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림반도를 장악하고 우크라이나의 친서방 정부를 압박해온 러시아가 국제기구 ‘조사단’을 설치하고 연락 채널을 만드는 데 동의했다. 일촉즉발의 긴장으로 치닫던 우크라이나 상황이 전기를 맞을지 주목된다.
독일 정부는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2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전화통화를 해 우크라이나 사태를 논의할 긴급 채널을 열어두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크렘린도 “우크라이나의 사회·정치적 상황을 정상화하기 위한 쌍방간·다자간 협의체”의 필요성을 언급한 성명을 냈다. AFP통신 등은 푸틴이 메르켈의 제안을 받아들여, 우크라이나 시위와 유혈사태 등을 조사할 국제조사단을 만드는 데 동의했다고 전했다.
푸틴을 상대할 서방권의 유일한 인물은 오바마가 아닌 메르켈.
유럽연합(EU) 외교장관들은 3일 러시아의 크림반도 점령을 풀게 하기 위해 긴급회의를 열었다. 독일과 프랑스, 영국 외교장관은 유럽안보협력기구(OSCE)를 통한 진상조사와 중재 쪽으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전해졌다. 유럽안보협력기구는 미국과 러시아를 비롯해 유럽·미주·중앙아시아 57개국이 가입된 기구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도 이날 스위스 제네바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이번 사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도록 모든 당사자들과 대화하고 있다”며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당국이 직접 대화에 나서게끔 모든 외교적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서방은 크림반도 문제를 놓고 연일 러시아를 압박하고 있다. 미국과 영국·프랑스는 오는 6월 러시아 소치에서 열리는 주요 8개국(G8) 정상회의 참석을 유보한다고 밝혔다.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28개 회원국도 우크라이나 사태를 논의했으나 러시아에 “병력을 철수시키라”고 촉구한 것 외에는 어떤 행동계획도 내놓지 못했다.
4일 우크라이나 키예프를 방문하는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은 NBC방송 인터뷰에서 러시아의 크림반도 장악을 침략으로 규정하고 러시아와의 교역 중단과 러시아 해외자산 동결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제재’를 경고했다. 하지만 군사옵션도 검토하느냐는 질문에는 “국제관계에서의 정상적인 절차를 통한 평화적 해법을 바란다”며 사실상 가능성을 배제했다. ‘신냉전’을 거론한 언론보도에 대해서도 “이번 사건은 민주주의를 바라는 우크라이나 국민들의 문제”라며 선을 그었다. 미국은 러시아가 대화의 창구를 닫지 않았다는 데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정부와 언론은 크림반도 상황을 러시아의 침공이라 부르며 격앙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알렉산드르 투르치노프 임시대통령은 “러시아군은 크림반도에서 우리 군에 무장해제와 철수를 요구하는 ‘최후통첩’을 해왔다”고 말했고, 우크라이나 국경수비대는 크림 반도에 러시아 병력이 추가 배치됐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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