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연방정부 폐쇄’라는 엄청난 부담을 감수하면서도 건강보험 개혁안(오바마케어)을 밀어붙이는 정치적 승부수를 던졌네요. 국민들의 비난에 직면하게 된 공화당은 뒤늦게 ‘타협’을 시도했으나 거부당했습니다.
공화당이 주도하는 하원은 연방정부 잠정폐쇄(셧다운) 첫날인 1일 국립공원 재개장과 전역병 지원업무 재개 등을 담은 3개의 타협안을 내놨습니다. 하지만 민주당과 백악관은 “연방정부의 업무들 중에서 승자와 패자를 나누자는 것이냐”며 거부했습니다.
'17년만의 셧다운’ 첫날인 1일 오바마는 일단은 여유로운 모습이었습니다. 비록 며칠 뒤로 예정된 아시아 순방의 일정을 일부 바꾸긴 했습니다만... 오바마는 이날 백악관 로즈가든에 건강보험 지원제도의 수혜자가 될 보험 미가입자 10여명을 초청해 대화를 나눴습니다. 오바마는 이 자리에서 “이번 셧다운은 재정결손이나 예산 문제가 아니다”라며 “건강보험이 없는 사람에게 보험을 제공하는 것이 목적”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전날 공화당을 이끄는 존 베이너 하원의장과 10분간 통화했지만 이날은 접촉하지 않았다고 워싱턴포스트 등은 전했습니다.
왜 셧다운이 되었나
셧다운... 대체 어떤 상황인지 감이 잘 안 오지요. 미국이라는 나라는 참 재미난 시스템으로 참 재미나게 돌아가는 나라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아주 간단하게 정리하자면- 미국은 국민 모두를 위한 건강보험 같은 게 없어서 아주 개판인 걸로 유명하지요. 전국민 건강보험을 만들기는 힘들고(그랬다가는 정말 '빨갱이' 소리 들을 테니까) 하니, 오바마가 그보다는 미흡하지만 그래도 미국인들의 사회적 조건을 크게 바꿀 수 있는 제안을 내놨습니다. 건강보험에 가입하지 못하는 저소득층을 위해 정부가 돈을 지원해줘서 민간보험에 들게 하자는 것인데, 공화당은 이마저도 세금 아깝다며 반대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① 공화당이 많은 하원은 이 오바마케어(건강보험 가입 지원) 예산을 삭감(defund)해서 내년 회계연도(2013.10.1 시작) 예산안을 통과시켰는데
② 민주당이 많은 상원은 다시 되살려서(fully fund) 내려보냈습니다.
③ 그랬더니 하원은 오바마케어 실행을 1년 미루는 등등 수정해서 사실상 또 defund 해 예산안을 통과시켰습니다.
④ 상원은 이를 다시 거부, 예산안이 통과되지 못해 연방정부 지출을 못하고 일부 문닫는 '셧다운'이 된 겁니다.
강공 나선 오바마와 민주당
2기 집권 내내 공화당에 밀리던 오바마와 민주당이 강공에 나선 것은 “더이상 물러서서는 안된다”는 위기감과 함께, 이번 사태가 공화당의 무모한 도박으로 끝날 것이라는 정치적 계산이 선 때문으로 풀이됩니다. 오바마는 1일 “한 정당의 한 당파가 정부 문을 닫았다”며 “그들은 몸값을 요구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감세를 주장해온 신종 보수 정치운동인 공화당의 ‘티파티’가 국민을 볼모로 잡고 인질극을 벌이고 있다며 비난한 셈입니다.
뉴욕타임스의 유명 칼럼니스트 토머스 프리드먼은 오바마의 이 말을 이어받으며, 티파티 세력이 민주주의의 원칙을 인질로 잡았다고 비판했습니다. 그는 “지금의 이슈는 다수의 뜻에 따른다는 민주주의 원칙의 문제”라며 “오바마는 이런 인질극에 굴복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합니다.
Our Democracy Is at Stake - Thomas Friedman, New York Times
Democrats Must Stand Firm - Dana Milbank, Washington Post
공화당은 1995년 빌 클린턴 행정부 때 연방정부 폐쇄에 이르게 된 정부와의 싸움을 주도했다가 정치적 타격을 입었습니다. 하지만 당시 의원이었던 사람은 현 공화당 하원의원의 16%에 불과합니다. 이번 공화당 하원의원들 상당수는 티파티 운동을 등에 업고 당선된 사람들입니다. 이들이 정치적 도박을 벌이면서 셧다운까지 이어졌다는 게 워싱턴 정가의 인식입니다.
공화당은 도박으로 '내몰렸다'
퀴니피액대학이 1일 실시한 긴급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72%는 “셧다운에 반대한다”고 응답해, 공화당에 큰 부담 될 것임을 보여줬습니다. 오바마케어에 찬성한다는 사람은 45%로 여전히 반대(47%)보다 적었지만, 법안에 반대한다는 이유로 예산을 삭감한 것에는 58%가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습니다.
Think 1996 Was Bad for GOP? This Will Be Worse - Noam Scheiber, TNR
일각에선, 공화당이 티파티 측에 과도하게 좌우된다는 얘기도 나옵니다. 1980년대 빌 클린턴을 중심으로 한 민주당의 신진 세력은 왼쪽으로 이동했던 당을 ‘중도’로 끌어오면서 당권과 정권을 모두 거머쥐었습니다. 뉴리퍼블릭 등은 “현재의 공화당은 클린턴 직전 민주당이 당내 좌파에 흔들렸던 것보다 훨씬 심하게, 소수에 불과한 티파티 우파에 좌지우지되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공화당 다수 의원들이 오바마케어에 반대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셧다운이라는 극단으로 치닫는 것을 원하지는 않았는데, 전국적인 여론과 유리된 티파티 진영의 목소리가 비정상적으로 커지면서 공화당 전체를 극단적 대치로 몰고갔다는 것입니다. 오바마가 “한 정당의 한 정파”를 지목해 그들의 “극단주의”와 “십자군 같은 싸움”을 비난한 것도, 공화당 내의 온건한 흐름과 티파티 진영을 분리해 대응하기 위한 것으로 보입니다.
The Politics of the Government Shutdown - Sean Trende, RealClearPolitics
The Republican Frauds on the Hill - Roger Simon, Politico
실제로 공화당 내에서도 티파티 진영이 주도한 이번 사태에 대한 불만이 흘러나오고 있습니다. 피터 킹 하원의원(뉴욕)은 “시작부터 막다른 골목이었다”고 말했고, 색스비 챔블리스 상원의원(조지아)은 “민주당은 모든 지렛대를 가진 반면 우리에겐 아무 것도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셧다운이라는 최후의 무기를 써버렸기 때문입니다. 정치전문매체인 폴리티코는 “공화당 내 차기 대권주자군은 셧다운을 우회비판하는 등 거리를 두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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