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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일기/ 우물 안의 개구리, 쿠파만두카

딸기21 2013. 7. 15. 13:58

하백과 북해약


가을에 큰물이 나서 여러 강물이 황하로 흘러들었습니다. 그 흐름이 너무나 커서 강가 양쪽이나 모래톱에서 보면 소와 말을 분간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이렇게 되자 황하의 신 하백이 흐뭇해 하며 자기가 세상의 모든 훌륭함을 독차지했다고 기뻐했습니다. 하백이 물결을 타고 동쪽으로 내려가다가 북해에 이르렀습니다. 거기서 동쪽을 보니 물의 끝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얼굴을 돌려 북해의 신 약(若)을 보고 한숨을 지으며 말했습니다. "옛말에 '도'에 대해 백번을 들으면 저보다 나은 이가 없는 줄 안다'고 한 말이 바로 나를 두고 하는 말이군요."

하백은 고구려 시조 주몽의 외할아버지인데... 저런 분(?)이었구낭.


우물 안의 개구리


북해약이 대답했습니다. "우물 안 개구리에게는 바다 이야기를 할 수 없지요. 한 곳에 갇혀 살기 때문이오. 여름 벌레에게 얼음 이야기를 할 수 없지요. 한 철에 매여 살기 때문이오. 마음이 굽은 선비에게 도를 이야기할 수 없지요. 한 가지 가르침에 얽매여 살기 때문이오. 지금 당신은 좁은 강에서 나와 큰 바다를 보고 비로소 당신이 미미함을 알게 되었소. 이제 당신에게 큰 이(理)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구려."


이거시 그 유명한 '우물 안 개구리(井中之蛙)'... 장자의 추수편에 나오는 얘기다.



추수편에는 개구리 이야기가 이것 말고도 좀 더 나오는 모양이다.

"자네는 무너진 우물 안 개구리 이야기를 들어 보지 못했나? 그 개구리가 동해에서 온 자라에게 말했네. '나는 여기가 좋으이. 밖으로 나가면 난간 위에서 뛰놀고, 안으로 들어오면 벽돌 빠져나간 구멍 끝에서 쉬네. 물에 들어가면 겨드랑이까지 차게 하고, 턱을 받치지. 진흙을 찰 때에는 발등까지 흙에 묻히고, 장구벌레, 게, 올챙이 모두 나만 못하이. 이 웅덩이 물을 독차지해서 마음대로 노는 즐거움이 더할 나위 없네. 자네도 가끔 들어와보면 어떻겠나?'
동해의 자라는 왼발을 미처 넣기도 전에 오른쪽 무릎이 걸려 꼼짝할 수 없었지. 어정어정 물러나 개구리에게 동해 이야기를 해주었다네. '대저 천리 거리로도 그 크기를 말할 수 없고, 천길 깊이로도 그 깊이를 말할 수 없네. 우(禹) 임금 때 십 년 동안에 아홉 번이나 홍수가 났지만 그 물이 불어나지 않았고, 탕(湯) 임금 때는 팔 년 동안에 일곱 번이나 가물었지만 바닷물이 줄지 않았네. 시간이 길거나 짧다고 변하지도 않고, 비가 많거나 적다고 불어나거나 줄어드는 일도 없는 것. 이것이 동해의 큰 즐거움일세.'
무너진 우물 안 개구리는 이 말을 듣고 놀라 아주 얼이 빠져 버렸다네."

이 글을 보니 재미있다. 
1. 개구리와 자라... 자라가 바다에서 왔구나!
2. 탕임금님은 이름이 '탕'이라니. 왜 그런 이름이 붙었을까.
3. 바닷물이 줄고 늘지 않았다 하는데, 사실은 빙하기 때 줄어들고 따뜻해지면 늘어나고 했다. 동해의 자라도 뭘 잘 모른다. 지금은 기후변화 때문에 해수면이 확확 올라가고 있으니, 요즘의 상식있는 자라라면 더더욱 저런 말은 하지 않을 듯. 씁쓸한 것은, 개구리야말로 기후변화로 가장 먼저 희생되는 종이라는 사실. =3=3=3

참고로 탕왕은 이렇게 생기셨다. 그림은 어느 일본 사이트에서 퍼왔음;;



한 가지 더 재미있는 것은, 정저지와가 장자에 처음 나온 것도 아니고, 중국 이야기도 아니라는 것이다.

우물 안 개구리는 '쿠파만두카 Kupamanduka'라는 산스크리트어를 번역한 것이다. 뜻은 정저지와 그대로, 좁은 테두리 안에서 자기 세상만이 전부인 줄 알고 있는 걸 가리킨다.
실은 장자의 끝부분을 읽다가 '우물 안 개구리'에서 잠시 닫아두고, 오늘 낮에 <센코노믹스>를 읽었다. 잠시 샛길로 틀자면, 센의 책 중 <불평등의 재검토>는 본격적으로 어렵지만;; 몹시 즐거운 책이므로 센을 읽을 요량인 분들께는 이 책을 추천. <센코노믹스>는 센의 강연들을 몇 편 모아둔 것인데 1990년대 말 아시아 금융위기 직후의 강연들을 모은지라(왜 이렇게 편집한 것인지는 도통 모르겠다;;) 살짝 비추. 하지만 옮긴이 해제가 아주아주 훌륭하다. ^^

<센코노믹스>에 실린 강연 중에 쿠파만두카 얘기가 한번 나온다. 그런데 타고르가 세운 학교에서 교육받았고 인도(뿐 아니라 동양) 고전에 몹시 조예가 깊은 센은 아예 The argumentative Indian: writings on Indian history, culture and identity 이라는 책을 낸 적이 있다. 이 책에도 개구리 얘기가 나오는 듯. 

위키를 찾아보니, 말레이시아어에도 'katak di bawah tempurong (코코넛 껍질 밑의 개구리)'라는 표현이 있다고 한다. 개구리가 고생이 많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