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신흥시장 테이퍼링 충격과 미국 연준의 ‘역할론’
아르헨티나, 터키 등 신흥국 환율이 요동을 치면서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 Fed)에 새로운 숙제가 떨어졌다. 양적완화 축소(테이퍼링)를 통해 회복세에 접어든 미국 경제를 ‘정상화’하는 것과 함께, 신흥국 위기가 확산되지 않도록 조절하는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연초부터 세계의 눈길이 연준을 향하고 있다. 하지만 이 두 가지 과제는 연준에 상반된 대응을 주문하는 것이기도 하다. 연준은 일단 신흥국 위기에 관심을 쏟기보다는 지난해 결정된 대로 돈풀기를 중단하는 쪽으로 향하는 듯하다.
경제분석가들은 연준이 신흥국의 이상 동향에도 올해 내내 테이퍼링을 계속할 것으로 보고 있다. 28~29일 열린 벤 버냉키 의장 체제의 마지막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채권매입을 추가로 100억달러 규모 줄이기로 한 것이 연준의 이런 견해를 잘 보여준다. 연준은 올해 단계적으로 채권매입을 축소해 통화량을 줄이기로 방침을 정했다.
“신흥국 불안, 내부 문제” 미국 경제 ‘정상화’ 무게
연준이 테이퍼링을 계속하려는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재닛 옐런 체제’에서 연준과 FOMC의 멤버 구성이 좀 더 ‘매파적’으로 바뀐다는 것도 있지만, 세계경제와 신흥국 환율변동을 바라보는 연준의 기본 인식이 더 중요하다. 신흥국 화폐가치가 떨어진 주된 원인은 미국이 달러를 거둬들이기 시작해서가 아니라, 그 나라들의 내부 문제 탓이라고 연준은 보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아르헨티나와 터키 모두 정치 불안 때문에 경제가 흔들리고 있다는 게 연준의 견해”라고 전했다. 경제전문지 이코노미스트도 신흥국 위기를 ‘경제보다는 정치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미국 경제는 회복세에 들어섰고, 실업률이 떨어지고 있다. 따라서 연준은 지난해 내린 테이퍼링 판단을 바꿀 만한 경제적 요인이 아직은 없다고 보고 있다. 인플레이션을 잡고 미국 경제를 건전화하는 것이 더 먼저이며, 지금이 바로 돈을 거둬들여야 할 때라고 본다. CNBC 등 미국 언론들은 “미국의 연준이 신흥국 시장을 흔드는 게 아니다”라며 연준이 미국 경제에만 집중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반면 신흥국 위기가 ‘멜트다운(붕괴)’까지 가지 않도록 하려면 연준이 더 큰 역할을 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포브스미디어 회장이자 경제잡지 포브스 편집주간인 스티브 포브스는 지난 26일 칼럼에서 연준과 국제통화기금(IMF), 유럽중앙은행(ECB), 영국·일본 중앙은행이 신흥국 중앙은행들과 협력을 강화해 이번 사태가 1997~1998년의 아시아 외환위기처럼 되지 않도록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환율위기 조짐이 일고 있는데 신흥국 중앙은행들은 어떤 식으로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할지 모르고 있으니, 이럴 때 연준과 국제기구들이 나서서 도와야 한다는 것이다.
“유럽 디플레이션 위협 속 신흥국 문제 중요성 커져” 위기 관리 주문도 여전
환율변동이 위기로 치닫지 않게 하려면 신흥국 중앙은행은 금리를 올리고 화폐를 매입해 적극적인 방어에 나서야 한다. 거둬들인 화폐를 곧바로 다시 시중에 푸는 실수를 범하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올 들어 환율 급락 뒤 신흥국의 대응은 효과적이지 못했다. 아르헨티나 중앙은행은 사실상 대처를 포기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터키 중앙은행도 지난주 30억달러 규모의 리라화를 거둬들였지만 화폐가치 하락을 막지 못했다. 금리를 좀 더 올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으나 에르뎀 바슈치 중앙은행장은 그대로 동결시켜 환율위기를 자초한 측면이 있었다. 올 대선과 내년 총선을 앞두고 있는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총리는 “이자를 매기는 것은 이슬람 가치에 반한다”고 주장해왔다. 에르도안이 임명한 바슈치 중앙은행장이 총리 눈치를 보느라 결정을 못한 것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결국 바슈치는 28일 금리인상을 결정했으나, 에르도안은 계속 “금리인상에 반대한다”고 밝히는 등 불협화음이 가시지 않았다.
IMF의 수석경제학자를 지낸 사이먼 존슨은 월스트리트저널 인터뷰에서 “신흥국 문제는 이전보다 더 중요해졌다”고 지적했다. 2008~2009년 미국과 유럽을 휩쓴 경제위기 속에서도 세계경제가 무너지지 않았던 것은 신흥국들의 성장이 쿠션 역할을 해준 덕분이었다. 미국은 간신히 회복되고 있지만 유럽은 디플레이션 위험을 안고 있다. 지우마 호세프 브라질 대통령은 지난 25일 “선진국들의 통화 축소가 시장의 불안에 기름을 부었다”고 말했고, 알렉산드르 톰비니 브라질 중앙은행장도 “느슨한 통화정책을 끝내면서 (선진국과 신흥국들이) 조화로운 탈출구를 모색해야 한다”는 성명을 냈다. 선진국이 돈줄을 죄면서 신흥국에 미칠 파장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았다는 우회적인 비판이었다.
시장 불안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든, 새로운 혼란이 세계경제의 발목을 잡지 않도록 연준을 비롯한 선진국 중앙은행들과 국제기구가 유기적으로 대처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미국 연준은 어떻게 움직이나
ㆍ워싱턴·지방, 통제·견제하며 통화정책 결정
미국 연방준비제도 의장이 ‘세계 경제 대통령’으로 불리는 이유는 간단하다. 미국이 기축통화인 달러를 발행하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경제력이 예전같지 않고 위상이 떨어졌다 해도 여전히 연준의 일거수일투족은 세계의 관심사다. 하지만 연준의 의사결정구조는 다른 나라 중앙은행들과 사뭇 다르다. 출발점부터 외국의 중앙은행과는 달랐던 탓이다.
미국에서는 18~19세기 두 차례 중앙은행이 등장했으나 곧 사라졌다. 특유의 연방제도 속에서 각 주정부들의 목소리가 컸던 탓도 있고, 20세기 초반 시장지상주의가 휩쓴 탓도 있었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손’에 모든 것을 내맡긴다는 시장주의는 1907년 뉴욕 예금 인출 사태로 허점을 노출했다. 금융 혼란이 닥쳤는데, 중앙은행이 없다 보니 민간기업인 JP모건이 소방수 역할을 떠맡아야 했던 것이다. 이후 1913년 연방제도준비법이 통과됐고, 현재와 같은 연준의 틀이 만들어졌다.
의장의 영향력이 크다고는 하지만 연준 시스템은 실제로는 분권화돼 있다. 7명의 이사들로 이뤄진 연준 이사회(FRB)와 12개의 지역 연방준비은행, 지역 연은 산하의 민간 회원은행들로 이뤄진 3중 구조다. 연준 이사들은 대통령이 지명하고 상원이 인준한다. 지역 연은의 은행장은 자체 이사회에서 선출하는데, 지역 연은의 이사회는 산하 민간 회원은행들이 선출한 이사 6명과 워싱턴의 이사회가 선정한 이사 3명으로 구성된다. 워싱턴은 지역을 통제하고, 지역은 워싱턴을 견제하는 구조다.
연준이 정하는 지급준비율에 따라 각 은행들은 자금을 비축해놔야 하기 때문에 다른 은행들과 매일 돈 거래를 한다. 지급준비금 부족분을 메우는 하루 단위의 초단기 대출인 ‘오버나이트 거래’의 대출금리를 연방기금 금리라 부른다. 말하자면 연방기금은 한국의 콜시장과 같은 은행간 자금시장이다. 이 연방기금 금리를 결정하는 곳은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다. 지역 민간 회원은행들은 지역 연은에 경제상황을 보고하고, 지역 연은은 이를 워싱턴의 연준에 보고한다. 연준은 매년 8회 이상 FOMC를 소집해 각 지역에서 올라온 통계를 바탕으로 연방기금 금리를 결정한다. 따라서 FOMC야말로 연준의 의사결정이 이뤄지는 기구라 할 수 있다.
FOMC는 연준 이사 7명과 ‘뉴욕 은행장을 포함한 지역은행장 5명’으로 구성된다. 연준 의장은 FOMC 의장을 겸임하며, 뉴욕은행장이 부의장을 맡는다. 12개 지역 연은 가운데 뉴욕 연은의 자산비율이 압도적이기 때문이다. 버락 오바마 정부 1기의 재무장관을 맡았던 티머시 가이트너도 뉴욕은행장 출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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