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년 톈안먼(天安門), 2014년 홍콩 센트럴.
25년만에 중국이 다시 시험대에 올랐다. 장소는 베이징에서 홍콩으로 바뀌었지만 주제는 똑같다. “중국의 민주주의는 가능한가”다. 베이징의 시위대는 탱크에 짓밟혔지만 홍콩의 시위대는 우산을 들고 최루가스에 맞서며 도심을 점령하고 있다. 홍콩 사태은 중국의 향후 행보를 가늠케할 잣대다.
톈안먼 vs 센트럴
홍콩 행정당국이 29일 강경진압 방침을 누그러뜨리자 도심 상업지구인 센트럴에는 더 많은 시민들이 몰려나와 거리를 메웠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중국이 톈안먼 사태 이래 가장 큰 도전을 맞았다”고 보도했다. “센트럴이 ‘톈안먼 2.0’이 될 것인가” 하는 보도도 나온다. 외신들은 25년전과 지금을 비교하며 같은 점과 다른 점을 분석한 기사들을 쏟아내고 있다.
Financial Times 카툰
톈안먼 때와 비교하면 시위 양상은 많은 게 다르다. 25년 전 중국은 냉전 말기의 위기감이 가득했던 극도의 폐쇄국가였다. 지금도 폐쇄적이기는 하지만 ‘G2 시대’ 양대 강국의 하나가 된 중국의 위상은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이 높다. 탱크 앞에 외롭게 나선 베이징의 학생들과 달리 이번 시위의 주역들은 어느 정도 언론 자유와 민주주의를 누려온 글로벌 도시 홍콩의 시민들이다. ‘센트럴을 점령하라’는 시위대의 슬로건 자체가 3년 전 미국 월가 시위를 모델로 삼고 있을 정도로 세계화됐다.
이번 시위대의 무기는 소셜미디어다. 홍콩 일간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29일 하루 동안 초당 12개씩 센트럴 시위에 대한 글이 올라왔다고 보도했다. 26~29일 나흘간 트위터에 올라온 시위 관련 글은 130만개가 넘었다. 홍콩 뿐아니라 여러 나라에서 홍콩 시위를 지지하는 캠페인이 벌어지고 있다.
중국 정부는 여전히 본토에 홍콩 시위가 알려지지 않게 하려고 통제하고 있다. 30일 신화넷(영어판)에 올라온 홍콩 관련 기사는 “불꽃놀이 행사가 취소됐다”, “홍콩 행정청도 불법시위에 반대하고 있다”는 것 정도였다. 그러나 톈안먼 때와 같은 통제가 가능할 것으로 보는 이들은 없다. 1989년 중국 정부는 미 CBS와 CNN 기자의 보도 송출을 아예 차단했지만 지금은 각국 취재진이 센트럴로 달려가 현장 소식을 전한다. 당국이 휴대전화 통신을 차단할 것이라는 소문이 돌자 시위대 사이에선 오프라인으로도 통신할 수 있는 ‘파이어챗’ 앱이 순식간에 퍼졌다.
선택지 많지 않은 중국
중국 정부의 대응도 과거와는 다르다. 세계적인 금융·상업도시 홍콩 복판에 탱크가 나타날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미국에 서버를 둔 중화권 매체 보쉰은 “렁춘잉 홍콩 행정장관이 무력진압 시나리오를 내놨으나 시진핑 국가주석이 일축했다”고 보도했다.
물론 중국이 시위대와의 협상에 나올 가능성은 크지 않다. 시 주석이 선택할 수 있는 카드도 많지 않다. 중국은 신장위구르나 티베트 소수민족의 시위가 벌어지면 일단 강경진압한 뒤 소요의 원인이 된 불평등을 줄이기 위한 조치를 실시하고 예산을 지원하는 패턴을 보였다. ‘총, 그 다음엔 돈’으로 변화 요구를 누그러뜨리는 식이었다. 그러나 홍콩은 중국에서 가장 부유한 지역이고, 본토에서와 같은 전략을 적용하기 힘들다. 강경진압을 할 수도, 그렇다고 경제적 당근으로 달랠 수도 없다는 게 중국 정부의 고민이다.
뉴욕타임스는 “홍콩의 시위를 멈추게 할 중국의 수단은 제한적”이라며 소소한 타협책으로는 센트럴의 시민들을 해산시키기 힘들 것으로 내다봤다. 미 스탠퍼드대 후버연구소의 래리 다이아몬드는 평화롭게 갈등을 조율해본 경험과 전략이 없는 중국 지도부의 구조적인 문제를 지적했다. 그는 뉴욕타임스에 “시 주석은 협상을 하기 어려울 것이다. 굴복하는 순간 (권력이) 약해질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In this June 5, 1989 photo, a Chinese man stands alone to block a line of tanks heading east on Beijing‘s Changan Blvd. from Tiananmen Square.(Photo: Jeff Widener, AP)
Twitter _ @HKFS1958 學聯 HKFS on Twitter: “Credits to BBC World News #hkclassboycott http://t.co/Yu63ZkEE7u”
‘마오쩌둥 이래 가장 막강한 중국 지도자’라 불리는 시 주석은 위구르 테러용의자를 집단처형하는 등 사회적 불안요인을 강력하게 억눌러왔다. 강한 지도자임을 부각시켜온 시 주석의 정치스타일이 홍콩 사태를 악화시킨 요인이기도 했다.
이번 시위의 시발이 된 것은 중국 당국이 2017년 홍콩 행정장관 직선 때 후보를 ‘걸러낼’ 수 있게 한 조치였다. 아직 홍콩 시민들은 중국 중앙정부보다는 시위를 강경 진압하려 했던 홍콩 지도부에 분노를 한정시키고 있다. 그러나 사태가 조기에 진정되지 않으면 민주주의 비전에 대한 요구로 확대될 수도 있다.
중-서방 간 새로운 불씨로
몇몇 외신들은 중국 정부가 홍콩 행정장관 교체 같은 타협책을 내놓을 수도 있을 것으로 내다본다. 그러나 이런 조치만으로 시민들의 요구가 진정될 지는 알 수 없다. 또한 중국은 시위가 격화되는 와중에도 시민들과 대화하려 하기보다는 이번 사태를 ‘서방의 음모’로 몰아가며 변화를 거부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29일 인민일보에는 홍콩 시위대가 ‘영국과 미국의 반중국 세력’의 지원을 받고 있다는 논평이 실렸다.
상황이 악화되면 중국 정부가 결국 무력 진압을 할 수도 있다고 내다보는 이들도 있다. 이번 사건에 유화적으로 대응할 경우 향후 대만과의 통일 과정에서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것도 중국을 고심케 만드는 요인이다.
서방과의 외교마찰 조짐도 있다. 8월 말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가 홍콩 행정장관 선출안을 확정한 뒤 영국의 마지막 홍콩 총독을 지낸 크리스 패튼은 “홍콩 체제가 지속되게 보장해준다던 약속을 깨뜨린 것”이라 비난했고, 이는 곧바로 중국의 반발을 불렀다. 닉 클레그 영국 부총리는 29일 트위터에 “홍콩 시위대를 지지한다”는 글을 올렸다. 영국 외교부도 “홍콩 주민들이 권리를 행사할 수 있어야 한다”는 성명을 냈다. 미 백악관도 홍콩의 보통선거를 지지한다며 “시위 진압을 자제하라”고 촉구했다.
그러자 화춘잉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홍콩은 ‘중국의 홍콩’이며 홍콩 문제는 우리의 내부 문제다. 중국의 내정에 간섭하려는 어떤 나라의 어떤 방법에도 결연히 반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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