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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 수도 바그다드에 사는 열 세살 소년 모하메드 칼라프는 벌써 석달째 제대로 먹지도 잠들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고통스런 나날을 보내고 있다. 여느 아이들처럼 학교가 파하면 동네 꼬마들과 뛰어놀던 모하메드가 극심한 정신적 상처를 받고 우울증에 빠져 퇴행현상을 보이게 된 것은 지난 7월부터다.
7월13일, 바그다드 시내 알 제디다에 있는 집 주변에서 친구들과 축구를 하며 놀던 모하메드는 미군 차량이 지나가자 초컬릿을 얻기 위해 동생과 함께 뛰어갔다. 그 순간 미군을 노린 폭탄테러가 일어났다.
좁은 골목길에서 일어난 폭발은 어린이 28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모하메드는 눈 앞에서 동상 아흐메드의 몸이 두 동강 나는 것을 지켜봤다. 모하메드 가족의 삶은 그 뒤로 풍지박산났다. 모하메드는 석달째 몸져 누워있고, 아버지 알리는 한 아들을 잃은 슬픔에 잠길 틈도 없이 살아남은 아들을 24시간 곁에서 지켜야 하는 처지가 됐다.
알리는 "악몽에 시달리는 모하메드에게 동생의 죽음을 어떻게 설명해야할지 모르겠다"며 "아들이 공포를 떨쳐내게 하는 것은 내겐 너무나 무겁고 힘든 짐"이라고 말했다. 모하메드는 집 안에 틀어박힌 채 축구복을 입은 동생의 사진만 바라보고 있고, 미군 순찰차량 소리가 나면 반사적으로 두려움에 떨며 숨는다.
"테러범들을 상대로 내가 뭘 할수 있겠는가."
아들을 바라보는 알리의 마음은 찢어지지만 도움을 줄 수조차 없다.
7월13일, 바그다드 시내 알 제디다에 있는 집 주변에서 친구들과 축구를 하며 놀던 모하메드는 미군 차량이 지나가자 초컬릿을 얻기 위해 동생과 함께 뛰어갔다. 그 순간 미군을 노린 폭탄테러가 일어났다.
좁은 골목길에서 일어난 폭발은 어린이 28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모하메드는 눈 앞에서 동상 아흐메드의 몸이 두 동강 나는 것을 지켜봤다. 모하메드 가족의 삶은 그 뒤로 풍지박산났다. 모하메드는 석달째 몸져 누워있고, 아버지 알리는 한 아들을 잃은 슬픔에 잠길 틈도 없이 살아남은 아들을 24시간 곁에서 지켜야 하는 처지가 됐다.
알리는 "악몽에 시달리는 모하메드에게 동생의 죽음을 어떻게 설명해야할지 모르겠다"며 "아들이 공포를 떨쳐내게 하는 것은 내겐 너무나 무겁고 힘든 짐"이라고 말했다. 모하메드는 집 안에 틀어박힌 채 축구복을 입은 동생의 사진만 바라보고 있고, 미군 순찰차량 소리가 나면 반사적으로 두려움에 떨며 숨는다.
"테러범들을 상대로 내가 뭘 할수 있겠는가."
아들을 바라보는 알리의 마음은 찢어지지만 도움을 줄 수조차 없다.
미국 로스앤젤레스(LA)타임스가 24일(현지시간) 전한 모하메드의 비극은 이라크 아이들 대부분이 겪고 있는 고통의 한 단면일 뿐이다. 미군 점령과 공습, 폭탄테러와 종교 갈등은 골목에서건 학교에서건 아이들을 짓누르는 끔찍한 현실이 됐다. 테러와 총격전을 큰 눈으로 생생히 지켜본 아이들은 공놀이 대신 전쟁 흉내를 내고, 우정 대신 종파갈등을 배운다.
모하메드 가족과 한동네에 사는 파우지 사히는 "이런 시절에는 부모 노릇을 하는 것도 힘들다"고 말한다. 시아파 거주지역에 산다는 죄로 사히는 7월 테러 때 17살 큰 아들을 잃었다. 둘째 아들은 오른손이 잘려나갔지만 치료비가 없어 집에 누워만 있다. 모하메드의 아버지와 사히는 젊은 시절 이란과의 전쟁이라는 비상상황을 견뎌냈고 1990년대 유엔의 10년에 걸친 경제제재 속에서도 삶을 유지해왔지만 그 어느 때보다 지금이 고통스럽다고 말한다.
중산층이 많이 거주해온 카라다 지역의 알 후다 중학교. 나지하 하디 교장은 32년 교직 생활 동안 경험해보지 못했던 상황을 지금 겪고 있다. 어린 여중생들은 서로들 이슬람 수니파인지 시아파인지를 묻고, 종파에 따라 친구가 갈린다. 폭력사태는 아니었지만 종파 때문에 여학생들이 싸움을 벌이는 일이 종종 있다.
60세의 노교사는 "지금껏 이런 일은 겪어보지 못했다"며 "아이들이 종파를 얘기하는 것은 극히 최근의 일"이라고 말한다. 하디 교장이 학교 2층 사무실에서 LA타임스와 인터뷰하는 동안, 교실에서부터 싸우는 소리가 복도로 터져나왔다. 화학교사 수아드 마키야 선생은 "수업시간에도 아이들은 종파에 따라 갈라져 말싸움을 벌인다"며 "이 아이들을 볼 때마다 희망 대신 절망을 느낀다"고 털어놨다.
주하이에는 시아파 서민 거주지역인 사드르시티, 즉 바그다드의 구시가지에 살면서 네 아이를 키웠다. 그러나 그녀의 15세 딸은 8월31일 알 카디미야 모스크 주변에서 벌어진 압사사고로 숨졌다. 수니파의 폭탄테러가 벌어진다는 소문에 순례객이 우르르 도망치면서 1000명 가까운 이들이 압사-추락사한 그날 딸을 잃은 것이다.
어린 아이들 셋을 끌고 도망치느라 큰 딸을 챙기지 못했던 죄책감은 주하이에의 가슴을 옥죄고 있다. 그녀는 "그렇게 죽는 것이 딸의 운명이었나보다"라면서 체념했지만 남은 아이들은 누나의 죽음을 이해하지 못한다. 10살난 메흐디는 사고 당시 정신을 잃어 상황을 기억하지 못하는데도 밤이면 악몽에 시달린다.
"아이들은 다른 아이들을 두려워하고, 관계를 두려워한다. 이 세대가 자라나면 어떤 사회가 될 것인가. 이 아이들은 저주받은 세대가 될 것이다."
심리학자 수아트 모하메드는 "이라크의 어린이들에게 `어린 시절'은 없다"고 말한다. LA타임스는 전쟁과 점령, 테러와 분쟁이 다른 누구보다 어린이들의 삶을 비참하게 만들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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