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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델라 이후의 남아공

딸기21 2013. 12. 15. 15:08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인종차별에 맞선 투쟁과 화해의 상징으로 넬슨 만델라만큼 유명한 사람이 데스먼드 투투다. 하지만 은퇴한 성공회 대주교 투투는 만델라 추모기간에 두 번이나 모욕을 당했다. 지난 10일 요하네스버그의 축구장에서 만델라 추도식이 열리는 사이 자택에 강도가 든 것이 첫번째 사건이었다. 두번째 사건은, 생전의 동지였던 만델라의 장례식에 초청장을 받지 못한 것이다.


투투는 15일 아침 만델라의 고향 쿠누를 비춘 방송 화면에 모습을 비추지 않았다. 투투가 이끄는 자선재단 측은 제이컵 주마 대통령이 이끄는 집권 아프리카민족회의(ANC)가 투투를 의도적으로 초청하지 않은 것이라 보고 있다. 


주마 측은 “그럴 리 없다, 뭔가 착오가 생긴 것이다”라고 해명했고, 투투도 "초대받지는 않았지만 만델라의 장례식을 빼놓을 수는 없다"며 참석했다. 하지만 만델라의 마지막 가는 길에마저 분란을 자초한 대통령과 민족회의를 바라보는 시선들은 곱지 않다. 만델라의 또다른 동지였던 백인 여성 정치인 헬런 수즈먼을 기리는 재단 쪽에서도 민족회의의 ‘속좁은 처사’를 비난했다.



유력 언론 메일앤드가디언은 “쿠누의 장례식에 투투가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 국민들을 분노하게 만들고 있다”고 보도했다. 일련의 사건들은 남아공이 안고 있는 치안 문제와 정치적 불안을 상징하는 사건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민족회의는 몇년 새 남아공 흑인들의 자랑거리에서 스캔들과 분열의 온상으로 전락했다. 만델라의 이름을 최대 자산으로 내걸고 있는 민족회의가 ‘만델라 이후의 남아공’을 우려스럽게 만드는 가장 큰 골칫거리로 변해버린 것이다.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 게 10일 추도식에서 벌어진 ‘주마 야유사건’이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등 세계 지도자들의 추도사에 환호를 보내던 군중들은 주마가 마지막으로 단상에 오르자 야유를 퍼부었다. 만델라가 사망하기 일주일전인 지난달 말, 한 주간지가 주마가 고향 콰줄루나탈주 응칸들라에 2억1500만란드(약 220억원)를 들여 호화저택을 짓고 있다는 사실을 폭로했고 결국 정부 조사위원회가 꾸려졌다.

지난 4월에는 주마와 친한 인도계 재벌가문 굽타 일가가 결혼식 하객들을 위해 공군기지를 멋대로 썼다가 구설에 올랐다. 주마의 부정부패 스캔들, 성추문, 정실주의 논란에는 끝이 없다. 그런데도 
민족회의는 추도식 뒤 “주마에 대한 야유를 부추긴 세력이 있다”고 주장해 빈축을 샀다.


민족회의는 문제가 불거질때마다 만델라의 후광을 불러내는 것으로 무마해왔다. 하지만 이제 만델라는 떠났다. 만델라를 가슴에 묻은 국민들이 앞으로도 민족회의를 지지해줄지는 알수없다. 2009년 총선에서 유권자의 66%가 민족회의를 지지했지만, 주마 정부 들어선 뒤 지지율은 계속 하락하고 있다.


남아공은 내년 총선을 치른다. 대통령은 의회에서 선출하기 때문에 민족회의가 계속 여당 지위를 유지할 가능성이 높지만, 압도적 다수를 차지하기는 힘들어 보인다. 흑인정권의 버팀목이던 민족회의, 남아공공산당, 코사투(남아공노조회의)의 ‘삼각동맹’이 갈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민족회의에 계속 쓴소리를 해오던 투투는 주마 정권과 멀어졌고, 코사투 지도자로 대중적 인지도가 높은 즈웰린지마 바비는 부패한 주마 정권을 맹비난하고 있다. 주마는 바비를 코사투 지도자에서 내쫓으려다가 금속노조연맹 등 노동계 주류로부터의 역풍을 맞고 있다. 10월에는 민족회의 청년조직을 이끌던 줄리우스 말레마가 당에서 나가 새 정당을 만들었다.



부패한 정부가 헛발질을 하는 사이 경제는 추락하고 있다. 경제전문지 이코노미스트는 “아프리카 최빈국들조차도 성장을 하는데 남아공만 정체를 거듭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남아공의 공식 실업률은 25%이지만 취업포기층을 포함하면 37%로 올라간다. 15~24세 청년실업률은 50%가 넘는다. 흑백분리가 철폐된 뒤 흑인 신흥갑부층이 생겨났지만 대다수 흑인들의 생활은 오히려 더 나빠졌다. 


인종간 관계는 여전히 불안요소다. 분리주의의 정신적 지주였던 ‘네덜란드개혁교회’ 세력이 꿈틀거리고, 최근에는 일부 아프리카너(네덜란드계 백인)들이 흑인정권을 몰아내기 위해 ‘무장투쟁 캠프’를 만들었다가 적발됐다. 여론조사기관 ‘화해 바로미터’ 조사에서 “다른 인종과 사회적으로 소통하고 있다”고 답한 사람은 40%에 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