이은 7월 1일 동서독 분단이라는 역사의 흔적들도 독일인들의 기억에서 되살아날 것이다. 아돌프 히틀러의 <나의 투쟁>은 오는 7월 18일로 발간 90년이 된다. 독일에서 이 책은 출판, 판매가 금지돼 있다.
1945년 2월 윈스턴 처칠 영국 총리, 프랭클린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 이오시프 스탈린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왼쪽부터) 얄타의 회담장에 앉아 있다. _ WIKIPEDIA
일본 역시 패전을 기억하는 한 해를 보내게 된다. 미군이 도쿄와 괌 사이에 있는 이오지마(硫黃島)에 상륙한 것은 태평양전쟁이 종국을 향해 치닫던 1945년 2월 19일이었다. 미군 해병대는 근 한 달 만에 섬을 장악했고 일본군 부대는 전멸했다. 3월 21일 일본제국 대본영은 이오지마의 일본군이 ‘옥쇄’(玉碎)했다고 발표했다. 2만933명의 일본군 중에서 살아남은 사람은 800명 정도에 불과했다. 이오지마 전투는 태평양의 전세가 확연히 미국 쪽으로 기울었음을 보여준 사건이었다.
옥쇄 발표가 있기 전인 3월 9일과 10일 미군은 도쿄를 불바다로 만들었다. 도쿄를 완전히 폐허가 되게 한 ‘도쿄 대공습’이었다. 당시 미 육군항공대를 이끈 커티스 르메이 소장이 “일본을 석기시대로 돌려놓겠다”고 말했다는 일화가 있다. 8월 6일에는 히로시마에, 9일에는 나가사키에 핵폭탄이 투하됐다. 그리고 8월 15일 히로히토 일본 국왕은 2차대전 패전을 선언했다.
당시 미국이 일본에 가한 공격들은 일본인들 상당수가 스스로를 피해자로 여기게 만드는 결과를 낳았다. 아베 신조 정권은 전후 70년 동안의 ‘평화헌법 체제’를 무너뜨리고 ‘전쟁할 수 있는 국가’로 일본을 재구성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하지만 평화헌법의 중요성과 의미를 되새기고자 하는 일본인들 역시 적지 않다. 일본에서는 한 해 동안 역사의 교훈을 어떻게 해석하고 전후체제를 어떻게 새롭게 만들어갈지를 놓고 격렬한 논란이 벌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뿐만 아니라 1월 17일은 고베 대지진 발생 20년이 되는 날이다. 3월 20일로 옴 진리교의 사린가스 살포사건이 일어난 지도 20년이 된다. 이래저래 일본에는 기억할 것들이 많은 해다.
60년이 지나도 여전한 미국의 인종차별
1965년 3월 7일 미국 앨라배마주 셀마 거리에는 수많은 흑인들의 피가 흘렀다. 인종차별에 항의하는 흑인 민권운동가 525명을 경찰이 학살한 ‘블러디 선데이’가 그날이었다. 그해 봄부터 여름까지 앨라배마주에서는 주도(州都) 몽고메리로 향하는 흑인들의 대행진이 잇따랐다. 그 선봉에 선 인물은 마틴 루터 킹 목사였다.
www.louisianaweekly.com
몽고메리는 미국 민권운동사에서 지울 수 없는 지명이다. 민권 대행진이 일어나기 10년 전인 1955년 12월 1일 몽고메리에서 흑인 여성 로자 파크스가 버스에 올랐다. 당시 남부 도시들에서는 버스에서 백인이 앞쪽에 타고 흑인은 뒤쪽에 타야 했다. 파크스는 1930년대부터 전미유색인종지위향상협회(NAACP)에서 열성적으로 활동해온 민권운동가였다. 사건이 일어난 날 파크스는 분리정책에 따라 뒷자리로 갔지만 버스는 만원이 되었고, 운전기사는 백인에게 자리를 양보하고 내리라고 요구했다. 파크스는 흑인 차별에 맞서 본격적인 싸움을 할 때라고 판단했고 이튿날부터 보이콧 운동에 들어갔다.
이 싸움은 미 전역에서 엄청난 호응을 불렀다. 파크스는 2005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미국에서 ‘인권의 어머니’로 불렸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흑인들의 현실은 여전히 암울하다. 2014년 8월 ‘퍼거슨 사태’가 보여주듯 여전히 흑인 청년들은 백인 경찰에게 사살되곤 한다. 퍼거슨과 뉴욕에서 일어난 흑인들의 사망은 미국 곳곳을 소요로 몰아넣었다. 파크스의 싸움 이후 60년, 블러디 선데이 이후 50년이 지난 올해에도 미국은 여전히 인종차별과 흑백 갈등이라는 난제와 씨름을 해야 한다.
70년 전 9월 2일 호찌민의 베트남이 건국됐다. 그리고 두 달 뒤인 11월 1일 베트남 전쟁이 시작됐다. 이 전쟁이 냉전시기 동서 양 진영의 대리전이었다면, 20년 전인 1995년의 옛 유고연방 내전은 냉전 종식 이후 불안정한 세계가 낳은 산물이었다. 그해 7월 11일 스레브레니차에서 세르비아계가 무슬림 남성 수천명을 학살했다.
Heavily damaged apartment buildings near Vrbanja bridge in the Grbavica district on the left bank of the Miljacka river. _ WIKIPEDIA
그러자 8월 30일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군이 참사를 막기 위한 ‘인도적 개입’이라는 명분으로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를 공습했다. 하지만 인구가 밀집한 지역에 무차별 공습을 가함으로써, 오히려 이 공격이 더 많은 희생자를 낳았고, 세르비아계의 추가 학살을 초래했다는 비판이 적지 않다. 보스니아 내전은 12월 14일 종식됐으나 종전 20년의 기쁨보다는 여전히 가시지 않은 스레브레니차의 슬픔이 더 많이 외신을 타고 전해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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