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브릭스, 껄끄럽네....

지난 2월, 총선을 앞두고 캠페인이 한창이던 인도에서는 우파 야당인 국민당(BJP) 지도자 나렌드라 모디의 연설을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TV로 시청하는 모습을 담은 사진이 돌았다. 모디의 지지자들이 만들어 인터넷에 올린 합성 사진이었다. 

　

사진에는 “오바마도 모디의 말에 귀기울인다”는 설명이 붙어 있었지만, 현실은 이와는 거리가 멀다. 거대 신흥국 중 전통적으로 미국과 맹방이었던 인도가 워싱턴의 영향력에서 점차 벗어나고 있는 것이다. 인도 외교관 체포사건으로 촉발된 두 나라의 외교전은 인도 주재 미국 대사의 사임까지 불렀다. 다음달 끝나는 인도 총선에서 힌두극우주의자인 모디가 집권하면 관계가 더 나빠질 것은 뻔하다. 인도의 차기 총리로 유력시되는 모디는 “유엔 회의 때문에 뉴욕에 가는 일을 빼면 따로 미국에 갈 일은 없을 것”이라 말하기도 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인도 차기 총리 유력후보 나렌드라 모디의 연설을 지켜보는 모습. 인도의 모디 지지자들이 만든 합성사진이다. 사진 BBC방송

인도뿐 아니라 브라질·러시아·중국 등 브릭스(BRICs) 국가들과 미국의 사이가 계속 벌어지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재집권한 이래 줄곧 사이가 나빴던 러시아나 잠재적 경쟁상대인 중국과의 관계는 논외로 하더라도, 중남미와 아시아의 신흥 강국인 인도·브라질과도 눈에 띄게 틈이 벌어졌다.

　

브라질의 룰라 다 실바 전대통령 시절만 해도 오바마 정부와 브라질의 관계는 괜찮았으나, 지난해 급속 악화됐다. 에드워드 스노든의 폭로로 미 국가안보국(NSA)이 브라질 국영석유회사를 상대로 스파이짓을 하고 지우마 호세프 대통령과 남미 정상들 간 통화까지 도청한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올들어 베네수엘라에서 반정부 시위가 격해졌는데, 미국이 미주기구 등을 통해 남미의 일에 개입하려 하고 베네수엘라 좌파 정권을 연신 비난한 것도 역내 중심축인 브라질과의 관계가 껄끄러워지는 원인이 됐다.

　

브릭스와 미국 사이가 벌어진 데에는 스노든 폭로나 외교관 체포 같은 단발성 악재들이 계기가 됐지만 국제정세의 구조적인 변화가 물밑에 깔려 있다. 시리아 내전과 우크라이나 사태는 미국이 세계를 관리하는 유일강국으로서의 역할을 할 의지도 돈도 힘도 없다는 것을 보여줬다. 브릭스 국가들은 이제 미국 눈치를 보기보다는 각자 주변지역의 역학관계 속에서 영향권을 넓히는 데 집중하고 있다.

　

인도 전문가인 파이낸셜타임스의 에드워드 루스는 21일자 칼럼에서 “세계는 점점 미국이 힘이 약해지는 것에 적응하고 있다”며 “미국이 재정난 속에서 점점 더 국내 문제로 파고들어가는 한, 브릭스 국가들은 미국이 아닌 자기들끼리의 협력을 강화하려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