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아들입니다, 한디캬푸(핸디캡-장애)가 있어요"
코알라마을에서 자원봉사하는 구니코씨는 나보다 몇살 위의 아줌마인데, 항상 웃는 얼굴에 유머가 넘친다. 일전에 코알라마을에 갔더니 여느때처럼 아이들이 몇명 놀고 있었고, 엄마들이 모여 수다를 떨고 있었다. 구니코씨는 나를 보면서 사내아이 하나를 가리키더니 "장애가 있다"고 먼저 말했다. 사실 그 말을 하기 전까지는 아이에게 장애가 있는지 느끼지 못했었다.
그러고 보니까 아이가 하는 행동이 예사스럽지 않았다. 뇌성마비는 아닌데, 자폐아 같기도 하고. 꼼꼼이가 같고 놀던 장난감을 구니코씨 아들이 빼앗자, 재빨리 아들을 붙들어안으며 꼼꼼이를 달랜다. 소학교 2학년이라는데, 아이가 저 나이가 되기까지 구니코씨는 지금과 같은 처신을 숱하게 해야했을 것이다.
구니코씨의 아들은 티셔츠 등쪽과 소맷부리에 이름표처럼 생긴 표찰을 달고 있었다. 장애아임을 표시하는 '障'자와 함께 아이의 이름, 연락처가 쓰여 있었다. 혹시나 거리에서 아이가 길을 잃거나 사고를 당했을 경우에 대비해서 이름표를 붙여놓는 것 같았다.
구니코씨는 아이들을 참 좋아한다. 코알라마을에 오는 아이들을 늘 안아주고 달래주고 같이 놀아주는데 그렇게 활기찰 수가 없다. 코알라마을에서 같이 일하는 아사코씨한테 들으니, 구니코씨 집에는 텔레비전이 없단다. 아이가 어릴적 텔레비전을 밀어 넘어뜨린 뒤에, 사고를 막기 위해서 아예 텔레비전을 없앴다고 한다.
도쿄에 와서, 이런저런 사유의 장애인들을 많이 보게 된다. 우리나라보다 장애인이 많아서? 아닐 것이다. 일본의 고령화현상이야 유명한 것이지만, 실제로 노인들을 거리에서 늘상 접하게 된다. 노인들이 많아서? 많긴 하지만, 단순한 숫자 대비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개도 많이 보인다. 개가 많아서? 우리보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으니 개를 많이 키우나? 그것도 사실이긴 하지만 그런 이유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일본이 선진국임을 절감하게 될 때가 그런 때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가 눈에 보일 때. 도로 턱이 없고 주요 건물마다 경사로가 설치돼 있어서 휠체어건 유모차건 자유자재로 드나들 수 있다는 것. 문화센터를 가건, 미술관을 가건 휠체어를 탄 이들을 항상 만나게 된다. 아직까지 재일 한국인에 대한 차별이나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차별이 많이 있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우리나라에는 댈 바 아닐 듯.
TV 드라마에도 장애인 혹은 장애아동이 등장하는 것이 많다. 얼마전에 자폐아를 둔 엄마가 겪는 일들을 소재로 만든 드라마를 보면서 눈물이 핑 돌기도 했었다. 우리나라에서 장애인이 등장하는 드라마를 찾는다면-- 말도 안되는 기억상실증 혹은 시한부 인생, 실명 위기, 이런 것들 뿐이지 리얼리티 있는 드라마를 찾을 수 있을까.
서울에서는 몰랐는데, 도쿄에 오니 장애인과 노인이 유독 눈에 띈다. 서울에선 볼 수 없었던 그들. 최소한의 배려도 없어서 거리에 나올 수조차 없는 이들. 약자에 대한 배려야말로 선진국과 후진국을 가늠케 하는 잣대다. 그들이, 그리고 훗날의 우리가 거리에 나올 수 있도록 합시다!
'딸기가 보는 세상 > 이웃동네, 일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일본 초등학생의 엽기 살인사건 (1) | 2004.06.08 |
---|---|
일본의 매뉴얼 문화 (0) | 2004.06.07 |
[2004, 일본] 히로시마, 오카야마 (0) | 2004.05.11 |
[2004, 일본] 쿠라시키 (0) | 2004.05.09 |
지금 일본에선 (0) | 2004.05.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