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아지님이랑 딸기랑, 일본어서클 사람들이랑 타마가와 강변에 봄소풍을 다녀왔다.
오하나미라고 해서, 꽃구경을 가는 건데 날씨가 흐리고 바람이 심하게 불었던데다, 시간도 많지 않아서 그닥 좋은 형편은 아니었다. 하지만 일본 사람들과 함께 했던 첫 소풍이었으니깐. 매주 화요일 오전에 1시간 반씩 일본어를 배우는데, 월 1000엔만 내면 된다. 말하자면 '자원봉사 선생님들'이다.
학생은 네 명. 아지님과 나, 베트남에서 온 호아이와 태국에서 온 기쿠치. 나는 딸기니깐 선생님들이 '이치고상(딸기님)'이라고 부른다. 호아이는 남편이 도쿄지사에 근무를 하게 돼서 몇달 전에 여기에 왔고, 기쿠치는 일본에 온지 10년이나 됐다. 일본 사람과 결혼해서 姓이 일본식이다.
각자 자기 도시락을 갖고 오기로 했었는데, 비겁하게도 호아이상과 기쿠치상이 자기네 나라 음식을 준비해왔다 -_- 기쿠치상이 가져온 포피야는 중국식 춘권이랑 모양이나 맛이 똑같다. 향채가 많이 들어간 냉채도 있었는데, 우리 입맛에는 안 맞았다. 포피야는 세 개 싸다가 저녁때 꼼양이랑 같이 먹었다 ^^
나는 엊그제 담근 오이김치하고 한국에서 가져온 김을 싸갔다. 일본 사람들은 오이김치를 먹는데, 호아이상과 기쿠치상은 너무 매워서 못 먹었다. 하지만 기쿠치상은 한국 김이 맛있다면서 잘도 집어먹었다. 우리 식구 한끼 먹을 김 한봉지가 후다닥 날아갔다. 밥도 안 싸서, 김을 과자처럼 마구 집어먹다니... ㅠ.ㅠ 나의 피눈물나는 노력이 깃든 오이김치도 하루만에 다 날아가버렸다.
호아이상이 만들어온 베트남식 찹쌀떡은, 안에 콩이 들어있는 것과 코코넛이 들어있는 것 두 종류였는데 나는 하필이면 코코넛 쪽을 집었다. 먹느라고 죽을 뻔 했다... 목이 메어 눈물이 앞을 가리는... 정성은 고마웠지만, 역시 남의 나라 음식 먹는 것은 힘든 일이다. 너무 달고 느끼해서, 결국 오이김치랑 같이 목구멍 안쪽으로 밀어넣었다.
밥을 먹고 나서, 후지선생님이 악보를 꺼냈다. '후루사토(고향)'라는 노래가 있어서 같이 불렀다. 그리고나서 각자 자기나라 노래를 한곡씩 하는 몰지각한 순서가 있었다. 나는 '나리나리 개나리'를 불렀다. 기쿠치상은 코끼리 노래를, 호아이상은 베트남 음색이 짙게 들리는 꽃노래를 불렀다.
좀 어색했지만 그래도 제법 즐거운 자리였음. 후지선생님은 예전에 합창단원이었는데 단장이 한국인이었고, 한국인 친구도 있었단다. 남편도 한국 쪽과 거래하는 일을 하고 있다고. 그래서인지 한국에 관심이 많아보였다. 심지어는-- '돌아와요 부산항에' 하고 '아리랑'을 부르는 바람에, 나도 같이 불렀다. 뜻을 모르면서 가사 외우는 짓은 내가 종종 해본 거라 잘 아는데, 굉장히 힘들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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