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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일기/ 무당 계함과 열자와 그의 스승 호자

딸기21 2013. 6. 27. 16:52

5. 정나라에 계함이라는 신통한 무당이 있었습니다. 사람이 죽고 사는 것, 살아 남고 죽게 되는 것, 화나 복을 받는 것, 오래 살고 일찍 죽는 것 등을 다 알 수 있었습니다. 연월일까지 알아맞히는 것이 꼭 귀신같았습니다. 정나라 사람들은 그를 보면 모두 도망을 갔습니다. 열자만은 계함을 만나 보고 심취하여 돌아와서 스승 호자에게 아뢰었습니다. "제가 처음에는 선생님의 도(道)가 지극하다고 생각했습니다만, 지금 보니 그보다 더한 도가 있습니다."

호자가 말했습니다. "나는 너에게 도의 껍데기만 가르치고 아직 그 알맹이는 가르치지 않았다. 그런데도 너는 내가 가르치는 도를 다 터득했다고 생각했단 말인가? 암탉이 많아도 수탉이 없으면 어떤 달걀이 나오겠느냐? 너는 그 (알맹이도 없는) 도를 가지고 세상과 겨루어 필경 세상이 너를 믿게 되리라 생각했더냐? 그러니 그따위 사람이 너의 관상이나 보게 된 것이지. 어디 한번 그 사람들 데리고 와 나를 보게 해보아라."


혼날만 하다. 그런데 스승의 이름이 재미있다. 호자(壺子)다. 그릇 선생님이시구나. 위구르와 우즈베키스탄 등 중앙아시아의 무슬림들은 노인, 스승을 호자(khoja)라고 하는데. 

또 하나 재미난 것은 정나라 사람들이 계함을 보면 모두 도망을 갔다는 것. 옮긴이도 해제에 썼는데, 미래를 알면 얼마나 나쁠까. 진짜로 미래를 알려줄 리도 없거니와, 믿음천국 불신지옥을 위협하며 돈 내라고 할 터이니 피하는 게 상책.


소싯적 좋아했던 작가의 '열자' 표지



6. 다음날 열자가 무당과 함께 호자를 만났습니다. 무당은 밖으로 나와서 열자에게 말했습니다. "아, 당신의 선생이 죽게 되었소. 살 수가 없지. 열흘을 넘기지 못할 것이오. 나는 그에게서 이상한 것을 보았소. 물에 젖은 재(灰)의 상이었소."

열자가 들어와 눈물로 옷깃을 적시면서 그 말을 호자에게 전했습니다. 

호자가 말했습니다. "아까 나는 무당에게 땅의 모양을 보여주었다. 싹이 트지만 흔들리지도 않고 멈추지도 않는 모양이지. 그는 분명 나에게서 덕의 움직임이 막힌 것을 조금 보았을 것이다. 또 한번 데려와 보아라."


아니 이 바부팅이 같은 제자는 스승에게 야단을 맞은 것으로도 모자라서 굳이 그 무당을 데리고 찾아갔네. 


7. 다음날 또 열자는 무당과 함께 호자를 만났습니다. 무당은 밖으로 나와서 열자에게 말했습니다. "다행히 당신의 선생이 나를 만나 병을 고쳤습니다. 이젠 살 수 있겠소. 그에게서 막혔던 것이 트인 것을 보았소."

열자가 안으로 들어가 이 말을 호자에게 전했습니다.

호자가 말했습니다. "아까 나는 하늘과 땅의 모양을 보여주었다. 이름이나 실질이 끼여들 틈이 없고, 기운의 움직임이 발꿈치에서 나오는 것. 무당은 분명 나에게서 움직임이 원활함을 조금 보았을 것이다. 또 한번 데려와 보아라."


8. 다음날 또 무당과 함께 호자를 만났습니다. 무당은 밖으로 나와서 열자에게 말했습니다. "당신 선생은 일정하지 않소. 나는 이제 도저히 그의 관상을 볼 수가 없소. 일정해지거든 다시 한번 보기로 하겠소."

열자가 안으로 들어가 이 말을 호자에게 전했습니다.

호자가 말했습니다. "아까 나는 무당에게 더할 수 없이 큰 빔(沖)을 보여주었으니 분명 나에게서 균형잡힌 기의 움직임을 보았을 것이다. 빙빙 돌아 모이는 물도 못이고, 괴어 있는 물도 못이고, 흐르는 물도 못이다. 못에는 아홉 가지가 있는데 그 중에서 세 가지를 보여준 셈이다. 어디 다시 데려와 보아라."


빌 충(沖)이라는 한자는 처음 알았다. 이제보니 호자 선생님은 개구쟁이.. 무당을 아주 혼란스럽게 한다. 


9. 다음 날 또 무당과 함께 호자를 만났습니다. 무당은 채 자리를 잡기도 전에 얼이 빠져 달아나 버렸습니다. 호자가 말했습니다. "따라가서 데리고 오라."

열자가 따라갔으나 잡지 못하고 되돌아와 호자에게 아뢰었습니다. "없어져버렸습니다. 간 곳을 몰라 따라갈 수가 없었습니다."

호자가 말했습니다. "아까 나는 그 사람에게 내가 근원에서 아직 나오기 이전의 본모습을 보여주었다. 나는 그 근원 속에서 나를 비워 사물의 변화에 그대로 따라, 내가 누구인지 모른 채, 바람 부는 대로 나부끼고, 물결치는 대로 흘렀지. 그래서 그가 달아나버린 것이다."


호자님은 귀신같은 분... 


10. 그 후 열자는 자기가 아직 배움을 시작조차 못 했음을 깨닫고, 집으로 돌아가 삼년 간 두문불출하고, 아내를 위해 밥도 짓고, 돼지도 사람 대접하듯 먹이고, 세상일에 좋고 싫고를 구별하지도 않았습니다. 깎고 다듬는 일을 버리고 다듬지 않은 통나무로 돌아갔습니다. 흙덩어리처럼 홀로 그 형체만으로 서서, 여러가지 엉킴이 있어도 그는 봉한 것 같은 상태였습니다. 이처럼 한결같은 삶을 살다가 일생을 마쳤습니다. 


오옷 멋지다. 오강남 선생의 해석을 보자. 

"이것은 모두 열자가 이제 남녀를 구분하고, 인간과 동물을 차별하고, 좋아하는 사람 싫어하는 사람을 가르는 일체의 이분법적 세계관을 초월했다는 뜻이다. 성차별을 반대하는 여성해방 운동, 인종뿐만 아니라 모든 종의 차별을 넘어서는 동물애호 운동, 계급차별을 없애려는 평등운동이나 인권운동 등은 근본적으로 이런 이분법적 의식을 초월한 깊은 안목과 통찰에서 우러난다는 뜻이 아닌가?"


이번엔 이야기가 길지만 재미있었다. 호자 선생님 덕에 열자는 훌륭한 사람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