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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첫번째 피고입니다" 만델라가 남긴 말과 유산들

딸기21 2013. 12. 6.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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넬슨 만델라의 발언과 유산들, 그가 내세운 투쟁과 용서와 화합의 정책들은 남아프리카공화국뿐 아니라 여러 나라에도 영향을 미쳤다. 그가 역사적인 ‘리보니아 재판’에서 했던 ‘자유를 향한 이상’은 억압받고 차별당하는 이들에게 희망의 메시지가 됐고, 그가 집권한 뒤 펼친 ‘진실과 화해’ 정책은 아시아와 아프리카, 중남미 여러 나라에서 과거사 규명과 통합의 모델이 됐다.

 

“내가 첫번째 피고입니다”

만델라의 이름을 세계에 각인시킨 것은 1964년의 ‘리보니아 재판’이었다. 반역죄로 기소된 만델라는 프리토리아에서 열린 재판의 모두발언에서 자신의 투쟁노선과 인종평등의 사상, 자유와 민주주의를 향한 꿈을 밝혔다. “우리의 싸움은 진실로 민족적인 것입니다. 그것은 고통과 경험에서 우러나온 아프리카 동포들의 투쟁입니다. 살 수 있는 권리를 얻기 위한 투쟁입니다. 나는 모든 사람이 동등한 기회를 부여받아 조화롭게 사는 자유민주사회의 이상을 소중히 여겨 왔습니다. 그것은 내 삶의 목적이자 이상입니다. 필요하다면 기꺼이 나의 목숨을 바칠 이상이기도 합니다.”

1990년 감옥에서 나와 당시 부인이었던 위니 마디키젤라-만델라와 함께 군중들에게 인사를 보내는 만델라. 경향신문 자료사진


종신형을 선고받은 만델라는 28년간 복역한 뒤 백인정권과의 권력분점 협상을 통해 석방됐다. 1990년 2월11일, 웨스턴케이프 주의 빅토르 페르스테르 교도소 앞에는 세계에서 온 취재진이 몰려들었다. 마침내 풀려나 다시 세상 앞에 선 71세의 만델라는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며 평화와 화해, 인종평등을 위한 투쟁을 계속할 것이라고 천명했다.

럭비 유니폼을 입은 대통령

만델라는 인종 화합을 선언했지만 백인들은 두려움을 감추지 못했다. 의구심을 없애준 것은 집권 이듬해인 1995년 남아공에서 열린 럭비월드컵이었다. ‘스프링복스’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국가대표팀은 요하네스버그의 엘리스파크에서 열린 결승전에서 뉴질랜드를 꺾었다. 경기장에 있던 6만3000여명의 관중은 모두 백인이었다. 이때까지 럭비는 백인들의 스포츠였고, 스프링복스의 초록 유니폼은 흑인들에겐 증오의 상징이었다. 하지만 만델라는 바로 그 초록 유니폼을 입고 나와 주장인 백인 선수 프랑수아 피에나르에게 우승컵을 건넸다. 피에나르는 “우리는 오늘 6만3000명이 아닌 4200만명의 응원 속에 경기했다”고 말했고, 만델라는 “감사하다”며 그를 끌어안았다. 스프링복스의 새 구호인 ‘하나의 팀, 하나의 조국’이 현실이 된 순간이었다. 

“잊지는 않지만 용서한다”

만델라는 집권 뒤 과거사 문제에서 ‘잊지는 않지만 용서한다(forgive without forgetting)’는 원칙을 내걸었다. 그는 남아공의 미래를 위해 백인들의 지식·기술과 관료체계와 자본을 끌어안아야 한다고 믿었고, 그래서 때로는 흑인들의 반발을 무릅써가며 백인 세력을 끌어안았다. 

그 첫걸음은 ‘진실과 화해위원회(TRC)’였다. 오랜 투쟁 동지이자 노벨평화상 수상자 데스먼드 투투 주교가 이끌었던 이 위원회는 여러 나라에서 과거사 규명의 모델이 됐다. 그러나 백인 가해자들에 대한 처벌을 사실상 포기함으로써 “진실과 화해는 없고 고백과 면죄만 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1998년 3월 만델라가 남아프리카공화국을 방문한 빌 클린턴 당시 미국 대통령과 함께 케이프타운 앞바다 로벤섬을 찾아가 자신이 20여년간 복역한 교도소를 안내해주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내 아들은 에이즈로 숨졌습니다”

민주주의로 이행한 뒤 남아공의 최대 현안은 에이즈였다. 노동 가능인구의 4분의 1 이상이 에이즈로 목숨을 잃고, 에이즈에 부모를 잃은 ‘에이즈 고아’들이 넘쳐났다. 만델라는 에이즈와의 싸움을 선언하고 구호재단을 만들었다. 에이즈 고아들을 돕고, 자신의 명망을 활용한 이벤트로 기금을 모아 예방운동을 펼쳤다. 이런 행동은 에이즈 문제를 대놓고 얘기하길 꺼리던 후임 타보 음베키 정부와의 갈등 원인이 되기도 했다. 2005년 아들 마가토가 사망하자 만델라는 아들이 에이즈로 숨졌음을 용기있게 고백했다.

“절망과 냉소의 세계에 살고 있다”

만델라는 미국의 이라크 침공을 도덕적이지 못한 전쟁이라며 극렬 반대했다. 전쟁 이듬해인 2004년, 흑인정권 탄생 10주년을 기념하는 연설에서 만델라는 미국을 다시 비난하며 “우리는 절망과 냉소의 세계에서 살고 있다”고 말했다. 퇴임 뒤에도 만델라는 반전 활동과 아프리카 분쟁 조정 등에 에너지를 쏟았다. 만델라의 89세 생일인 2007년 7월18일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 아웅산 수지 미얀마 민주화 지도자, 메리 로빈슨 전 아일랜드 대통령, 방글라데시 그라민은행 무하마드 유누스 총재 등을 회원으로 하는 ‘디 엘더스(The Elders·원로들)’라는 모임이 만들어져 만델라의 뜻을 잇기로 결의했다. 카터는 2011년 이 모임을 이끌고 북한을 방문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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