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사람들의 책이라면 조금은 읽어보았는데 후지타 쇼조(이전 책의 표기는 후지따 쇼오조오였는데;;)의 글은 압권이다.
이번 책은 <정신사적 고찰>(조성은 옮김. 돌베개). 이전에 읽은 <전체주의의 시대경험>도 그렇지만, '정신사적 고찰'이라니... 이리도 무거울 수가 없다. 하지만 참아내야 하는, 기꺼이 껴안아야 하는 무거움이다.
'텐노' 마루야마 마사오의 적자라고 하는 후지타는 '학자'가 아니라 '사상가'로 불린다. 글은 신랄한데 저널리스트들의 흔한 글쓰기와는 격이 다른 깊이가 있다.
책의 첫머리는 '골목에서 사라진 술래잡기'에 대한 분석으로 시작된다. 술래잡기에 대해 뭘 이리도 거창하게 해석했어, 라고 생각하며 책장을 넘기다 보면 '술래잡기에도 이런 구조와 철학과 과 구조가 있거늘 우리는 어느 새 잃어버렸다' 하는 진지한 자각이 자리를 잡는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맛뵈기. 여기저기에 썼던 후지타의 글들을 묶었는데 고대부터 현대까지를 오가는 일본 정신사 해설이 기가 막히게 재미있다. 앞쪽부터 쭉 읽다보면 헤이안시대의 문학에서 출발해 막부 말기와 탈아입구의 시기, 정신사적 혁명을 겪는 전후 일본, 이런 정신적 혁명마저 실패로 돌아간 대량생산-소비 시기에 대한 생각 등 일본 시대정신의 역사를 훑을 수 있다. 마지막 글 '신품문화'는 <전체주의의 시대경험>에서 인상깊게 읽었는데 여기에도 있어서 모처럼 다시 읽었다.
이탈 정신
"우리는 공무원이지 군인이 아니다. 따라서 전쟁에 참가할 수 없다." 해상보안청의 소해정 승무원들이 전장에서 이렇게 결의하며 단호하게 전선을 이탈한 일이 있었다고 한다. 한 달쯤 전인가 텔레비전의 제1채널에 비춰진 '한국전쟁비사'라는 기록이 그 사실을 전해주었다.
1950년 10월의 일이었다. 미군은 38선보다 훨씬 북쪽인 원산에 상륙하기 위해 그 주변 해역의 기뢰를 치우고자 일본의 소해정을 동원했던 것이다. 이를 계획한 것은 물론 맥아더 등이었으나 그 계획에 응한 건 요시다 시게루와 초대 해상보안청 장관 오쿠보 다케오였다. 일본 소해정 한 척이 기뢰에 닿아 폭침당했고 한 사람이 죽었다. 이를 계기로 노세타이라는 한 부대가 현장에서 회의를 열었다. 글의 첫머리에 인용한 문구는 그때의 발언이다. 그것은 사실상 전선 이탈 선언이었다. 현지의 미군 사령관은 격노해 날뛰었으나 노세타이는 태연히 그에 항거해 한 부대만이 홀연히 귀국하였고 귀국 후 부대장은 직위해제되었다는 것이었다.
아마도 노세타이 부대원 중에는 옛 해군 군인들이 다수 속해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전후에도 생활수단 삼아 위험을 수반하는 소해정을 타고 있었던 점으로 추측해 보면, 그 생활 문제의 어려움은 차치하더라도 구 해군의 사고방식에 대해 지극히 비판적인 지점에 서 있던 사람들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다. 점령군이나 일본 당국도 다소 그 점을 감안해 명령을 내렸을 것이다. 그런 사람들로부터 단호하게 문민 선언이 나온 것이다. 전후 5년간의 격동 속에서 호기득된 역사적 경험이 무의식 중에 그들의 정신적 신체 속에 그 선언을 마련해 두었음에 틀림없다. 사실 '공무원'이라는 단어만 해도 전전 일본에는 없었다. 하물며 위로부터의 명령을 거부하며 적극적으로 전선 이탈을 주장할 수 있게 하는 '공무원' 개념은 5년 전까지는 상상하기조차 불가능했을 터였다. 전후 일본의 정신 혁명은 이렇게 비교적 '보수적'인 사람들이 어쩔 수 없이 결단을 요구받은 바로 그때 스스로 입에 담은 한마디 속에서, 작지만 그러나 속 깊은 결정물을 남몰래 표출하고 있던 것이다.
그리하여 진정한 정신적 용기란, 그것이 정신인 이상, 조직적 전투 행위에 가담하여 다른 사람보다 더 용감함을 보이는 경우보다는 오히려 단체 권력의 압박과 다수를 등에 업은 편승적 비난에 항거해 과감하게 그로부터 이탈할 결심을 하는 경우에야말로 종종 나타나는 것이다. 고대 이래의 역사 속에서 이미 그 정신적 용기는 '스토아적 퇴각'이라 불렸고, 혹은 '에피쿠로스적 철퇴'라고 명명되었는가 하면, '세계의 단념'이라 일컬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그렇게 불렸던 사람들이야말로 타락한 폴리스로부터 엄격하게 이탈함으로써 인간에게 생각하는 일의 의미, '철학'을 가르쳐 주었다. 우리는 필요하다면 언제든, 어떠한 단체로부터든 이탈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럴 때야말로 그 단체는 비난, 중상, 매도와 같은 언론적 표면에서가 아니라 말 그대로 온몸으로 행하는 비판 앞에 드러나는 것이며, 거기서 비롯되는 단체의 위기에 대한 자각을 통해서만 단체 구성의 방식을 안에서부터 바꿀 수 있게 될 것이다.
예를 들어 우리가 국가로부터 이탈한다고 해도, 그것은 우리가 일본인이기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반대로 단체 의식이 과잉된 일본을 바로잡아 공평한 감각을 갖춘 일본으로 바꾸어 가는 방향으로 이어질 것이다. 그 외의 정치단체네 문화단체에 대해서든, 직장이든 지역체든 사정은 같다. 이탈 정신을 포함하지 않는 단순한 '참가'주의는 '익찬'이라는 이름으로 대표되는 좌우대소의 갖가지 추수주의를 낳는다. 이는 이미 역사가 통렬하게 가르치고 있는 점이다.
분리와 결합, 이탈과 소속 등의 변증법은 바로 그런 것이다. 민족 문제에 대해서든 조직에 대해서든 이 진리는 변함이 없다. 그리고 그 진리의 실현태를 밑받침하는 정신적 기초의 열쇠는 다름 아닌 이탈 정신의 존부에 있는 것이다. 이상적으로 말하자면, 전 구성원들의 탈출과 망명 가능성이 항상 고려될 때에야 비로소 국가를 포함한 모든 조직 단체는 건강할 수 있다.
이미 세상을 떠난 이 사상가의 글은 통렬하고 장엄하고 또 우미하다. 후지타 선집이 국내에 출간된다면 꼭! 갖고 싶지만, 과연 그런 날이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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