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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러 '블랙리스트 싸움' - 겉으론 신경전, 물밑에선 대화?

딸기21 2013. 4. 14.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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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제는 하되 대결은 피한다.” 

미국과 러시아가 인권문제를 들먹이며 서로 상대국 관리들 이름을 적은 ‘블랙리스트’를 발표했다. 그런데 드러난 싸움보다는 이면의 외교가 더 눈길을 끈다.


먼저 깃발을 올린 쪽은 미국이다. 미 재무부는 지난해 12월 제정된 러시아인권법, 일명 ‘마그니츠키법’에 따라 미국 입국이 금지되고 경제제재를 받을 18명의 명단을 12일 발표했다. 

이법은 2009년 경찰의 부패를 고발했다가 체포돼 가혹행위를 당하고 숨진 러시아 변호사세르게이 마그니츠키 사건에서 비롯됐다. 마그니츠키의 죽음은 체첸 반군탄압과 함께 러시아의 인권탄압을 상징하는 국제적인 이슈가 됐고, 미국은 지난해 러시아인권법을 제정하면서 러시아 인권 문제를 부각시켰다.


세르게이 마그니츠키의 무덤. 경향신문 자료사진

블랙리스트에 오른 18명 중 16명은 마그니츠키가 비리를 폭로했던 세무관리들과 수감 뒤 처우에 대한 책임이 있는 내무부 관리들, 재판을 맡았던 판사들 등이다. 정작 미국이 맹비난해온 러시아 수사기관의 수장인 알렉산드르 바스트리킨 국가조사위원회 위원장은 명단에 없다. 

나머지 2명은 마그니츠키 사건과 관련 없는 체첸 인권침해 혐의자들인데 반정부세력 탄압의 주범인 람잔 카디로프 체첸 자치공화국 대통령은 제외됐다. 카디로프는 푸틴에 맹종하는 인물로 유명하다. 모스크바타임스는 “모스크바를 아주 화나게 만들지는 않겠다는 워싱턴의 속내를 보여준 것”이라고 분석했다.


러시아는 14일 “미국은 남의 나라 인권을 탓할 처지가 아니다”라며 보복성으로 ‘인권을 침해한 미국인 18명’의 명단을 공개했다. 러시아 측 입국금지자 명단은 미국 버락 오바마 정부가 아닌 조지 W 부시 전임행정부 인사들로 채워져 있다. 딕 체니 전 부통령실에 근무했던 관리들, 쿠바 관타나모 미군기지 내 수용소 운영과 관련된 사람들, 테러용의자 고문수사와 관계 있는 전직 법무부 변호사 등이다. 

미국 법원에서 징역형을 선고받은 러시아 출신 무기거래상 빅토르 부트 사건 관련인물들도 포함돼 있다. 거센 논란을 불러일으킬 민감한 이름은 역시 보이지 않는다.


미국은 마그니츠키 사건 뒤의 여론에 밀려 법을 만들고 그 법에 따라 리스트를 공개했지만 러시아와 북핵 문제, 시리아 문제 등을 계속 논의해야 하는 처지다. 러시아는 미국이 유럽 미사일방어(MD)체제 축소 등의 조치를 취한 것에 상당히 만족해 있는 상태다. 지난 주 영국 런던에서 열린 G8 외무장관 회의 때 존 케리 미 국무장관과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 사이에 리스트를 둘러싸고 물밑 대화가 오간 게 아니냐는 얘기도 나온다. 미국측 명단의 대상자가 당초 30~70명으로 추측됐는데 18명으로 줄어든 것도 이런 의심을 부풀리고 있다. 

15일에는 미국 오바마 정부 2기 출범 뒤 고위급 인사로는 처음으로 톰 도닐런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모스크바를 찾을 예정이다. 러시아 일간 크메르산트는 도닐런이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에게 양국간 관계를 개선할 메시지를 전달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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