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터게이트는 아니다. 하지만 오바마가 리처드 닉슨을 연상케 하는 것은 사실이다.”
국세청(IRS)의 보수단체 표적조사, 국무부의 리비아 테러관련 보고서 왜곡 사건 등 잇단 스캔들로 미국 버락 오바마 정부가 궁지에 몰려 있습니다. 일각에선 닉슨을 하야시킨 ‘워터게이트’를 운운하며 오바마를 공격합니다.
워터게이트 특종보도로 미국사에 한 획을 그은 워싱턴포스트의 밥 우드워드 부편집장이 방송에 나와 옛 사건과 지금의 스캔들을 직접 비교해 눈길을 끌었습니다.
지난 17일 MSNBC방송에 나온 우드워드는 국세청이 ‘티파티’ 등 보수단체의 면세혜택을 집중조사한 사건에 대해 “워터게이트와는 비교할 수 없다”며 선을 그었습니다. 그는 “이 문제를 워터게이트와 비교하는 이들도 있지만 나라면 그런 말은 하지 않겠다”고 말했습니다.
Bob Woodward: Obama Scandals Are Not Watergate, But Benghazi Kind Of Is (VIDEO)
잘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 잠시 설명하자면, 미국 국세청은 연방법에 따라 비영리기구들의 연방세를 면제해줍니다. 하지만 이를 악용하는 기구들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과연 법에 따른 면세 대상이 맞는지 국세청이 조사를 합니다. 그런데 오바마 1기 집권기였던 지난 2010년부터 부자감세와 건강보험개혁 등에 반대하는 '티파티'나 '애국자들', 크로스로드GPS', '깨어있는 시민 프로젝트', '자우의 길' 같은 단체들을 콕 찍어서 국세청이 집중 조사를 했다는 게 의혹의 요지입니다. 말하자면 정치적 색깔이 다른 보수단체들을 표적 조사했다는 거죠.
(이와 아주 비슷하지만 보수와 진보의 위치가 뒤바뀐 경우를 우린 5년 넘게 보고있는 듯;;)
[Wikipedia] 2013 미국 국세청 스캔들
공화당 의원들과 폭스뉴스 같은 우익언론들은 이 사건을 ‘워터게이트 2.0’ 등으로 부르며 백악관을 공격하고 있죠. 우드워드는 “워터게이트 사건은 닉슨이 대통령 재임기간 중 직접 정적에 대한 사찰을 지시했던 것”이라며 “지금까지 오바마 대통령이나 백악관 관계자가 국세청 조사에 직접 개입한 증거는 없다”고 말했습니다.
우드워드는 리비아 벵가지 미 영사관 피습사건 보고서를 수정, 축소한 것이 더 큰 문제라면서 이 사건을 워터게이트에 빗대는 것에는 반대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앞서 미국 언론들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가 벵가지 보고서 수정 ‘지침(talking point)’을 담은 메모를 국무부에 보냈다고 보도했습니다.
우드워드는 “40여년전 닉슨이 이 말은 하지 마라, 이건 보여주지 마라 일일이 지시했던 것이 떠오른다”며 “백악관은 그런 메모들은 당장 없애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국세청 사건은 워터게이트와 다르지만 벵가지 사건의 경우는 비슷하다고 볼 수도 있다...는 건데요.
우드워드의 이 발언에 대해서도 여러 지적이 나오는군요.
[크리스천사이언스모니터] Bob Woodward compares Benghazi with Watergate. Is he right?
잇단 논란들이 워터게이트에 맞먹는 스캔들로 비화할지 아직은 알수 없습니다. 18일 미 언론들은 “오바마 정부는 국세청이 비영리기구를 조사하는 걸 알고 있었다”고 보도했습니다. 하지만 재무부는 국세청의 보고를 받은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보수단체들을 집중 조사하는 줄은 몰랐다”고 해명했습니다.
국세청 논란과 벵가지 보고서 파문에 이어 법무부가 AP통신 기자들의 통화기록을 수집한 사실이 드러났고, 19일에는 대테러전 전역병 보상을 미뤄왔다는 주장과 함께 에릭 신세키 보훈장관 사퇴요구가 터져나왔습니다.
[경향신문] ‘삼재’ 낀 오바마
숨돌릴 틈없이 사건들이 터져나오자 백악관에 우호적이었던 언론들조차 오바마의 일처리 방식에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워싱턴포스트는 “오바마는 온실가스 배출규제나 대테러전 무인공격기 사용확대 같은 사안에서는 생사를 걸고 밀어붙이는 반면, 다른 사안에서는 무책임하게 뒤로 물러나있곤 해서 일관성이 없어 보인다”고 지적했습니다.
[워싱턴포스트] President Obama exercises a fluid grip on the levers of power
오바마와 가까운 사이인 하버드대 법대 로런스 트라이브 교수는 이 신문 인터뷰에서 “오바마는 정치인이 아닌 법률가처럼 행동하는 경향이 있다”며 “정치적으로 풀어야 할 사안임에도 한걸음 떨어져 법률적으로 옳고 그른지만 따지다보니, 국민들이 느끼는 분노를 대통령이 공감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정치전문지 폴리티코도 “오바마 정부는 상식이 아니라 변호사들의 지침에 따라 움직이는 것 같다”며, 이 때문에 공화당은 물론 민주당으로부터도 분노를 사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반면 크리스천사이언스모니터(CSM)는 공화당이 일련의 사건들을 ‘오바마게이트(Obamagate)’로 몰아붙이면서 과잉 공세에 나서는 바람에, 오히려 역풍을 맞을 수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공화당은 오바마를 공격하느라 바쁘지만, 국민들이 그런 공화당을 과연 좋아하고 있느냐 하는 겁니다.
리얼클리어폴리틱스에서 오바마와 의회의 지지율을 찾아봤습니다.
위 그림에서는 48.2%로 나왔는데, 가장 최근의 조사에서는 그보다 더 올라갔네요. CNN이 19일 공개한 조사 결과로는 오바마의 업무지지율이 53%로 집계됐습니다. 반대는 45%였습니다.
국민들은 사사건건 발목잡는 의회를 더 미워하는 것 같군요.
의회의 업무지지도는 겨우 16.6%...
공화당은 국세청 스캔들을 빌미로 오바마 정부의 보건의료개혁안, 이른바 ‘오바마케어’(Obamacare)을 좌초시키려 하고 있습니다. 국세청 스캔들이 가뜩이나 흔들려온 오바마케어에 더 큰 흠집을 내고 있는 것은 맞지만, 모든 걸 ‘오바마 망치기’로 끌어가려는 공세에 국민들이 거부감을 보일 법도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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