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계단밑이나 엘리베이터 옆에 더러운 매트리스를 깔고 지직거리는 고물라디오 소리를 들으며 잠을 잔다. 닳아빠진 옷에 너덜너덜한 터번을 쓰고 아무런 희망도 없이 뒷골목을 떠도는 이들은 이집트판 카스트제도의 하층민들이다."
미국 로스앤젤레스(LA)타임스가 24일(현지시간) 이집트 특유의 `보와브'에 대해 소개하는 기사를 실었다. 카이로 곳곳의 맨션이나 외국인주택에는 `보와브'라고 불리는 문지기들이 있다. 이들은 집주인의 잔심부름을 하면서 비밀경찰에는 주인집 동향을 전하는 스파이 노릇을 한다.
"카이로 시민들은 보와브들에게 오며가며 돈 몇푼 집어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알고 있다. 당신이 보지 않을 때에도 보와브는 당신을 보고 있다. 그의 눈은 속일 수 없다."
카이로 아메리카대학의 로버트 윌리엄스 교수는 LA타임스 인터뷰에서 "처음엔 보와브가 내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는 것을 견딜 수가 없었다"면서 "하지만 보와브에게 적응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걸 곧 깨달았다"고 말한다. 보와브에게 적응하는 것이 곧 카이로 생활에 적응하는 것이란 얘기다. 카이로에 몇년 거주한 어느 분으로부터 보와브들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보와브는 새벽 3시면 일어나 라디오로 코란을 듣는다. 그리고는 덜컹거리며 세차를 하면서 자신이 깨었음을 알린다고. 주인이 월급(보통 5달러에도 못 미치는)을 주는 것을 깜빡 잊으면, 보와브는 신문에 흙을 묻히거나 현관을 더럽혀놓는 것으로 `시위'를 한다. "카이로의 외국인들은 보와브가 `주인'을 조종하는데에 기가막힌 기술을 갖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미국언론의 편파적인 시각이라고 보기엔, 너무나 사실적인 묘사인 것 같기도 하다.
보와브는 `다목적 하인'이기도 하다고. 짐을 꾸리고 장을 보고 우편물을 배달한다. 한번 보와브가 되면 자기 시간을 갖기가 힘들다. 밤에도 문간에서 선잠을 자야 하고 아무때건 주인이 부르면 일어나야 한다. 이것이 21세기의 일인가, 싶기도 하지만.
그런가하면 보와브의 존재는 이집트에서는 비밀경찰의 감시에서 벗어날 수없음을 시민들에게 상기시키는 역할도 한다. 보와브들은 비밀경찰의 정보원 노릇을 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도, 숨기지도 않는다. 요사이는 `보안관리원'같은 모호한 호칭으로 불리기도 하지만 그들은 전통적인 카이로 사회의 하층민이자 독재정치의 그림자같은 존재들인 셈인데. `야쿠브의 건물'이라는 이집트 소설은 보와브의 아들이란 이유로 경찰대학에서 쫓겨난 뒤 결국 테러리스트가 되는 청년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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