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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쟁과 석유, 남수단이라는 나라

딸기21 2013. 12. 24. 15:30

아프리카 동쪽에 있는 남수단에서 분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정부군과 반정부군 모두 민간인들을 구분 없이 공격해 ‘학살’이 벌어지고 있다는 소식입니다. 600명 이상 숨졌다고 한 것이 며칠 전 상황이고, 지금은 인명피해가 어느 정도인지 집계조차 되지 않습니다.



21일에는 미국민들을 대피시키기 위해 파병된 미국 군용기가 반정부군의 공격을 받는 일도 있었습니다. 그 전에는 평화유지군으로 파견돼 있던 인도군 병사 3명이 반정부군의 공격에 사망했습니다. 미군은 현지 체류중인 자국민 300여명을 구출하는 데 실패해 다시 군사행동을 시도하려 하는 모양입니다. 워싱턴포스트는 미군의 ‘작전’이 임박했다면서, 해병대원 150여명이 인근 지부티에 도착해 미국민 구출작전에 투입될 준비를 하고 있다고 23일 보도했습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각국에 평화유지군 증파를 요청했습니다. 유엔은 남수단과 이웃한 북쪽 수단의 다르푸르 일대를 비롯해 국경지대 쪽에 약 2만명의 평화유지군을 두고 있습니다. 그런데 상황이 심각해지고 일촉즉발 내전 위기가 고조되면서 추가 파병을 준비하고 있는 겁니다. 이제 남수단 문제는 '국제사회 개입' 쪽으로 향하고 있는 것 같군요.


이번 사태를 이해하기 위해, 먼저 남수단이라는 나라에 대해 알아볼까요.


남수단은 동아프리카 수단의 남부에 있던 3개 주(州) 즉 바흐르 엘가잘, 그레이터 어퍼 타일, 에쿼토리아가 2011년 분리독립하면서 형성된 신생국입니다. 독립국가가 된지 이제 겨우 2년 남짓, 현재 세계에서 가장 ‘젊은’ 나라죠. 수단 남부였던 시절에는 Southern Sudan이라 불렸고, 지금은 공식 국호가 Republic of South Sudan이 됐습니다. 수도는 남쪽에 있는 주바(Juba)라는 곳입니다. 나라가 자리 잡히면 좀더 내륙의 람시엘로 천도하려는 계획을 갖고 있습니다.



한반도 3배 크기의 내륙 국가


수단은 19세기말부터 이집트 무함마드 알리 왕조의 지배를 받았습니다. 그러다가 영국이 이집트를 사실상 식민통치하게 되면서 영국·이집트 공동통치 하에 들어갔고 1956년 수단이라는 이름으로 독립했습니다. 수단은 과거에는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즉 블랙아프리카)로 분류되곤 했지만 지금은 아랍계·무슬림 세력이 강해지면서 중동북아프리카(MENA)로 분류되기도 합니다. 거기서 떨어져나온 남수단은 북쪽의 수단과 달리 여전히 아프리카계가 중심이니, 사하라 이남 ‘블랙 아프리카’에 속한다고 봐야겠죠. 


북쪽으로는 수단, 동남쪽으로는 케냐, 남쪽으로는 우간다, 남서쪽으로는 콩고민주공화국(DR콩고), 동쪽으로는 에티오피아 등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내륙국가입니다. 면적은 62만㎢로 한반도의 3배에 이릅니다. 인구는 1100만명 정도. 자원부국이지만 1인당 국내총생산(구매력기준)은 지난해 1000달러 수준. 아주 가난한 나라라고 봐야죠. 몇해 전 제 친구가 이 나라에 다녀왔는데, 정말이지 ‘흙바닥’이었다고 하더군요. 아프리카에서도 가장 개발이 안 된 축에 낄 것 같습니다.


남수단에는 여러 부족들이 살고 있습니다. ‘나일강 부족들(Nilotic peoples)’라고 불리는 딩카, 누에르, 실루크족 등과 비(非)나일계 부족인 아잔데가 대표적입니다. 인구 규모로 보면 딩카족이 가장 많아서 100만명이 넘는 걸로 추산된다 하고, 그 뒤로 누에르 실루크 아잔데 순입니다. 



남수단이 수단에서부터 떨어져나오기까지는 기나긴 내전을 거쳐야했습니다. 19세기말 이래로 수단 남부의 ‘비무슬림 흑인 부족들’은 서양과 결합해 북쪽에서 내려온 노예사냥꾼들의 먹잇감이 되어야 했습니다. 그러다가 최근에는 사하라 사막이 커지면서 계속 남하해온 북부 무슬림·아랍계에 핍박당하고 있고요(이들 ‘무슬림들의 기독교 흑인 사냥’은 미국 복음주의 우익집단들의 선전 거리로 악용돼온 측면도 있지요). 남수단이 독립한 뒤에도 계속되고 있는 ‘다르푸르 내전’이라는 게 바로 북부 아랍계의 흑인 주민학살로 빚어진 문제랍니다.


남부 수단이 북쪽 하르툼(현 수단 수도)의 중앙정부에 맞서 내전을 일으킨 것은 1956년이었습니다. ‘1차 수단 내전’이라고 부르죠. 그 결과 현재의 남수단 지역에 1972년 ‘남부 수단 자치지역’이 만들어졌고, 이것이 10년 남짓 이어졌습니다. 그러다가 1983년 ‘2차 수단 내전’이 일어납니다. 격렬한 충돌과 대량살상 끝에 양측은 2005년 ‘포괄적 평화협정(CPA)’을 체결했습니다. 당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내전의 타결’이라고 기사들을 썼던 기억이 나네요.


존 가랑의 갑작스런 죽음과 남수단의 독립


2차 내전과 평화협상을 주도한 인물은 남수단 분리운동 진영의 대표 조직인 수단인민해방군(SPLA)의 존 가랑이었습니다. 수단을 이끄는 오마르 알바시르 대통령과의 협상이 타결되면서 가랑은 2005년 7월 9일 제1부통령 자리에 올랐습니다. 하지만 가랑은 헬리콥터 추락사고로 한달도 채 지나지 않은 7월 30일 숨지고 맙니다. 가랑의 사망은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었지요. 그가 살아있었더라면, 어쩌면 지금같은 ‘2인자들의 진흙탕 내분’ 따위는 벌어지지 않았을 테니까요.


지도 위키피디아


남수단은 2011년 국민투표를 실시합니다. 이 투표에서 98.83%가 ‘독립’을 택했고, 그 해 7월 9일 남수단이라는 나라가 탄생했습니다. 아프리카연합과 유엔에도 가입했습니다. 물론 독립 뒤 바로 상황이 안정된 것은 아니고, 남수단 북쪽의 종글레이 지역에서 ‘누에르 백군(Nuer White Army)’ 등의 게릴라전이 계속돼 지난해 3월에야 가까스로 진화됐습니다. 


그런데 내전과 독립 과정에서 중요한 변수로 작용한 것은 ‘석유’였습니다. 수단이 석유 부국이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유전의 80%가 남수단에 있습니다. 수단과 남수단의 경계선 부근(그리고 그 바로 위의 다르푸르)에 유전들이 몰려 있고, 수단은 이 유전들에서 석유를 끌어다 내다 팝니다. 다시 말해 남수단은 유전만 갖고 있는 것이고, 송유관과 정유시설과 수출항은 수단에 있는 상황입니다.

수단은 잘 알려진대로, 중국과 맹방이죠. 중국이 중동 석유로만 수요를 충당하지 못할 것에 대비해 수단의 석유자원 개발에 적극 투자했던 겁니다. 수단의 바시르 대통령은 다르푸르 학살 문제로 국제형사재판소(ICC)에도 기소돼있고 미국과 유럽이 수단을 제재하겠다고 별렀지만 끝내 이뤄지지 않은 게 바로 중국이라는 뒷배 때문이었습니다. 


지도 영국 BBC방송 웹사이트


이 때문에 미국이 남수단의 독립을 물심양면 지원했다는 해석도 나옵니다. 수단 뒤에 있는 중국을 견제하고 아프리카의 주요 유전지대(남수단의 유전지대는 나이지리아, 앙골라에 이어 사하라 이남에서 세번째로 크다고 합니다)에 대한 통제력을 확보하기 위해 남수단을 수단으로부터 떼어놓으려 했다는 겁니다. 마침 남수단의 독립 직전에 미국이 미군 아프리카사령부(AFRICOM)를 신설하면서 이런 ‘음모론’스러운 관측들이 널리 퍼지기도 했습니다. 물론 그런다고 이미 수단 내에 있던 시절부터 중국 자본이 잔뜩 들어가 있는 남수단을 중국 영향력 밑에서 빼내올 수야 있었겠냐마는... 

눈길을 끄는 것은, 수단이 아랍어를 공식언어로 삼고 있는 것과 달리 남수단은 수단 내 자치지역이던 시절부터 영어를 공식언어로 해왔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문자해독률이 워낙 낮으니... 

또 하나, 남수단이 독립을 선언했을 때 가장 먼저 인정하고 나선 나라가 수단과 이집트, 독일, 케냐, 그리고 뒤이어서 이스라엘이었다는 점. 수단이야 그렇다 치고. 이집트는 자원이 없어 남수단에 손 내밀고 있고, 이스라엘도 아랍과 친한 수단 대신 남수단과 뭐 좀 해보려는 모양이죠.


남수단 독립 이면에는 미국과 중국의 ‘대리전’


새로 출범한 남수단의 정부는, 인프라도 없고 국민들의 교육수준도 낮고 행정경험도 적은 것에 비하면 그럭저럭 나라를 잘 운영해온 모양입니다. 남수단은 수단과 분리하면서 협상을 통해 석유수출에 따른 수익을 반반씩 나눠갖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남수단으로서는, 유전의 대부분을 자신들이 갖고 있으니 불공평한 협정이라는 생각을 했을 법합니다. 그래서 독립 이후 계속 수단을 향해 자신들 지분을 늘려달라 요구해왔습니다.


석유수입은 남수단의 목숨줄입니다. 경제의 95%, 국가재정의 98%를 석유 수입이 차지하고 있으니, 사실상 다른 ‘경제’는 없다고 봐도 될 정도입니다. 하지만 금융재정부서 관리들의 능력이 탁월해, 재정계획을 잘 짜고 착실히 기반을 다져왔습니다. 다행히도;; 수단과 남수단의 부채가 380억달러에 이릅니다만, 제3세계 빈국들 망가뜨리기로 유명한 세계은행이나 국제통화기금(IMF) 채권은 그중 53억달러 정도로 비율이 높지 않습니다. 그 대신 파리클럽(채권국 클럽)이나 그 외 나라들과 쌍무협정으로 빌려온 돈이 많다고 합니다. 


살바 키르 대통령. 조지 W 부시가 준 저 모자를 늘 쓰고 다닌다고 합니다. 사진/위키피디아


그러다 결국 ‘리더십’에서 문제가 불거졌습니다. 현재 분쟁의 중심에 선 것은 살바 키르 대통령과 리크 마차르 전 부통령입니다.

살바 키르는 하급장교에서 출발해 반군의 2인자로 성장했고, 가랑과 함께 수단과의 분리독립 협상에 참여했습니다. 키르는 주류인 딩카 부족 출신입니다(딩카는 ‘핍박받는 부족’으로 이미지가 만들어져 있고, 미국이 다르푸르와 남수단 등지의 딩카 난민들 일부를 받아들이기도 했습니다. 핍박을 피해 미국으로 간 딩카 소년의 일대기를 다룬 <다시 찾은 꽃목걸이>라는 책도 나와 있지요). 키르는 미국의 조지 W 부시가 준 모자를 상징처럼 쓰고 다닌다고 합니다.


공학박사 학위를 가진 마차르는 누에르족 출신입니다. 미국에서 태어났고 고등교육을 받았지만 독립투쟁 당시부터 수단과의 완전한 결별을 주장해온 강경파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2차 내전 당시 가랑의 협상노선에 반대하며 SPLA에서 떨어져나가 수단인민민주전선(SPDF)이라는 조직을 만들기도 했지요. 나중에 다시 SPLA로 들어오기는 했습니다만. 마차르는 미국에서 태어났고, 첫 부인도 영국인이었는데 임신 중 사망해 뒤에 남수단 여성 정치인과 재혼했습니다.


남수단 개황


면적 62만㎢
인구 1100만명
성인문자해독률 27%

1인당 국내총생산(구매력기준) 1000달러(2012년)
빈곤선 이하 인구 50%
물가상승률 79%(2012년)

원유매장량 37억5000만배럴(세계 29위)

석유수출량 1일 29만 배럴(2010년)

천연가스 매장량 637억입방미터

천연가스 생산량 없음

유선전화 회선 2200개

무선전화 보급대수 200만대

도로 7000km (포장도로는 거의 없거나 기능을 못함)                                          자료 : CIA월드팩트북


자원수익 싸움에 종족·지역갈등 결합된 분쟁


어쨌든 키르와 마차르는 독립을 위해 연합을 했고, 독립 뒤에는 각기 대통령과 부통령을 맡았습니다. 그런데 지난 8월 대통령이 마차르를 부통령 자리에서 내쳤습니다. 이에 맞서 마차르가 쿠데타를 시도했고, 이것이 현재의 준 내전 상황으로 치달은 것입니다. 


현지언론인 수단비전은 이번 싸움을 “독립투쟁을 이끌던 장군들의 전쟁”이라고 보도했습니다. 키르는 사실 가랑의 후계자로 부상하긴 했지만 카리스마가 없고 지도력이 약해서, SPLA 내에서조차 ‘국가를 이끌기엔 약하다’는 평가를 받았다고 합니다. 당초 마차르는 2015년 정권교체 때 권력을 물려받는 것을 꿈꿨는데, 위기감을 느낀 키르가 부통령에서 내쳐버리며 선제공격을 하자 쿠데타 기도로 반격에 나선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리크 마차르 전 부통령. 사진 위키피디아


이번 대립의 이면에는 두 사람의 갈등, 두 사람을 배출한 종족의 갈등과 함께 지역 갈등도 혼재하고 있습니다. 과거 수단 남부의 그레이터 어퍼 나일주였던 지역(남수단의 유니티, 종글레이, 어퍼나일 3개주로 분화)과 이쿼토리아주였던 지역(남수단이 되면서 서부·중부·동부이쿼토리아 3개주로 분화) 간 대립 양상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거죠. 


키르가 수도 주바를 중심으로 한 남부 지역에 기반을 두고 있는 반면, 쿠데타 뒤 도주한 마차르는 수단에 접경한 북부 유전지대 종글레이·유니티주 지역을 장악하고 정부에 맞서고 있습니다. 종족적·경제적·지역적 갈등이 3중으로 결합해 남북부 전면 갈등으로 비화하는 양상입니다. 남수단 내 유전지대와 다르푸르까지 분쟁이 번지면 동아프리카 전역으로 혼란이 확산될 수도 있습니다.


반정부 진영은 현 정권이 독재로 가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독립 뒤 유전 개발과 그에 따른 수익을 어떻게 처리할 것이냐를 둘러싼 싸움이 자리잡고 있다고 봐야겠지요. 수단은 이 사태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남수단에 이권을 가진 나라가 한둘이 아닙니다. 중국국영석유회사(CNPC)와 말레이시아의 페트로나스, 인도국영천연가스공사(ONGC)가 합작해 ‘그레이터 나일 석유채굴회사(GNPOC)를 만들어 남수단 유전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세 나라가 투자했지만 최대 지분을 가진 것은 중국이고요. 이와 별도로 프랑스의 토탈도 남수단에서 석유를 캐내고 있습니다. 중국은 남수단 분쟁이 격화되자 자국민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남수단에는 한국의 평화유지군도 파병돼 있지요. 남수단이 수단과 독립전쟁을 치를 때 인도적 재난이 몹시 심했기 때문에 각국이 평화유지군을 보냈고, 유엔 남수단임무단(UNMISS)이라는 이름으로 지금도 주둔하고 있습니다. 한국은 280여명으로 구성된 한빛부대를 파병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난 주 인도 평화유지군 병사들이 숨지면서 불안감이 커졌습니다. 국방부가 현지에 무기를 보낸다 하고, 23일에는 일본 자위대로부터 실탄 1만발을 공급받았다는 뉴스가 있었지요. 이번 사태의 불똥이 튀지 말아야 할텐데.... 


... 라고 하기엔, 이미 너무 많은 현지 주민들이 숨져가고 있군요.......


얘기 나온 김에... 남수단의 자연환경은 어떨까요.

지도 BBC방송 웹사이트

지도 위키피디아


지도에서 극명하게 드러나듯이, 수단이 대부분 사막지대인 반면 남수단은 푸르릅니다.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보호구역인 반딩길로 국립공원은 세계에서 2번째로 큰 야생동물 이동지라고 하고요. 에티오피아와 접경한 보마 국립공원, DR콩고 국경 부근과 수드(Sudd) 습지도 여러 야생동물의 서식지로 유명하다고 합니다.

2006년 자치정부 대통령이던 키르는 남수단의 자연을 보호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 할 것이라고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지금 이 분쟁 상황에, 이 경제난에 과연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모쪼록 환경이라도 망치지 않았으면 좋겠네요. 환경 문제(특히 물 문제)는 분쟁의 원인이자 결과로 두고두고 엄청난 영향을 미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