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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원조기구 추방한 모랄레스, 그리고 볼리비아와 미국의 악연

딸기21 2013. 5. 2.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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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리비아가 또 미국을 치받았습니다. 우고 차베스 사망 이후 라틴아메리카에서 가장 강경한 반미지도자가 된 에보 모랄레스 대통령이 1일 미 원조개발처(USAID) 직원 9명에 대해 추방령을 내렸습니다.


모랄레스는 이날 국영방송으로 중계된 노동절 기념식에서 미 원조개발처가 “정부를 상대로 한 음모를 꾸미고 있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라틴아메리카가 자기네 뒷마당이라고 한 사람이 있었다”며 원조개발처 직원들을 추방하기로 한 것은 “그런 말을 한 사람에게 보내는 메시지”라고 말했습니다. 


케리 미 국무장관은 지난달 워싱턴에서 열린 한 외교 관련 행사에서 “서반구(중남미)는 우리 뒷마당”이라 말해 과거 제국주의자들과 같은 인식을 드러냈다는 비판을 받았습니다. 민주당 대선 후보였던 시절에도 잇단 실언으로 빈축을 샀던 케리... 국무장관 된 뒤에 초큼 멋져지려고 했는데 또 이런 말을... -_-


노동절 연설을 하고 있는 모랄레스. 가슴의 체 게바라가 눈에 띄네요.
이 분은 헤어스타일을 어떻게 좀 했으면 좋겠습니다만... 
(그런데 이거 아시나요? 볼리비아의 원주민들은 흰 머리가 나지 않는대요!)



미 원조개발처는 “우리는 볼리비아 정부와 합의된 원조사업만 하고 있었다”며 즉시 반박 성명을 냈습니다. 미 국무부도 “근거없는 비방 때문에 가장 큰 피해를 보는 것은 볼리비아 국민들”이라고 일축했습니다. 


미 원조개발처는 1960년대부터 볼리비아에서 활동해왔기 때문에 볼리비아 시골마을 주민들은 자국 기관들 못잖게 이 기구에 친숙하다고 합니다. 최근 이 기구는 티티카카 호수 오염 제거, 임신부·영유야 보건지원 등을 하고 있었습니다.


볼리비아 안에서도 좌파 정부의 돌출행동에 난색을 표하는 이들이 없지 않은 모양입니다. 시민단체 ‘안데안 정보네트워크’의 카스린 레데부르는 뉴욕타임스에 “모랄레스는 코카재배농들에게 작목변경을 권유했다는 이유로 미 원조개발처를 계속 의심해왔다”고 말했습니다.볼리비아 최초의 원주민 대통령인 모랄레스는 코카재배 농민조합 활동가였으며, 지금도 코카재배농의 지지를 정치적 기반으로 삼고 있지요.


모랄레스는 2006년 취임 뒤 미국과 줄곧 부딪쳤습니다. 2007년 이미 부통령이 미 원조개발처를 향해 “원조를 정치적으로 악용, 야당을 지원하고 있다”고 비난한 바 있습니다. 이듬해 볼리비아는 미국 대사를 추방했고, 그 이후 대사직은 계속 공석입니다. 2009년에는 미국 마약단속국 관리들을 쫓아냈습니다.


일각에선 미국과 볼리비아의 오랜 악연을 지적합니다. 이번 행동은 돌출적일지 몰라도, 미국이 볼리비아에서 해온 일들을 보면 모랄레스의 의심 또한 타당하다는 것이죠. 빈국에 대한 지원이 미국의 압박수단으로 쓰인 적은 많으며 볼리비아도 그 중 한 곳이었습니다. 


잠시 미국과 볼리비아의 관계를 들여다볼까요.



저 위쪽 나라가 미국, 아래쪽 초록색이 볼리비아입니다.



미국은 1951년 볼리비아 민족주의정당인 민족혁명운동(MNR)이 집권하자 특수부대와 중앙정보국(CIA) 요원들을 들여보내 우익 쿠데타를 지원, 결국 정권을 축출했습니다. 많이 보던 스토리이죠.

1960년대 내내 볼리비아에선 친미 독재정권에 맞선 투쟁이 일어났고, 이 와중에 아르헨티나 출신 혁명가 에르네스토 게바라, 지금 모랄레스의 가슴에 박혀 있는 바로 그 체게바라가 사살됐지요. 


1970년 젊은 좌파 장교 후안 호세 토레스가 집권하자 다시 미국이 우익 군인을 지원해 정권을 뒤엎게 만들었습니다. 미국의 도움 덕에 쿠데타로 권력을 잡은 우고 반세르 수아레스는 1982년까지 철권통치를 하면서 국민들을 탄압했습니다. 

민중들의 저항은 끈질깁니다. 더군다나 볼리비아는 중남미에서도 드물게 백인 인구가 15%에 불과하고 원주민이 절반이 넘는(55%) 나라입니다. 나머지 30%는 혼혈, 메스티조라고 하지요. 그래서 원주민인 모랄레스가 대통령이 될 수가 있었던 것이기도 하고요.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도라는 볼리비아의 라파스. /위키피디아



다시 과거로 돌아가보면, 1982년 군부정권이 끝나고 민족혁명운동의 실레스 수아소가 대통령이 됐습니다. 그러자 미국은 볼리비아에 대한 원조를 끊어버렸습니다. 

미국은 사실 모랄레스 취임 뒤에도 원조액을 크게 줄였습니다. 2007년 8900만달러였던 미 원조개발처의 볼리비아 원조예산은 갈수록 줄어 올해는 1700만달러로 축소됐습니다.


하지만 세상은 복잡하고 진실은 늘 다중적인 법. 번번이 싸우면서도 볼리비아는 경제적으로 미국에 상당부분 의존하고 있답니다. 


모랄레스 지지층이 두터운 수도 라파스 부근 엘알토 면세지역에서 노동자 3만여명이 생산하는 섬유제품은 대부분 미국으로 수출됩니다. 볼리비아는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구매력기준 5000달러밖에 안 되는 빈국입니다. 브라질(41.8%)에 이어 미국이 수출상대국 중 2위(12.2%), 그리고 한국이 3위(6.4%)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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