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가 보는 세상/한국 사회, 안과 밖

간첩에 대한 두서없는 생각들

딸기21 2003. 10. 2.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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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두율 교수(정형근 말로는 '송 시간강사')가 김철수 맞다 하고. 
노동당 입당했다 하더니 기어이 정치국 후보위원이었다는 얘기가 나와버렸다.

정형근은 중요한 게 아니고. 문제는, "지금까지 밝혀진 사실이 정형근의 일방적인 주장이고, 또 그것이 국정원이라는 간첩잡는 조직의 수사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는 점일 것 같은데. 매일매일 나오는 '송두율 속보'(결국은 그가 정치국 후보위원 김철수였다는 것으로 귀결되는)를 보면서 허전하고 서글펐는데, 그 허전함과 서글픔의 요체란 과연 무엇이었을까를 곱씹어보고 있는 중이다.

대학교 2학년 때였던 것 같다. 사회대의 어떤 선배들이, 이른바 '조직사건'이란 것으로 줄줄이 잡혀갔을 때 선배들은 "안기부 조작극"이라고 말했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서 친구들과 그 얘기를 했었다. "그런데 그 조직 진짜로 있는 거자나. 왜 선배들이 그런 식으로 얘기했을까" 잘 기억은 안 나지만 뭐 그런 류의 이야기였던 것 같다. 하도 오래된 기억이라 당시의 생각들이 머릿속에서 어렴풋이만 잡힐 뿐 제대로 그려지지는 않는다. 어쨌거나 그때 우리가 얘기했던 건 '거짓말' 그리고 '배신감' 그런 거였는데, 물론 뭐 '배신감'이라 할 정도로 심각한 그런 건 아니었고, 웃으면서들 얘기 나눴던 걸로 기억한다. 하지만 생각해보니 그때 좀 언짢았거나, 선배들의 '거짓말'(무조건 '조작극이다'라고 부인하고 보는) 방식이 석연찮게 생각됐던 듯하다. 지금까지도 기억하고 있는 걸 보면.

"나는 북한에 갔었다, 형식적이지만 노동당 입당원서도 썼었다, 당시 북한에 가기 위해서는 불가피한 상황이었다, 북한측과 협력하는 것이 어느 정도 필요했었다, 그러나 누구에게건 사상의 자유는 있는 것 아닌가"라는 말을 송교수에게서 기대해왔던 걸까. 송교수에게 실망했다고, (간첩인 건 좋은데) 왜 부인했냐고, 왜 거짓말 했냐고, 그렇게 묻고 싶은 것일까, 내 마음은. 
며칠전 그런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만일 그가 과거의 어느 시점(그것이 90년대 초반이었건 언제였건)에 그런 말을 했다면 대체 그는 어떻게 됐을까, 울면서 저렇게라도 아버지 무덤에 가볼 수 있었을까. 과연 우리는 송교수에게 어떤 양심과 어떤 자기고백을 기대하는 거냐고, 우리(남한)가 그의 어깨에 올려놓은 짐이 너무 무거운 것 아니었느냐고, 우리가 그동안 그에게 얼마나 많은 돌을 던졌는데 (등 떼밀려 타향살이하게 된 사람에게) 무얼 그렇게 많이 요구하느냐고, '양심적으로' 말하는 사람에게 그토록 많은 법의 잣대를 들이밀면서 "왜 진실을 말하지 않았느냐"고 추궁할 자격이 과연 우리에게 있냐고. "왜 거짓말을 했느냐"는 내 마음의 질문에, 혼자 반문을 해보았다.

여기까지가 '며칠전'의 생각이었다. 그리고 오늘은, 글쎄, 뭐라고 해야할지 모르겠다. 송교수가 적어도 6만달러를 받았다는 사실은 인정한 것 같네. 또 국정원의 정보망이라는 것이 그렇게 허술한 게 아니고 또 그들이 조사한 내용이라는 것이 결코 조작극으로 치부해버릴 수 없는 것들이니, 정형근 류로 '악의적인 각색'을 하지 않더라도 아마 (국정원 수사결과가) 대부분 사실일 거라고 본다.
조선일보와 정형근은 송교수가 간첩이라고 말한다. 그것도, '건국 이후 최고 거물 간첩'이라고. 나는 이 표현을 보면서, 97년 정수일과 고영복이라는 이름을 자연스럽게 떠올렸다. 그들이 당시로서는 '건국 이후 최고 거물 간첩' 아니었던가. 

97년에 일본에 갔다가 릿쿄대 이종원 교수를 만났다. 두 차례의 일본 방문에서 굳이 만나달라 졸랐을 만큼 아주 좋아했던 분이다. 요사이 우리나라 언론에도 많이 나오고 얼마전 100분토론 일, 본판에서도 나왔었는데, 날카로우면서도 따뜻하고 일본어를 아주 잘 한다. 70년대 운동하다가 81년에 일본으로 건너가서, 이제는 거기 사람이 되었다. 그분이 고영복 교수 애기를 꺼냈다. 일본 가기 직전에 간첩단 사건이 나서 국내에선 난리가 벌어졌었다. 
알 법도 한 사이라서 물었더니 "직접 아는 분은 아니지만 꽤 놀랐다"고 했다. 고영복은 아주 보수적인 인물로 알려져 있었고 자기도 그렇게 생각했는데, 간첩이다 소리 듣고 되새겨보니 대학 시절 친구들이 의외로 고영복 교수의 도움을 받았던 것들이 기억나더라는 것이다. "아주 보수적인 분이지만 운동권 제자들 안쓰러워 도와주는구나" 정도로, 그냥 인간적인 분 정도로 생각했었다고 했다.

정수일이 깐수였던 시절 그를 만난 적이 있다. 건국대 도서관 앞에서 그를 만나 학생식당에서 같이 점심을 먹었다. 영 교수같지 않은 소박하고 친절한 태도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깐수를 만난 사람들이라면 아마 다들 그를 좋아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의 처용가 연구라든가 서역교류사 연구는 충분히 인정받을 만한 거였다. 
레바논 사람이라는 깐수의 얼굴을 보면서 나는, "중동 사람이 어떻게 저렇게 한국 사람이랑 똑같이 생겼지"라며 혼자 궁금해했었다. 만일 그때 그에게 그 질문을 했더라면 뭐라고 대답했을까? 그는 북한 사람 '정수일'이었고, 감옥에서 오랜 시간을 보냈다. 그가 출감하고 3권의 책을 한번에 냈단 말을 듣고 찾아읽고 싶었지만 어찌어찌하다가 미뤄두고만 있었다. 얼마전 다시 정수일의 '이슬람 문명'을 꺼내 읽으면서 고졸한 글투에 혼자 웃곤 했다. 이 사람이 왜 이 주제를 잡았을까 싶기도 하다가, "이 사람은 학자였지," 하고 끄덕끄덕하다가.

어쨌든 그는 제법 오랜 감옥생활을 겪고 나와서 다시 글을 쓰고 있고, 정교수는 아니더라도 어느 대학에 출강하고 있다. 학생들은 어떤 생각으로 수강신청을 하고 그의 강연을 듣는지 잘 모르겠지만 그는 학자이고, 우리나라에서는 이슬람 특히 서역 쪽에 대해 가장 많이 알고 있는 사람이고 학자다운 자세도 많이 갖고 있는 사람이다. 과거 호텔방에서 북한에 팩스를 보냈건 말건 그의 책이 꽤 팔리고 있고, 그 분야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한번은 그의 책을 뒤적이게 마련이다. 사람들이 그에게서 듣고싶어하는 내용이 '간첩의 소회' 같은 것들이 아니라서 다행이다. 
그렇지만 그가 감옥에서 겪어야 했던 고통이라든가, 혹은 인생 전체에서 겪어야 했던 갈등과 고통은? 그건 내가 상상할 수 없는, '인식 밖의' 일들이기 때문에 뭐라 말할 수 없고, 다만 '몹시 컸을 것'이라고만 생각한다. 송두율 교수는? '건국 이후 최고 거물 간첩'으로 낙인찍히기에는 단 하루면 족하다. 오늘 이후의 그는 어떤 모습일까. 어제까지는 한국에 들어올 수 없더니 오늘 이후로는 마음대로 한국을 떠날 수도 없게 된 송교수는. 그의 '거짓말' 혹은 정형근의 패악질을 보면서 마음대로 허전해할 수도, 서글퍼할수도 없으니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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