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가 보는 세상

저유가 시대 승자와 패자는?

딸기21 2014. 12. 2.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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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호주를 방문한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중국의 전략비축유 보유분을 단계적으로 공개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유사시에 대비해 쌓아두는 전략비축유는 어느 나라나 갖고 있으며 국제에너지기구(IEA) 등은 이런 통계들을 바탕으로 세계 에너지 수급을 추산합니다.

국가통계국에 따르면 중국 내 4곳의 비축고에 1243만 톤, 9100만 배럴 분량의 석유가 보관돼 있다고 합니다. 그 동안 중국의 비축유에 대해서는 1억 5000만 배럴에 달할 것이라는 등 추측만 무성했지요. 세간의 추정치보다는 적은 분량이지만, 중국 정부가 당초 목표로 했던 것보다는 비축유 규모가 근래 크게 늘어난 것이라고 로이터통신 등은 보도했습니다.

저유가 시대의 승자, 중국과 인도


중국이 이렇게 비축유 규모를 늘릴 수 있었던 것은 저유가 덕분입니다. 영국 경제전문지 파이낸셜타임스는 지난 10월 중국이 월 수입량으로는 최대 분량의 원유를 사들였다고 보도한 바 있습니다.

저유가 시대 중국

지난 6월 이후 국제유가는 30% 이상 떨어졌습니다. 글로벌 경제위기에서 세계가 차츰 벗어나고는 있다 해도, 회복세가 그리 빠르지는 않습니다. 심지어 유럽은 ‘제2의 침체’에 빠질 수 있다는 걱정마저 나옵니다. 미국은 실직자 수가 줄어들고 신규 일자리가 생겨나고 있다지만 셰일가스 붐이 일어난 덕에 외국산 석유 수입을 오히려 줄이고 있습니다. 기름값이 계속 떨어지는 것은 이런저런 요인들이 합쳐져서 랍니다.

저유가 시대의 승자와 패자는 누가 될 것인지를 놓고 여러 가지 추측이 나옵니다. 이견 없이 승자로 꼽히는 나라는 중국과 인도입니다. 국영 석유회사인 중국석유가스공사(CNPC)는 랴오닝(遼寧)성 진저우(錦州)에 원유를 쟁이고 있는데, 2016년까지 1890만 배럴 규모를 추가로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됩니다. CNPC의 석유거래 부문 계열사인 차이나오일은 지난 10월 중동 원유 2400만 배럴을 사들였습니다.

인도도 원재료 수입가가 낮아진 덕을 톡톡히 보고 있지요. 인도는 석유 소비량의 75%를 수입해 씁니다. 그래서 석유수입이 재정적자의 상당 부분을 차지해왔거든요. 저유가가 계속되면 올 연말까지 인도 정부는 서민•빈민들에게 주는 연료보조금을 25억 달러 줄일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경제제재에 유가 하락, 압박 받는 러시아


2000년대 들어 10년간 브릭스(BRICs)라 불리는 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은 고속성장을 이루며 신흥 경제대국들로 부상했습니다. 러시아와 브라질은 주로 가스와 석유 등 에너지를 수출해서 돈을 벌었고, 중국과 인도는 세계의 아웃소싱 기지가 돼 수출을 늘림으로써 성장했습니다. 저성장 시대가 오면서 브릭스의 ‘끗발’이 떨어졌다는 얘기가 나오지만, 실상은 브릭스 내에서도 분화가 이뤄졌다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중국과 인도가 저유가의 ‘수혜자’가 된 반면, 러시아와 브라질은 이익이 줄어들고 있으니까요.

저유가 시대


석유를 무기로 미국에 맞섰던 베네수엘라와 함께, 러시아는 국가 수입의 70%를 에너지 수출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영국 BBC방송에 따르면 러시아는 유가가 배럴당 1달러 떨어질 때마다 20억 달러씩 수입이 줄어든다고 합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지난 10월 러시아의 내년 경제성장률 전망을 0.5%로 낮췄습니다. 이전 전망치는 1.5%였는데, 우크라이나 사태 뒤 서방의 경제제재와 유가 하락이 맞물려서 하향 조정된 것이죠.

다만 러시아가 당장 흔들릴 것 같지는 않습니다. BBC는 “러시아는 심한 압박을 받고 있지만 간신히 균형을 맞춰나갈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러시아는 4540억 달러 규모의 여유자금을 쌓아두고 있어, 당분간은 유가 하락의 ‘쿠션(완충장치)’으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하네요.

OPEC ‘감산’ 논의 속 ‘버티는’ 사우디


중동 산유국들의 기상도는 엇갈립니다. 일부 산유국들은 예산 규모를 줄여야 할 형편입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유가 하락세가 지속되면서 사우디아라비아, 오만, 바레인, 아랍에미리트연합(UAE) 등이 재정 적자에 직면하게 됐다고 11월 25일 전했습니다. 이들 국가는 석유 수출 외에는 별다른 산업이나 수입원이 없지요. 에너지 자원을 팔아 벌어들인 돈으로 권위주의적인 왕정이 식량과 보조금 등을 지급해온 나라들입니다. 기름값이 낮은 상태가 이어지면 정부 수입이 줄고 주민들에게 베풀었던 ‘시혜’도 줄여야 합니다. 오만이나 바레인 같은 작은 나라들에서는 주민들이 누려온 혜택이 줄면서 ‘제2의 아랍의 봄’을 촉발시킬지 모른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군요.

석유수출국기구(OPEC) 내에서는 산유량을 줄여 기름값을 끌어올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컸지만 맏형 격인 사우디가 무산을 시켜버렸습니다. 사우디는 유가를 올렸다가 자칫 셰일 가스에 시장 지분을 빼앗길까 두려워합니다. OPEC은 회원국들의 산유량을 쿼터로 정해 마음대로 조정하지 못하게끔 규제하고 있습니다. 카타르나 쿠웨이트처럼 걸프 산유국들 중 예비자금이 충분한 나라들 역시 저유가 타격을 피해나갈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반면 이란은 발등에 불이 떨어졌습니다. 석유와 천연가스 매장량은 많지만, 서방의 제재 때문에 원유 수출량이 제한돼 있기 때문이지요. 이란과 서방측은 11월 24일을 시한으로 1년간 진행해온 핵 협상을 다시 7개월간 연장하기로 했습니다. 기름값에 발목 잡힌 이란은 향후 협상에 더욱 절박하게 매달릴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네요. 비잔 남다르 장가네 이란 석유장관은 26일 OPEC 각료회의 참석 차 빈을 찾았을 때 “모든 전문가들은 석유가 시장에 초과공급되고 있다고 본다”며 감산을 적극 주장했습니다. 베네수엘라와 멕시코도 산유량을 줄이자는 쪽이었습니다. 베네수엘라는 지난해 이미 재정적자가 국내총생산(GDP)의 17%에 이르렀거든요.

저유가 시대 이란



보조금 주던 수입국들엔 희소식 


연료보조금 때문에 재정 압박을 받는 나라의 정부들에게는 기름값이 싸지는 것만큼 반가운 일이 없습니다. 이집트는 재정의 6%를, 요르단은 4.5%를, 모로코와 튀니지는 3~4%를 연료보조금 지급에 쓰고 있습니다. IEA는 전 세계에서 연료보조금으로 나가는 돈이 저유가 덕에 연간 5500억 달러에서 4000억 달러로 감소할 것으로 봅니다.

그런데 과연 저유가가 세계 경제에는 어느 정도나 도움이 될까요?

경제전문지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기름값이 10% 떨어질 경우 세계 전체의 GDP가 0.2% 올라가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합니다. 유가가 낮아지면 당장 물가가 덜 오르지요. 특히 빈곤선 이하에서 생활하는 세계의 극빈층(보통 하루 1~2달러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가리킵니다)에겐 지출이 크게 줄어듦으로써 직접적인 혜택이 될 수 있습니다.

유가 하락은 에너지를 주로 수입해 쓰는 유럽이나 아시아 국가들에겐 희소식입니다. 그러나 상황이 그렇게 단순하지만은 않은 것이, 유럽은 2009년 세계를 휩쓴 금융위기의 여파에서 아직 회복되지 못한 데다 디플레 기운마저 감돌고 있습니다. 에너지 기업들의 주가가 떨어지면서 증시가 흔들리는 현상이 벌써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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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OPEC이 감산에 합의하는 데 실패했다고는 하지만, 이 기구에 소속된 나라들의 시장 점유율은 계속 줄고 있었습니다. 지난 7월 현재 OPEC 국가들이 세계 에너지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43%대 수준입니다. 감산-증산을 오가며 가격이 급변동하는 것을 막아주는 사우디의 ‘완충’ 능력이 떨어졌다는 것은 이라크전 이후 이미 지난 10여년 새 확인된 것이고요.


기름값= 소비량+'안보비용'

중동 석유에 직접 영향을 받는 건 아시아(한•중•일)쪽이고, 유럽과 미국은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크지는 않습니다. 미국은 원래 중동석유를 많이 쓰지 않았거든요. 그 대신, OPEC 회원국이긴 하지만 중동과 멀리 떨어져 있는 베네수엘라산 원유를 갖다 쓰거나 멕시코만 혹은 캐나다산을 주로 수입해왔습니다. 그런데도 미국이 중동 ‘석유 통제’에 힘쓴 것은 냉전 시기 유럽과 아시아(일본)의 안보 때문이었는데, 그것도 다 지나간 세기의 이야기인 듯합니다. 북해 유전 생산량이 늘어 유럽행 중동석유 비중이 거의 사라지다시피 한 지금에야...

기름 쓰는 공장생산이 줄어 기름값이 떨어진 것이지, 기름값이 떨어진 것만으로 세계 경제가 활성화될 수 있는 상황은 아닌 듯하다는 겁니다. 기름값이야 좀 떨어지겠지만, 그렇다고 갑자기 경제에 활활 불이 붙고, 세계적으로 물가가 내리고, 자동차가 더욱 더 씽씽 달리고(이건 환경적인 측면에서도 반길 일이 전혀 아니지요) 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어떤 이들은 유가가 배럴당 30달러 대까지 '자유낙하'할 것이라 예상하고, 또 어떤 이들은 그렇게 급락하지는 않을 것이라 내다봅니다. 과연 기름값은 어느 정도로까지 떨어질까요. 

섣불리 예측을 할 수는 없지만, 한 가지 말씀드릴 수 있는 게 있습니다. 유가는 단순히 소비량에 따라 결정되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기름값은 소비량에다 ‘안보 프리미엄’이 더해져서 결정됩니다.

유전지대를 장악하기 위한 리비아 정부와 반정부군의 싸움, 지지부진한 이란 핵 협상, 이라크와 시리아의 유전•정유시설들을 상당 부분 장악한 극단조직 이슬람국가(IS)의 세력 확대 같은 지정학적 불안요인들이 언제라도 유가를 다시 끌어올릴 수 있습니다. 미국 자산관리회사 얼라이언스번스타인의 에너지분석가 제러미 테일러는 비즈니스인사이더 27일자 기고에서 향후 몇 달 안에 사우디도 감산에 들어갈 가능성이 있다면서 “그렇게 되면 북해산 브렌트유 값도 덩달아 올라갈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다만 세계 경제 돌아가는 것과 미주 지역의 ‘대체 석유(즉 셰일가스)’ 생산량이 늘어나는 것 등이 맞물려 있기 때문에 당장 유가가 반등세로 가지는 않을 것으로들 내다 보네요. 이라크 산유량이 복구가 안 되고 이란 제재 해제 협상이 지지부진한데도 유가는 계속 떨어지고 있다는 게 이런 현실을 방증하는 것 같습니다. 


SK에너지블로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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